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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과 삼성증권 사태, 국민 신뢰 좀먹는 열린사회의 적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40) 한국사회에 숨은 ‘모럴 헤저드’의 일그러진 초상화

1.

편집국장 강동수(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최근 들어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사안이 둘 있다. 하나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특혜성 외유 시비’이고, 또 하나는 삼성증권의 ‘배당사고’다. 그 둘은 각기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일종의 모럴 헤저드(moral hazard)랄까,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점에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

우선 김기식 원장 건부터. 김 위원장이 새 금감원장에 임명되자마자 그의 ‘특혜 외유’ 시비가 터져 나왔다. 이미 널리 보도됐지만 그 내용은 이렇다. 김 원장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던 2015년 5월, 피감기관이던 대외경제연구원(KIEP)으로부터 3000만 원 상당의 경비를 지원받아 9박 10일 간 미국과 유럽 지역을 여행했다는 거다. 여성 인턴 보좌관까지 끼워 함께 공짜 유람을 즐겼다는 것. 그는 의원 시절 피감기관이 제공한 해외 출장을 3차례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당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김기식 민주당 의원(사진: 더 팩트 이새롬 기자, 더 팩트 제공).

그런데, 당시 KIEP가 보고서에다 ‘의전 성격 출장’이라고 적시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KIEP처럼 규모가 작은 국책 연구소는 국회에서 예산이 깎이면 운영이 상당히 곤란해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지기 좋아 하는 깐깐한 국회의원에게 로비성 유람을 시켜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것. 게다가 인턴 보좌관까지 수행했던 게 드러나면서 야당들은 ‘갑질 외유’, ‘황제 외유’라고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여기에 더해 19대 의원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도 자신에게 들어온 정치후원금으로 이 여성 보좌관을 동반해 외국 출장을 다녀왔다는 추가 폭로가 이어지자 야당은 이를 ‘땡처리 외유’라 부르며 맹공하고 있다.

김 원장은 ‘특혜 외유’가 아니라 ‘정상적인 출장’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고도 했다. 임기 마지막에 외국 출장을 다녀온 것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이후 시민단체 활동을 위한 자료 수집을 위한 것으로, 국가 세금과는 무관한 일이라고도 해명했다.

아무튼 김기식 금감원장 건이 이렇게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외국을 나다니는 건 일종의 ‘모럴 헤저드’가 아니냐는 인식 때문이겠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 이른바 ‘김영란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에 그의 처신이 이중적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더욱이 정치권의 일탈을 감시하며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온 ‘참여연대’의 창립멤버로 사무총장까지 맡았던 전력 때문에 더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 쉽게 말해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긴 격’이랄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그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2.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긴 일은 또 있다. 삼성증권의 주식 배당 사고가 그것. 지난 6일 삼성증권이 우리사주조합 소속 직원들에게 1주당 1000원의 배당금 대신 주식 1000주를 잘못 지급했다는 게 그 요지다. 1000원이라고 전산처리해야 할 걸 1000주라고 ‘원’ 대신 ‘주’로 직원이 잘못 쳐 넣었다는 거다. 잘못 지급된 주식은 유통주식보다 무려 30여 배 많은 28억 3162주나 되고 그 시세 총액도 112조 원이란 천문학적 액수에 이르렀다는 것. 처음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던 이 문제가 눈덩이처럼 확산된 건 그 이후 사태 진전 때문이다.

잘못 보내진 ‘유령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 중 일부가 당일로 주식시장에 내다 팔아치우면서 시장에 혼란이 일어나 버렸던 거다. 16명의 직원이 주식 501만 주를 처분하면서 주가가 요동쳤다. 실제로 이날 주가는 장 한때 12%가량 폭락했다고. 증권사 직원이란 사람들이 회사가 잘못 보내온 게 분명한 주식을 얼씨구나 하고 팔아치운 게 도무지 말이 되느냐는 국민적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야말로 대표적인 모럴 헤저드가 아니냐는 것.

게다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증권업계의 주식 관리 체계가 매우 허술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젠 증권회사 직원들의 개인적 도덕불감증 차원을 넘어 삼성증권, 나아가 증권업계 전반의 ‘모럴 헤저드’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 확산되고 있다. 설사 직원 한 사람이 전산 처리를 잘못해 ‘원’ 대신 ‘주’라는 글자를 쳐 넣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해서 실제 유통되는 주식보다 30여 배나 많은 28억 여 주의 ‘유령 주식’이 그렇게 쉽게, 그렇게 정상적(?)으로 생성돼 직원들에게 배당되고, 또 그 가짜 주식이 주식시장에서 그렇게 정상적(?)으로 거래가 될 수 있느냐는 것. 주식에 어두운 일반 국민으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한 거다.

