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문화와 예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창원시 창동 거리... 과거와 현재를 만나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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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문화와 예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창원시 창동 거리... 과거와 현재를 만나러 가다
  • 취재기자 이지수
  • 승인 2022.11.0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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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춘의 거리라 불렸던 창동, 인구 유출 등으로 침체되기도 해
창동예술촌 골목에 놓인 예술 작품들, 지나가는 관광객 눈길 끌어
창동예술촌, 창원시의 문화와 예술 부흥에 초점 맞춰 운영할 계획
민주화 운동 발원지 창동서 3.15의거 기억하기 위해 기념관 설립

많은 인파로 북적북적했던 거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

찬란했던 과거도 시간이 흐르면 쇠퇴하고 사라져 빛바랜 추억이 된다. 창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장년층의 젊은 시절 청춘을 함께한 ‘창동’이 그러했다.

많은 시민들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거리를 거닐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창원시민들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거리를 거닐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해 있는 창동은 마산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곳이다. 창원시와 통합되기 전 전국 7대 도시라 불렸던 마산 지역의 중심 상점가였던 창동. 서울의 명동 같은 번화가였으며, 과거에는 젊은이가 자주 드나드는 청춘의 거리이자 문화의 거리였다.

창동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상점가뿐만 아니라 시민극장, 신태양극장, 중앙극장 등 여러 극장까지 있어 거리에는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창동에서 오랜 기간 장사를 했던 이정호(53, 경남 창원시) 씨는 과거 창동의 모습을 회상했다. 이 씨는 “80년대나 90년대에는 휴대폰이 없던 시기이다 보니 사람들이 극장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많이 했다. 그때도 사람이 많았지만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더 많았다”며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 친구들과 길거리 상점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물건을 많이 팔았다”고 말했다.

이정호 씨에게 창동은 청춘의 동반자와 같은 존재다. 마산에서 태어난 이정호 씨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 10대 때는 극장에 가기 위해 창동에 나왔고, 20대와 30대엔 장사를 하게 되면서 창동 거리에 나왔다. 50대가 된 지금도 이 씨는 단골 음식집에 가다가 간간이 창동을 들르곤 한다.

이정호 씨가 아니더라도 창원에서 태어난 중장년이라면 누구나 창동을 떠올리면서 그리움과 향수를 느낀다.

중장년층의 청춘을 책임졌던 창동.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예술가들이 이끄는 거리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 마산 자유 무역 지역과 한일합섬, 한국철강 등이 우리나라 수출과 산업을 주도하면서 마산은 전국 7대 도시로 부상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대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인근 도시로 이전했고, 김해와 창원, 울산 등의 인근 도시로 여러 인구가 유출되면서 마산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산 경제와 함께 성장했던 창동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활발했던 창동이 점차 침체된 것이다.

창동예술촌으로 들어가는 입구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창동예술촌으로 들어가는 입구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창동이 침체하면서 처음으로 쇠퇴한 것은 골목 상권이다. 창동을 찾는 사람이 줄면서 골목에 밀집했던 여러 상가와 극장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러던 중 2000년대에 접어들며 창원과 마산 곳곳에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섰고,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창동 골목 상권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런 창동의 골목 상권과 잃어버린 상권 기능을 재생시키기 위해 설립된 곳이 ‘창동예술촌’이다.

문화와 예술이 접목해 만들어진 창동예술촌은 ‘문신예술골목’과 ‘마산예술흔적골목’, ‘에꼴드창동골목’으로 이뤄져 있다. 창원시는 창동 일대의 빈 골목 상점을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입주시켰고, 입주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공방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예술촌 곳곳에 예술가들의 공방이 존재하는 이유다.

예술촌 공방 앞에 도자기 작품이 전시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예술촌 공방 앞에 도자기 작품이 전시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공방 앞에 놓인 예술가들의 작품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 구경이 즐거워 골목 한 바퀴를 도는 사람도 있다. 관광객 김은해(24, 부산 부산진구) 씨는 “창원에 사는 친구의 추천으로 떡볶이를 먹으러 왔다가 예술촌이라는 곳이 있어 들어오게 됐다”며 “공방들 앞에 나와있는 도자기와 그림들이 예쁘고 신기해서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갤러리가 있는 것도 봤는데 시간이 부족해 보지 못하고 가게 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창동예술촌이 생기고 작가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침체됐던 창동은 다시 활력을 띄기 시작했다. 예술촌이 생기면서 환경이 좋아졌고, 관광을 위해 찾아오는 외지인이 늘면서 상인들에게도 도움이 돼서다.

상인들은 창동예술촌이라는 좋은 자산을 지금보다 더 발전시켜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길 바랐다. 예술촌 골목에서 옷가게를 운영 중인 허수길(59) 씨는 “지금도 너무 좋다. 하지만 시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서 예술촌을 청년 창업자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며 “그러면 상가 발전에도 더 도움이 되고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청년들이 거니는 골목

예술촌에 들어서면 조각으로 만들어진 벽화와 그림으로 이뤄진 벽화만큼 눈에 띄는 게 있다. 바로 골목을 거닐고 다니는 젊은 청년들이다. 이들의 발걸음은 예술촌 골목에 박혀있는 예쁜 카페들로 향한다.

