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태백 황지에서 '낙동강 시원(始原)'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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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태백 황지에서 '낙동강 시원(始原)'을 묻다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4.02.04 08: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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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江友들 태백 황지서 낙동강 시원제 열어
발원지의 의미 새기며 생명 평화 공생 다짐
황지연못 지나친 관광자원화 이대로 좋은가

‘…혁명의 숫눈길을 걷고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조화로 가득 찬 산과 골짜기, 강물을 걸을 때마다 조용히 우리들의 발걸음을 지켜보시며 오직 무사 안전한 강유(江流)가 되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보살펴 주소서. 신령님이시여! 바라오니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해 주시옵소서. 낙동강이 살아나게 해 주시옵소서…’

지난 1월 27일 태백 황지 연못에서 ‘낙동강 시원제(始原祭)’가 열렸다. 부산의 시민모임 ‘흐르는 강물처럼’이 이끈 행사였다. 시원제는 강의 발원지에서 시작이나 처음의 의미를 새기는 제의다. ‘낙동강 천삼백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고 적힌 발원석 앞에 단촐한 젯상이 차려졌고 제문이 낭송되었다. 부산에서 올라간 30여 명의 강우(江友)들은 무릎을 꿇고 낙동강 사랑을 다짐하고 생명 평화 공생을 기원했다.

지난 1월 27일 태백시 황지에서 여린 '2024 낙동강 시원제' 모습이다(사진: 생명그물 제공).
지난 1월 27일 태백시 황지에서 여린 '2024 낙동강 시원제' 모습이다(사진: 생명그물 제공).

처음 열린 시원제라 형식과 내용이 생소했지만, 강 사랑의 마음은 모두가 하나였다. 누가 시킨 것도, 요구한 것도 아닌 강우들의 자발적 행보였다. 임시 제주를 맡은 문정현 서봉리사이클링 대표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문화가 살고 자손이 산다”고 말했다. 동행한 고전연구가 장희창 선생은 ‘사랑하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괴테의 말을 소개하면서, “기계의 마음을 버리고 우리 안의 자연을 되찾아 공생의 원리를 이 자리에서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태백 시민들은 신기한 듯, 의아한 듯 제의를 물끄러미 구경했다.

2024 낙동강 시원제에 참가한 부산의 강우들이 발원석 앞에 모였다(사진: 생명그물 제공).
2024 낙동강 시원제에 참가한 부산의 강우들이 발원석 앞에 모였다(사진: 생명그물 제공).

삼수령에서 만난 김상화 선생 

강우들은 이날 한강 발원지인 태백시 창죽동 검룡소를 찾은데 이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태백시 적각동의 삼수령(三水嶺)에서 발원의 의미를 되새겼다. 삼수령은 우리 나라 삼강(三江:한강·낙동강·오십천)의 또 다른 출발점으로 알려진 곳. 삼수령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삼척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흘러간다. 전통지리학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현장이다. 

강우들은 삼수령에서 평생 낙동강 생명찾기 운동을 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고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의 안식을 빌었다. 2022년 12월 세상을 떠난 김상화 대표의 유골 한줌이 뿌려진 삼수령, 백두대간의 눈쌓인 산길에서 나무가 된 고인을 위해 강우들은 술 한잔을 올리며 그의 발자취를 떠올렸다. 누군가 나직히 말했다. “당신(김상화)의 강 사랑 정신, 생명 평화운동을 우리가 잇겠습니다. 하늘에서도 우릴 도와 주시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관광지로 변모한 황지 연못

이번 시원제는 발원지의 의미를 새삼 반추하는 계기가 됐다. 낙동강 발원지로 널리 알려진 태백 황지는 갈 때마다 묘한, 다소 황당한 느낌을 받는다. 도심 관광지로서 너무 상업화 되었다고 할까. 하루 5천 톤씩 솟아나는 황지 연못(상지)의 신비에 잠시 감동을 받다가도, 주변의 어수선함에 짜증이 난다. 발원석, 황지 기념석, 전설의 며느리상, 황지 스토리 보드 등 이것 저것 기념물과 조형물이 너무 많다. 볼륨을 높여 내지르는 주말 버스킹도 귀에 거슬린다.

겨울철 태백 눈축제 시즌이면 황지 연못은 유등, 캐릭터 경관조명 등이 켜져 불야성을 이룬다. 2023년 여름 제8회 한강·낙동강 발원지 축제 때는 ‘물놀이 太난장 파티’ 행사장에서 배출된 버블거품이 황지연못 물길에 유입돼 말썽이 됐다. 한마디로 번잡하고 산만한 발원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의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느낌과 비교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드러난다.

황지연못은 태백시가 인정하는 ‘유일한’ 낙동강 발원지다. 최장 발원지로 거론되는 천의봉 아래 너덜샘이나 금샘, 용소, 태백산 용정같은 발원지는 애써 외면한다. 각종 문헌에서 황지가 낙동강 발원지로 언급하고 있으나, 황지 연못보다 훨씬 상류로, 고지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황지천이 엄연히 존재하기에 지리적으로는 황지 연못이 발원지가 될 수 없다.

태백 삼수령 인근에서 본 백두대간의 유순한 능선(사진: 생명그물 제공).
태백 두문동재 아래에서 본 백두대간의 유순한 능선(사진: 생명그물 제공).

헷갈리는 낙동강 길이 

발원지를 어디로 보느냐는 강은 길이와 연관된다. 낙동강의 길이가 525㎞(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21㎞(환경부 하천관리지리정보시스템), 510㎞(낙동강유역환경청, 위키백과) 등으로 제각각인 것은 발원지 논란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조차 길이가 다르니 일반인들은 무척 혼란스럽다. 