그렇게 보면 증권회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짜 주식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고, 그래서 주식시장을 대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직원들이 내다 판 유령 주식 때문에 삼성증권 주가가 한때 폭락하자 개미 투자자들은 물론 기관 투자자들도 보유 주식을 황급하게 내다 팔았다고 한다. 팔지 않은 주식 보유자들도 삼성증권 주식 가격이 하락한 만큼 눈 뜨고 고스란히 손실을 입을 수밖에. 국민연금도 400억 원대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니 이게 곧 국민 전체의 손실이 아니면 뭔가.

불똥은 이제 ‘공매도(空賣渡, short stock selling)’ 제도에까지 옮아붙었다. 공매도란 말 그대로 ‘없는 걸 판다’란 뜻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 없는 주식이나 채권을 판 후 결제일이 돌아오는 3일 안에 주식이나 채권을 구해 매입자에게 돌려주면 된다. 이를 테면, A 종목을 갖고 있지 않은 투자자가 이 종목의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매도주문을 냈을 경우 A 종목의 주가가 현재 3만 원이라면 일단 3만 원에 매도한다. 3일 후 결제일 주가가 2만 원으로 떨어졌다면 투자자는 2만 원에 주식을 사서 결제해 주고 주당 1만원의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반대로 그 이후 3일 동안 주가 올랐다면 공매도한 투자자는 그 만큼의 손해를 보게 된다. 국내 증권회사 경우 원칙적으로 개인이든 기관이든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일부 예외적으로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한 가격 형성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르는 경우에는 공매도를 허용하는 것.

그런데, 이번 사고가 ‘공매도’ 제도와는 무관하다는 금감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주식 투자자들은 공매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공매도 제도’를 이참에 폐지하라는 국민 청원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고. 하여튼, 삼성증권은 ‘모럴 헤저드’ 때문에 수습에 진땀을 빼고 있다.

 

3.

‘도덕적 해이’, 즉 ‘모럴 헤저드’란 말은 이해 당사자들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행태를 말한다. 원래는 보험 가입자들의 비도덕적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가입자들이 보험 약관을 악용하거나 또는 사고 방지에 무의식적으로 태만한 바람에 보험사고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보험회사의 손실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영국 보험회사들은 피보험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키는 윤리적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경제학자들은 위험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위험 발생에 따른 비용이 위험 행위 주체가 아닌 제3자에게 전가될 때 발생하는 비효율(inefficiency)을 모럴 해저드라고 정의해 왔다. 처음엔 사뭇 ‘경제학적 용어’였던 셈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위험을 동반하는 사업의 시행 주체와 위험 발생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는 전주(錢主)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모럴 해저드로 규정했다. 크루그먼이 생각한 전주는 형식적으로는 금융기관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들이다. 국가 경제에 악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대규모 사업의 부실을 자주 정부가 나서서 구제해 온 관행 때문이다. 소위 ‘대마불사(Too big to fail)’는 각종 대규모 사업의 여신을 담당하는 금융기관들이 방만 대출에도 대체로 망하지 않는 현실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폴 크루그만(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모럴 헤저드’는 주인(principal)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agent)이 주인이 갖지 못한 정보를 이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하고, 그 결과로 주인에게 재산상 손실을 입히는 현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주주로부터 회사 경영을 위임받은 경영자가 내부자 거래를 해 주주에게 손실을 끼치거나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관료나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정치인들이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이런 의미의 도덕적 해이에 해당되는 것. 이를테면, 이번 삼성증권의 ‘주식 배당 착오’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고객의 주식 자산을 잘 관리해 줘야 할 증권사 직원들이 자신들에게 잘못 들어온 유령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아 주주들에게 손실을 입힌 것이야말로 대표적인 ‘모럴 헤저드’가 아니겠는가.

‘모럴 헤저드’란 용어는 요즘엔 ‘도덕적으로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를 망각한 채 자신이 가진 정보, 권한, 사회적 영향력 등을 악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경우’로 쓰임새가 넓어졌다. 쉽게 말해 김기식 금감위원장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되는 셈. 정부와 기업들을 감시해 공정사회로 이끈다는 취지를 가진 NGO 출신이란 명성을 기반 삼아 국회의원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다음엔 정부 출연기관의 행정 및 재정을 감시하는 의회 권력을 이용해 피감기관을 압박해 공짜 외유를 즐긴 건 아무리 봐도 또 다른 ‘모럴 헤저드’가 아니겠는가.

하기야, 미국이라고 해서 ‘모럴 헤저드’ 현상이 없지는 않다. 2007년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 신청을 시작으로 프레디맥, 패니메이, AIG,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긴급 구제금융에 나섰다. 하지만 금융 위기를 초래한 금융기관의 경영진들이 구제금융 일부로 보너스 잔치를 벌인 것이 알려지면서,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해 시위를 벌였던 거다.

