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가야와 페니키아, 그리고 ‘해양수도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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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가야와 페니키아, 그리고 ‘해양수도 부산’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3.11.2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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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야사 다시 보기
고김해만 중심 해양왕국 가야의 면모
지중해 장악한 해양국가 페니키아 연상
낙동강 하구의 미래가치 및 비전에 활용을

가야가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9월 고대 가야를 대표하는 가야고분군(Gaya Tumuli) 7곳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정식 등재했다. 영광의 고분은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고, 경관이 보존되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대가야의 왕도인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 전경(사진: 박창희 기자).
대가야의 왕도인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 전경(사진: 박창희 기자).

세계유산 가야... 의외의 쾌거 

가야의 세계유산 등재는 ‘의외의’ 쾌거다. 기록이 없어 지금까지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해 온 그 가야사가 아니던가. 삼국시대의 주변부에서, 삼국의 부수적 존재로 다뤄져온 가야. 그 비운의 가야가 세계문화의 한 축이 됐다는 건 쾌거 이상의 문화충격이다. 흐린 눈을 닦고 불멸의 가야사를 다시 본다.

가야는 이야기 제국(諸國)이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6가야, 연맹,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순장, 철의 왕국, 가야 토기, 수로왕, 허왕후, 우륵, 해상왕국 따위다. 많은 가야 이야기 중 가장 드라마틱하면서 역동적인 키워드는 아무래도 ‘해상왕국’이다. 가야는 철을 중심으로 강과 바다의 물길을 열어 세계와 교역하고 역동적 해양 문화를 창출했다. 그 거점이 전기 가야땐 김해의 봉황동이었다. 봉황동에서 발굴된 ‘가야의 배’ 유물은 해상왕국의 실체에 다가서게 한다. 가야시대 고(古)김해만은 지금보다 해수면이 5~6m 높아 봉황동 유적지는 천혜의 국제무역항이 될 수 있었다.

지형 변화를 감안할 때 낙동강 하구의 수위도 그만큼 올라갔을 것이고, 당시의 강과 바다는 교역선들이 오가는 황금 기수역을 형성했을 터이다. 고 김해만을 근거지로 역사지도를 그려보면 기원전후 사천의 늑도 세력과 창원의 다호리 세력을 만나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합천의 옥전고분 세력, 고령의 대가야 세력이 등장한다. 늑도 세력 외 가야 제국(諸國)은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낙동강 연맹체를 이뤘을 것으로 본다.

가야가 해상왕국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철이 자리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國出鐵’(국출철)이라 하여 ‘나라(가락국)에서 철이 생산되어 낙랑지역부터 왜까지 수출한다’고 적고 있다. 가야시대때 철은 최고의 고부가가치 자원이었다. 특히 ‘덩이쇠’라 불린 철정은 요즘의 반도체라 할 수 있다. 가야는 주변국들이 탐낼 만한 철을 보유해 해상교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금관가야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사진: 박창희 기자).
금관가야의 선진 문화를 보여주는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사진: 박창희 기자).

'동아시아 지중해'의 패권 장악  

가야의 해상교역 전통은 기원 전후 사천의 늑도유적에서 실상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1985~86년 부산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가야 사람과 개의 뼈가 출토되었고, 늑도식 토기와 반량전‧오수전 같은 중국 화폐, 그리고 낙랑토기, 일본의 야요이 토기가 다량으로 확인되었다. 늑도는 이른 시기 가야의 국제무역항이었다.

늑도와 봉황동뿐만 아니라, 함안 아라가야와 고성 소가야의 해상교역 활동도 꽤 활발했던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 드러나고 있다. 아라가야는 마산만 진동을 통해 바다로 나갔고, 소가야는 고성을 거점으로 해양교역을 펼쳤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에서 나온 토기와 금동제고배, 신라계 장식 마구, 일본계 토기와 장식 등은 백제-가야-일본으로 이어지는 소가야의 해상무역을 증언한다.

‘삼국유사'에는 김해의 가락국을 상대로 해상교역권 쟁탈전을 벌이는 포상팔국 중의 하나로 아라가야가 등장하기도 한다. 가야 각국이 해상교역에 몰두해 있는 모습니다. 

이같은 가야 제국의 해상교역 활동을 두고 일각에선 ’동아시아 지중해 해상왕국‘이란 의미를 부여한다. 가야의 해상교역은 단지 역내에 머물지 않고 한중일이 어우러지는 동아시아 해양문화권을 그려낸다. 

금관가야가 해상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은 그에 걸맞는 조선술과 항해술, 철 제조기술, 교역의 상술, 손재주 등 기술적 문화적 바탕이 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야인들의 해양족 DNA는 새로운 연구대상이다. 9세기 신라의 해상왕으로 통하는 장보고의 길을 앞서 개척한 사람들이 바로 가야인이기 때문이다.

고대 페니키아와 가야의 닮은 점 

해상왕국 가야는 고대 지중해에서 패권을 장악한 페니키아와 닮은 데가 있다. 페니키아는 기원전 25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약 2000년 간 존재했던 해양국가다. 육지형 국가와 달리, 해양국가는 교역을 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강이나 해안을 따라 적절한 협력 거점지에 영토를 형성한다. 떨어져 있어도 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기에 연맹체란 말을 쓰기도 한다.

페니키아의 본토는 김해 가락국과 마찬가지로 ‘여뀌잎처럼 좁은 땅’이었으나 전성기때는 교역을 통해 로마보다 휠씬 넓은 활동 범위를 가졌다. 지중해를 무대로 활동하며 기술, 문자, 예술 등 다방면에 족적을 남겼으나, 자체 역사기록이 남아 있지 한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세기, 페니키아에 대한 기록 및 유물들이 대거 발굴되면서 해양제국의 면모가 밝혀졌는데, 이런 상황이 가야사의 전개와 아주 흡사하다. 아닌게 아니라 페니키아와 가야는 닮은 꼴 세계적 해상왕국이었다. 

이쯤되면 자연스레 뭔가 떠오른다. 바로 ’해양수도 부산‘이다. 부산항의 개항 원년을 1876년 부산항 강제개항으로 잡느니, 1426년(세종 8년) 삼포개항으로 잡느니 논쟁할 것도 없이 해양수도 부산의 웅혼한 뿌리는 가야의 해상왕국 스토리에 닿아 있다. 금관가야가 자리한 김해는 경남인데, 부산이 그걸 품을 수 있냐고? 이런 식의 협량한 시선으로는 글로벌 해양도시를 열지 못한다. 해상왕국 가야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열린 마인드를 품고 있었다. 배울 부분이 있다.

낙동강 하구에서는 낙동강 하구 세계자연유산 등재, 국가도시공원, 맥도그린시티 조성사업 등이 뜨겁게 논의되고 있다. 여기엔 가야의 역사자산이 깊이 통찰되어야 하겠다. 낙동강 하구는 지역 초월, 문화 초월, 지형 초월의 통찰적 시선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야 할 신해양의 기수역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는 건 단견이다. 낙동강 하구에 시공을 초월해 날아드는 새들처럼 크게 넓게 조감(鳥瞰)하고 조망(眺望)하는 열린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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