태백시는 황지연못부터 황지천까지 옛 물길 840m를 2021년 복원했다. 도심 건물을 뜯어내고 가려진 물길을 되살린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문제는 이곳을 지나치게 관광자원화 하여 발원지의 신비로움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원지는 자연생태와 정신문화가 숨쉬는 곳으로 조심해서 다가가 경건한 마음으로 세계를 발원(發願)하는 자리다. 그러기에 난삽한 조형물과 난잡한 도시 소음을 차단해 물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을 체험하고 교육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찮아도 낙동강은 망국적 4대 강 사업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다. 물길은 댐 같은 보에 차단돼 있고 여름이면 녹조가 창궐한다. 수많은 공단과 이·치수 갈등, 식수원 문제도 고질병이다. 낙동강을 젖줄로 삼는 1300만 영남권 주민들이 맞딱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와 병증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함께 치유책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발원지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이 점에서 2024 낙동강 시원제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하겠다.

부산의 강우들이 낙동강 상류 비경길인 '하늘세평길'을 걷고 있다(사진: 생명그물 제공).
부산의 강우들이 꽁꽁 언 낙동강 상류의 비경길인 '하늘세평길'을 걷고 있다(사진: 생명그물 제공).

하늘세평길에서 ‘시원’ 생각

강우들은 봉화의 강변 숙소에서 하룻밤을 뉘인 뒤, 다음날 낙동강 상류 비경길인 ‘하늘세평길’을 걸었다. 강물은 얼음장 아래로 흐르다가 여울목에서 문득 시린 모습을 드러냈고, 강우들은 원시자연 속에 흠뻑 빠져들어 시원(始原)의 의미를 생각했다. 봉화 승부역에서 양원역~비동역까지 영동선을 끼고 걷는 약 8㎞ 강길은 환경단체인 생명그물이 지난 2009년부터 계속해 온 에코트레킹 프로그램이 개척한 트레킹 코스다.

봉화 삼동치의 장엄한 경관을 보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안동댐. 1976년 준공한 안동댐은 낙동강 본류를 막고 들어선 총 저수량 12억 4,800만톤의 초대형 다목적댐이다. 낙동강 상류의 수문장답게 그 역할이 막중하다. 안동댐을 찾으면 늘 하던 고 김상화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태백에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가 있다면, 안동댐은 신발원지예요. 이곳에 어떤 물이 고여 얼마나 머무는지, 어떻게 흐르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집 수도꼭지가 발원지라는 생각으로 각자 책임을 갖는 자세도 중요하지요.”

강 사랑꾼들이 모인 ‘흐르는 강물처럼’은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낙동강 시원제를 열기로 했다. 강 길에서 더 깊은 낙동강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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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낙동강 시원제(始原祭)' 축문

유세차 단기 4357년 갑진년(甲辰年) 정원 스물이렛날 오늘 저희 ‘흐르는 강물처럼’ 낙동강 강우회 회원 일동은 낙동강 시원(始原) 황지에서, 이 땅의 모든 산하와 어머니 강을 굽어보시며 모든 생명을 지켜주시는 신령님께 고(告)하나이다.

강과 산을 배우고 흐르는 강물을 닮으며 그 속에서 하나가 되고자 모인, 우리가 매월 한 번씩 강과 같이 자유롭게 흐르고자 하는데, 아무 낙오자 없이 안전하게 강행을 하게 해 주시는 신령님의 자애로운 보살핌을 어찌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그리하여, 저희가 이곳에서 겨울 차디찬 골바람 죽비같은 깨달음을 일구기 위해, 낙동강의 시원을 찾아서 감사의 시원제를 올리는 바입니다.

혁명의 숫눈길을 걷고,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조화로 가득 찬 산과 골짜기, 강물을 걸을 때마다, 조용히 우리들의 발걸음을 지켜보시며 오직 무사 안전한 강유(江流)가 되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보살펴주신 신령님이시여! 아무쪼록 바라오니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우리는 지구생태계가 붕괴 지점에 이르렀음을 발견했음에도 성장과 절대(순수)이성에 만취하여 자연에 대한 불경스런 태도를 취했습니다. 내면의 영적 깨달음을 무시했습니다.

우리는 낙동강 봉우리와 물줄기를 탐하면서 인종과 성, 문화, 종교를 포함한 모든 차이를 배격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태적인 영성과 리듬을 다듬어 미적 지혜를 찾아 가겠습니다.

천지간의 모든 생육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뜻이 있나니, 발밑의 식생, 토양, 나무뿌리, 곤충이 우리의 발걸음을 견디어 준 것에 감사하며,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 터전을 파괴하거나 더럽히지도 않으며, 새 한마리 다람쥐 한 마리와도 벗하며 지내고, 그윽한 마음으로 즐기는 강행을 하는 ‘흐르는 강을 닮은 사람들’이 되고 싶나이다.

거듭 비옵건데 갑진년 한해 무사 강유가 되고, 낙동강이 막힘없이 흐르도록 엎드려 고하오니, 천지신명이시여! 오늘 준비한 술과 음식은 저희들의 조그만 정성이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즐거이 받아 거둬 주시고 올 한해 강행 길 무사하게 굽어 살펴 주시옵고, 이 한 잔의 술을 음향하여 주옵소서.

단기 사천삼백오십칠년(4357년) 갑진년 정월 스물이렛날

‘흐르는 강물처럼’ 낙동강 강우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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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2024-02-29 06:21:04
문정현 가식적인 사람이다. 회사 직원들 돈10 원도 아까워하고 피 빨아먹고 쉽게 직원들을 짜르고!!...사회에는 기부하고 도덕적인 사람인척 행세하고! 문씨 집안에 저런인간이 있다니...수치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