2007년 은행 파산을 우려한 예금자들이 영국의 '노던 락' 은행의 지점에 몰려들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2008년 금융위기로 18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AIG 임원들은 그해 말 1억 6880만 달러의 막대한 성과급을 챙겼다. 45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씨티은행의 CEO 비크람 팬디트도 382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2009년 말 월스트리트 38개 금융기관의 성과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에게 국민의 혈세인 ‘구제금융’은 ‘사적 이익의 빨대’였던 것.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격분해 이를 회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미 의회는 ‘보너스 회수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있다. 이런 사례도 미 국민을 격분시킨 것 중의 하나다. 2008년 금융위기 뒤에도 미국 일부 기업 경영진이 회사 소유 제트기를 사적 용도에 수천만 달러를 들여가며 썼다는 거다. 이들 중에는 익스피디아나 페이스북, 구글, P&G 등 국내에 익숙한 기업 경영진도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보도에 따르면, 미국 S&P 500대 상장기업들의 10% 가량이 제트기 운용 전체 비용의 약 3분의 2를 임원 개인용도 비행에 썼다는 것. 이를테면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회장 베리 딜러는 2005년부터 2015년간 총 1200만 달러(약 144억 원)를 제트기를 사고 타는 데 썼다는 거다.

‘모럴 헤저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사회적 정의와 공정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독버섯이기 때문이다. 어물전을 잘 지키라고 믿고 맡겼더니, ‘도둑고양이’가 돼 야금야금 생선을 먹어치워서야 어떻게 신용사회가 유지될까.

 

4.

대표적인 ‘모럴 헤저드’로 꼽히는 삼성증권 사태는 우선 그 근본 원인부터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연루된 내부 직원은 물론, 회사에 대해서도 명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 대한 보상도 따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아가 그게 삼성증권만의 문제인지, 여느 증권사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제도적 허점인지 철저하게 따져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일.

마침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이번 사태에 대해 “증권사의 모럴 헤저드”라고 질타했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지난 9일 “불법으로 규정된 무차입 공매도의 유사 사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제도적으로 점검을 해봐야 한다”면서 “그런 일이 생겨서 주식이 입고됐는데 그걸 거래했다고 하는 건 일반인이 봐도 이해할 수 없고. 직업윤리로 봐도 이해 안 되고 용납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문제가 있다면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라며 “증권사 내부시스템, 공매도 문제를 점검해 분명하게 시정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조치해야 한다”고도 했다니 정부의 후속 대책을 지켜볼 일이다.

김기식 금감원장에 대한 뒤처리도 마찬가지. 야당은 이번 일을 지방선거용 호재로 삼아 총공세를 펴고 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인사 기준은 딱 한 가지 ‘내편이냐?’다. 아무리 상상을 초월하는 불법 행위와 거짓을 자행해도 내가 임명하면 ‘국민들 쯤이야’라는 독선이 깔려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여비서까지 대동해 뇌물여행을 하고, 정권의 실세를 데려와 600만 원대 억지 강의료를 수수하고, 우리은행 돈으로 단독 외유를 갔다면 사퇴를 떠나 뇌물죄로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야 할 범죄자가 아닌가” 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도 공방전에 나섰다. 그는 “피감기관 돈으로 여성 인턴을 대동해서 해외여행을 했는데, 해당 인턴은 1년도 안 돼 9급 정식비서로 기용, 7급으로 승진됐다는 이야기는 취업 못해 가슴이 멍든 청년들 울리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김기식 원장을 해임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이 김기식 원장이 여성 인턴과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은연중에 마치 ‘부적절한 관계’라도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려는 것은 정도를 넘어선 정치공세로 자제돼야 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청와대의 대응에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청와대는 여전히 해임 사유가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김기식 원장의 출장은 공적인 목적으로 적법하며 해임에 이를 사유는 아니다”란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김 원장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할 일. 참여연대의 핵심 멤버로서 그 동안 얼마나 강력하게 정부와 기업의 도덕적 일탈을 꾸짖어 왔나. 이번 일을 유야무야 얼버무리는 건 ‘자승자박’이다. ‘내로남불’이란 소리를 피할 수 없게도 된다. 나아가 ‘금융권의 포청천’이어야 할 금감원장이 이런 시비에 휘말린다면 어떻게 영이 서겠나. 당장 김 원장이 ‘삼성증권 사태’를 개혁의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집도할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와대도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해임하는 게 정도가 아닌가. 구구하게 감싸 줄 일이 아닌 거다. 글쎄, 김 원장을 해임한다면 야당이 계속 이를 지방선거에 써먹을 게 걱정도 될 것이고, 청와대의 검증 책임론도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있을 순 있겠다. 어쩌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높다는 것에 의지해 얼마간 버티면 잠잠해질 것이란 예측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건 국민들이 납득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지금 빨리 정리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서 계속 정부와 여당을 괴롭힐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국민들은 냉정하고, 민심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 이번 일이 ‘문재인 정권’의 권력 누수의 시발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대통령 개인의 높은 지지도에 취해 엄벙덤벙 때울 일이 아닌 거다. 참모진이 건의를 망설이거든 문 대통령이 얼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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