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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 “그 돈은 내 것이 아닙니다”/ 칼럼니스트 최원열
  • 칼럼리스트 최원열
  • 승인 2018.10.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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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원열

세상이 하 수상하니 시도 때도 없이 울화가 치민다. 잠시 위임받은 권력으로 자기 잇속 챙기는데 급급하여 우리의 믿음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는 이른바 ‘배운’ 자들, 아니 ‘갓똑똑이’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권력과 돈, 이념에 눈이 멀어 온 나라를 진흙탕 범벅으로 짓이기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결코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폭력성은 또 어떠한가. 사랑한다고 죽이고, 시끄럽다고 죽이고, 무시한다고 죽이고, 돈 안 준다고 부모까지 죽이거나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를 살인청부하는 그 험악한 세태라니!

우리는 지금 지옥의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야만 사회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그 몸부림이란 게 뭘까.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던가! 일찍이 홉스가 천명한 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처절하게 펼쳐지고 있는 살벌한 전쟁터가 바로 ‘지금’ ‘여기’다.

세상에 폼 잡는 사람치고 향기로운 사람이 없질 않나. 그러니 구린내 나는 악취가 천지를 진동하는 거겠지. ‘사람답게 살기’가 정녕 힘든 사회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과 해야만 할 일을 분간할 수 있을진대 그렇지 못한 것을 보니 인간이 되어야 할 의무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 건 분명한 듯하다.

죽는다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그건 숙명이니까. 하지만 인간으로 사는 건 이 땅의 개개인에게 주어진 고유한 특권이기에, 사람답게 살아야 할 의무도 있는 거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에리히 프롬의 ‘존재’ 개념이 뇌리를 파고든다. 무소유와 존재는 동의어다. 스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아무도 모르게 수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예수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와 다를 바 없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다. 삶은 소유가 아닌 ‘있음’이며, 가장 신비로운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 바로 존재를 가리킨다. '맑은' 가난과 향기로운 '소리' 역시 그러하다. 마음이 물건에 얽매이지 않으니 참으로 홀가분하다. 그 선택은 너무나 값진 것이다. 향기를 맡는 것 자체가 가지고 싶은 욕심의 발로이니 꽃에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그래서 '문향(聞香)', 즉 향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스님의 일갈은 프롬의 존재 개념을 적확하게 설명해준다.

스님의 평생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은 것인가’였다. 이 또한 프롬의 ‘인생은 (매순간) 선택’이라는 정의와 맥을 같이 한다. 소유가 존재를 잠식한다는 프롬의 법칙은 법정의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말과 뜻을 같이 한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결정적인 실천법을 내놓는다. ‘행동으로 존재하라!’ 그 말이 벼락같이 머리를 후려친다.

여기 무소유와 존재의 삶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한 ‘히어로’가 있다. <영웅본색>과 <도신> 등으로 익히 알려진 홍콩 배우 주윤발. 그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게 우리 돈으로 물경 8000억 원이 넘는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다.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 내 꿈은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감동의 울림 그 자체다. 아니 철학의 핵심을 표현했다고 해야 하나.

가난해서 학교를 중퇴하고 돈벌이에 나섰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였다. 그렇게 알뜰살뜰 모았던 재산을 모두 내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배우로서의 삶을 보더라도 그는 완전 ‘별종’이었다. 휴대전화를 무려 17년 간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최고급 세단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으며, 한 달 10만 원 남짓한 용돈으로 버텼으니 그런 ‘짠돌이’가 없다. 그렇게 힘들게 쌓아올린 탑을 한순간에 허문다? 그건 순간의 선택일 수 없다. 평생 마음에 차근차근 쌓아올린 덕이었던 거다. 다만 행동으로 실천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여겼을 뿐.

주윤발, 삶의 달인이자 공감력 고수임에 틀림 없다. 공감이란 게 별건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다.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슬플 때 옆에서 어깨를 기대어주는 것, 그게 바로 공감인 것을.

그는 마음속 화두를 죽비 삼아 우리와 사회를 향해 세차게 내리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화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걱정 없이 남은 인생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주윤발은 자발적 기부를 통해 앎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부럽다. 참으로 그가 부럽다. 무소유와 존재의 삶을 실천하는 용기를 가진 그가.

칼럼리스트 최원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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