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내 새끼만을 위한, 내 새끼만의 교사를 바라는 교육현장의 악성민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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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내 새끼만을 위한, 내 새끼만의 교사를 바라는 교육현장의 악성민원들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3.08.1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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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운전 중에 만났다. 바로 앞을 달리는 자동차의 뒷 유리장에 붙은 스티커 얘기다. ‘까칠한 내 새끼가 타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훅 솟구친다. 그 스티커에선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부모의 애틋한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과 그들의 새끼들은 내 알 바 없고 오로지 내 새끼만 소중하다는 이기심이 읽힌다. 신호가 바뀌고 앞으로 끼어드는 차에도 비슷한 스티커가 붙어있다. ‘소중한 내 새끼 안에 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예쁘다고 하는데 세상 모든 부모 역시 제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식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나 그걸 꼭 저렇게 표현해야 하나 싶다. 특히 ‘내 새끼 내가 지킨다!!!’며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쌍심지를 켜거나 어깨에 번뜩이는 도끼를 메고 있는 스티커 그림을 보면 극단적이고 맹목적이며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기주의가 읽힌다. 차량 사고 때 아이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이나 소방 등 구조요원에게 알려주기 위한 용도의 ‘Baby on board’ 차량 스티커가 마치 우주가 내 새끼 중심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는 투로 변질된 것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유쾌하지 못한 차량 스티커 문구가 떠오른 것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부모의 극성스런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 뒤 교육현장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악성 민원 사례들 앞에서 참담하고 부끄럽고 가슴이 미어진다. 내 새끼만을 위한, 내 새끼만의 교사가 되길 바라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듣는 것만으로도 하나같이 끔찍하기까지 하다.

아이가 친구들과 학교에서 잡기 놀이를 한 뒤 옷이 늘어났는데 교사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다그치는 학부모, 방학 때 출산하지 않고 학기 중에 애를 낳는다고 항의하는 학부모. 매일 오후 4시에 전화로 수업내용을 보고하라는 학부모,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자와 전화를 해대는 학부모 등등. 교사들이 겪은 악성 민원들을 듣고 보노라면 이게 정말 사실일까 싶을 만큼 어처구니가 없다. 담임을 자기 자식의 개인교사로 착각하거나 하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도저히 이들의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압권은 교육부 공무원이다. 교육부 직원 A 씨는 지난해 10월 초등학교 자녀의 담임 B 교사를 아동학대혐의로 신고했다. B 교사는 수사기관의 조사 개시 후 직위해제 됐다. A 씨는 새 담임으로 C 교사가 오자 이번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A씨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 해달라', '하지마, 안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등 아들에 대해 교사가 지켜야 할 9가지를 요구했다. 여기에는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달라’ ‘칭찬은 과장해서, 사과는 자주, 진지하게 해달라’ ‘인사를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하게 강요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도 있다.

교육부 공무원이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보낸 편지(사진: ).
교육부 공무원이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보낸 편지(사진: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제공).

자신의 아이가 ‘경계성 지능’을 가지고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사설 민간연구소에서 제공받은 자료라고 하지만 그의 눈에는 자신의 아이만 보였을 뿐 교사와 다른 아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교사가 교육의 주체가 아니고 자기 자식을 위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뿐이다. 언론에 보도되고 사태가 커지자 그는 담임 교사에게 뒤늦게 사과했다. 다시 환기하지만 그는 다름아닌 이 나라 교육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 공무원이었다.

교육 현장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제 새끼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악성 민원 유발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학교 운영을 책임진 교장과 교감은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지 않겠냐며 무조건 학부모에게 사과부터 하라고 하거나 뒤로 나앉으며 나몰라라 한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호소다. 여기에다 교육부는 이번 교육부 직원의 사례에서 보듯 해당 직원의 갑질 의혹에 대한 국민신문고 제보를 받고도 별다른 징계없이 ‘구두 경고’만 내렸다. 교육부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어떤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헛다리 짚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 초등교사 사망 이후 백화제방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아동학대법 개정에서부터 지금의 교육파행을 빚은 게 ‘이해찬 교육’ 때문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체벌이 없어져 그렇다며 ‘군사부일체’ 운운하기도 한다.

교육이 바로 서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교사가 책임을 갖고 교육에 임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확보돼야 한다. 교사가 ‘모닝 콜’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로 몰리는 상황에서 교육이 이뤄질 수는 없다. 아파트 창문에서 망원경으로 교실을 들여다보며 시시콜콜 수업에 참견하는 학부모가 있는 한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 설 수가 없다. 교육부부터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교육을 바로 세우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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