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법 2년 4개월간 ‘위헌’ 방치...참정권 무시하는 국회 “세비는 왜 받나”
상태바
국민투표법 2년 4개월간 ‘위헌’ 방치...참정권 무시하는 국회 “세비는 왜 받나”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8.04.24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참정권이 2년 넘게 근거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 관련 법률인 국민투표법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법 제14조 제1항에는 ‘국내에 거소신고를 하지 않은 재외국민’은 투표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2016년 1월 1일부터 위헌상태가 됐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4년 7월 24일 이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 조항이 국민의 본질적 지위에서 도출되는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투표는 선거와 달리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절차이고, 국민투표권은 국민 자격이 있는 사람(재외국민 포함)에게 반드시 부여해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 판결은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킨다. 헌재는 당시 2015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이 있는 것으로 결정했다. 따라서 2016년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헌법상 국민의 권리인 국민투표권을 실행할 근거 법률이 사라진 상태다.

사실 국민투표법 개정안은 6월 헌법 개정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와 별개 사항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참정권에 눈을 감고 있다. 그것도 무려 2년 4개월 동안이다. 총선 때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욕을 먹어도 함께 먹어서 그런지, 국회의원들이 별로 신경을 안 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민주당원 댓글공작 규탄 및 특검 촉구대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국민한테서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주권자의 권리를 못 본 척하는 희한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고도 세비를 받아가는 의원들의 배짱이 놀랍다. 아니, 의원들의 몰염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 불쌍하게 됐다. 대의제(代議制)의 위기론이 제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의원들이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느냐 하는 문제는 대의성(代議性, representativeness)과 맞닿아 있다. 정치학에서 대의성 개념은 ‘대리인’ 또는 ‘수탁인’ 모델로 구분하기도 한다. 대리인의 경우 국회의원이 유권자의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의 심부름만 충실하게 이행하면 된다는 논리다.

반면 수탁인 모델은 의원의 의지가 강조된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국회 내 의안 투표과정에서 설사 지역구민들의 뜻에 배치되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부합한다면 그 길을 선택한다는 말이다.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서울 청계천 촛불집회(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하지만 우리나라 국회의 상황은 이런 모델들과 거리가 조금 있다. 지역구민들의 뜻이나 정치적 신념이 아닌, 소속 정당의 ‘지침’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정당 지도부가 공천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부의 의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6월 개헌이 무산되면서 국회를 향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당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인 명부 작성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감안해 설정한 국민투표법 개정 처리 마지노선은 이달 23일이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여부를 둘러싼 국회 파행으로 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한 것이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시행은 지난 대선 당시 각 당의 공통 공약이었지만 정치권은 책임에 대해 거론조차 않고 있다.

문제는 국민에게 마땅한 응징 수단이 없다는 거다. 의원들이 권한을 위임한 국민의 뜻을 거슬러도 다음 선거 때까지 꾹 참는 것 말고는 속수무책이라는 게 대의제의 한계이다. 선거운동 기간에만 고개를 숙이고 임기 내내 나 몰라라 해도 달리 취할 방도가 없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하루빨리 도입되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18세기 영국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의회의 권력남용 정치를 매섭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아메리카 식민지를 지배하던 영국이 자국의 권리와 법적인 권한만 내세워 식민지에 대한 과도한 과세를 하자 이를 경고한 것이다. 그는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정책을 펴야 서로 이익도 되고 정의로운 정책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편적 원리에 귀를 막은 우리 국회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인 듯하다.

버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참정권이 낮잠을 자고 있어도 별 문제가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국민의 심부름꾼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주인을 얕보는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에 대한 정치적 ‘갑질’이 따로 없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