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주윤발의 쌀밥 두 그릇, 척 피니의 싸구려 손목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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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주윤발의 쌀밥 두 그릇, 척 피니의 싸구려 손목시계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3.10.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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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매력적이지만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다.”

이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던 사람. 빌 게이츠가 “나의 롤 모델”이라고 추앙했으며, 워렌 버핏은 “나의 영웅이자 빌 게이츠의 영웅이지만 그는 모두의 영웅이어야 한다”고 극찬한 인물. ‘자선업계의 제임스 본드’로 불리는 척 피니(Chuck Feeney, 본명 찰스 프랜시스 피니). 그가 지난 10일(현지시각) 92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척 피니(사진: 애슬랜틱 재단 홈페이지 캡처).
찰스 프랜시스 피니(사진: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재단 홈페이지 캡처).

그는 세간에 돈만 아는 냉혈한이자 욕심 많은 구두쇠로 알려져 있었다. 직원들에게 이면지를 쓰도록 압박하고, 소송을 맡은 변호사 수임료를 깎으려 안달했다. 경제인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선 밥값을 계산하지 않으려 자리에서 남보다 일찍 일어났다. 자녀들에게도 방학 때마다 일을 해서 직접 용돈을 벌도록 했다. 두 딸의 휴대전화 요금이 많이 나오자 전화를 해지해버리기도 했다. 딸들이 전화 없이 생활할 수 없다고 하자 공중전화 박스 위치가 표시된 지도 한 장을 건네주었다.

익명으로 전 세계 병원 대학 인권단체 등에 전 재산 80억 달러 기부한 척 피니

전 세계 어느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면세점 DFS(듀티 프리 쇼퍼스 그룹). 그가 29세이던 1960년 로버트 밀러와 공동 설립한 이 면세점은 그를 세계적인 갑부로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를 ‘돈만 아는 냉혈한, 욕심 많은 구두쇠’로 여겼다.

그런데 그가 DFS의 지분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법적분쟁이 벌어져 회계장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평생 꽁꽁 숨겨왔던 비밀이 세상에 들통났다. 미국을 비롯한 경제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가 15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무려 40억 달러(한화 약 4조7200억 원)을 2900여 차례에 걸쳐 빼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돈이 비밀리에 설립한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재단을 거쳐 모두 기부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80억 달러가 넘는다. 부인과 노후생활을 위한 200만 달러와 5명 자녀에게 남긴 약간의 유산을 제외한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이다. 이 일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의 마음을 움직여 생전에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기빙 플레지(기부서약) 캠페인을 시작하게 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피니는 기부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익명으로 대학, 병원, 인권단체 등에 거액을 기부했다. 그가 기부한 전 세계 1000여 개 건물 어디에도 그의 이름이 들어간 건물은 없다. 기부를 하면서 이름이 알려지면 기부를 끊는다는 조건도 달았다. 애틀랜틱 재단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밀재단이었다.

억만장자임에도 피니 자신은 극도로 검소하게 살았다. 파티, 요트 등 화려한 생활에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화려한 삶에 괴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리무진을 팔고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비행기도 일반석을 탔다. 항공사에서 좋은 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피니는 "그런 자리에 타면 일반석보다 더 빨리 가느냐"며 거절했다. 옷은 기성복을 사 입었다. 외식은 동내 식당에서 해결했다. 아내와는 애슬랜틱 재단 소유의 방 두칸 짜리 소형 임대주택에서 살았다. 그는 13달러(한화 1만7000원) 짜리 플라스틱 카시오 전자시계를 찼다. 피니에게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가 넘는 기부금을 받은 모교인 코넬대가 15달러(약 2만 원) 안팎의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을 알고 선물한 시계였다.

'영원한 따거' 주윤발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게 가는 게 인생"

1980년대에 10대, 20대는 성냥개비를 입꼬리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약간은 불량기 있어 보이려 애를 썼다. 롱코트는 걸치지 않았지만 폼나게 성냥개비를 씹어야 하는데 붉은색 성냥 머리까지 씹어 왝왝 거리며 뱉어내기도 했다. 모두가 영화 ‘영웅본색’의 ‘영원한 따거(형님)’ 주윤발(저우룬파)를 흉내낸 치기어린 행동이었다.

주윤발은 1980년대 홍콩 느와르를 대표하는 배우였다. 주윤발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못해 휘황찬란하다. 그런 그가 며칠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기자들 앞에서 밝힌 삶과 돈에 관한 생각은 ‘영원한 따거’ 다웠다.

주윤발(사진 : 취재기자 이현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사진 : 취재기자 이현지).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갈 때 빈손으로 가도 상관없다. 나는 매일 흰 밥 두 그릇이면 충분하다.”

2018년 재산 전부인 56억 홍콩달러(약 9600억 원)를 기부하기로 해 영화팬들을 감동시켰던 것에 대한 답변이다. 또 그는 “아내가 결정해서 나는 얼마나 기부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부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게 번 돈이잖나?”라고 농담으로 받아 넘긴 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와 무소유(無所有)의 삶의 자세를 밝혔다. 그는 평소에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재래시장이나 시내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그를 알아본 팬들과 격의없이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간간이 외신에 보도되기도 한다.

최고 스타임에도 영화에 대한 겸손한 자세와 삶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순응은 인간으로서의 성숙함을 엿보게 했다. 그는 “지금은 내가 이 자리(무대)에 앉아 있어 스타 대접을 받고 대단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자리를 벗어나면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면서 “주름 가득한 늙은이를 연기하라고 해도 기꺼이 하겠다.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늙고 주름지는 것, 이게 인생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슈퍼 리치인 척 피니와 최고의 스타 주윤발. 두 사람은 모두 가난하고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룬 성취를 살아있는 동안 기꺼이 내놓은 거인들이다. 그들의 겸허한 삶의 태도와 나눔의 정신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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