예술촌 골목길에 ‘사랑이 그린 세상’ 카페가 위치해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예술촌 골목길에 ‘사랑이 그린 세상’ 카페가 위치해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예술촌에는 모던한 분위기, 뉴질랜드풍, 복고풍 등 다양한 스타일의 카페가 영업 중이다. 특이하고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최근 청년들에게 예술촌 카페는 딱 맞는 장소다. 박민교(21, 경남 창원시)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예술촌에 있는 카페를 이용해 왔다”며 “예술촌 안에 있는 카페들은 예쁘지만 맛도 좋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특히 예술촌 카페 중 ‘사랑이 그린 세상’은 SNS에서도 인기 있는 디저트 핫플레이스다. 근처 상인들과 청년들이 추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김서인(21, 경남 창원시) 씨는 “옛 감성이 나는 카페 내부도 좋지만 맛있는 디저트 메뉴가 많다”며 카페 메뉴 중 하나인 파르페를 추천하기도 했다.

역사와 창동예술촌

창동예술촌에는 ‘김명시 장군 학교길’이라는 곳이 있다.

학교길로 향하다 만나는 알록달록한 벽화 그림은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목을 끈다. 벽화에는 총을 들고 무장을 한 채, 한 손에는 강아지의 목줄을 쥐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여성은 일제강점기 시절 ‘백마 탄 여장군’, ‘조선의 잔다르크’라 불렸던 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이다. 김명시 장군은 1927년 중국 상해의 중국공산당 상해한인지부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32년 1월까지 중국공산당 본부에서 활동했다.

알록달록한 벽화에 김명시 장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알록달록한 벽화에 김명시 장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김명시 장군 학교길은 2020 창원시 양성평등기금으로 창원시도시지원센터가 기획한 ‘도시재생, 젠더로 기록하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성친화거리 시민참여기획단- 도시와 여성’의 참여로 조성됐다. 마산의 독립운동가인 김명시 장군을 알리고 기억하고자 소녀 김명시의 발길이 닿았을 길에 그의 삶을 기록했다고 한다.

김명시 장군 학교길 외에도 창동예술촌에는 1955년에 개점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학문당’ 서점과 폐관했다가 작년 4월 26년 만에 부활한 ‘시민극장’ 등을 통해 창동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학문당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마산 창동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서점이다. 1980년대에 호황을 누렸으며, 그 시절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오차순(76, 경남 창원시) 씨는 “한자로 적힌 간판이 달려 있던 게 엊그저께 같다”며 “책을 고르는 오빠 옆에 붙어서 함께 책을 뒤적거렸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시민극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지역 주민에게 영화 상영 등 문화 활동을 시켜주는 지역 문화 시설의 역할을 했다. 광복 이후 1946년 ‘시민극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기까지 여러 번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또, 시민극장은 1995년 폐관하기 전까지는 학문당과 함께 그 시절 대표 만남의 장소 중 하나였다.

예술촌을 돌아다니며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창동예술촌에서 진행 중인 ‘예술촌 탐방(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창동예술촌의 과제와 향후 방향성

올해 창동예술촌이 개촌 10주년을 맞이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시작한 창동예술촌은 지금까지 도시재생과 상권 활성화 등의 여러 과제를 안고 있었다. 지난 10년까지는 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앞으로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창원시의 문화와 예술 부흥에 초점을 맞추고 운영할 계획이다.

지역 시민들이 창동예술촌을 떠올렸을 때 ‘재밌는 곳’,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 전략을 세울 예정이다. 이지훈(48) 창동예술촌 아트디렉터는 “지금까지 앤디워홀 전시 및 지역 최초 기획인 미디어아트 전시를 진행해 왔다”며 “앞으로도 지역에서 접해보지 못한 콘텐츠를 계속 기획해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창동예술촌의 소식은 홈페이지 및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받아볼 수 있다.

창동 민주화의 거리

창동은 청춘의 거리이기도 하지만 ‘민주화 거리’이기도 하다. 창동이 1960년에 일어난 마산 3.15의거 발원지다.

‘인권자주평화다짐비’가 한 손에 꽃을 잡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인권자주평화다짐비’가 한 손에 꽃을 잡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창동예술촌에서 코아양과 쪽으로 내려가면 ‘3.15의거 발원지'와 ‘민주화 거리’가 나온다. 민주화거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며 만들어진 ‘인권자주평화다짐비’와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에서 민주화의 흔적을 찾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은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 3.15의거를 기억하기 위해 그 출발점인 곳에 설립됐다. 3.15의거와 4.19혁명이 발생했던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26일까지의 민주화 역사를 당시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

1층 전시관에서 3.15의거 당시 사진을 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1층 전시관에서 3.15의거 당시 사진을 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기념관은 각 층마다 관람 가능한 전시실이 있다. 지하에는 영상실과 휴게실이 있으며, 1층에는 안내데스크와 3.15의거 발생 배경 설명과 당시 사진 자료들을 볼 수 있는 제1전시실인 ‘깊은 울림’이 있다.

경찰에 연행되는 고등학생의 모습과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시민들의 사진 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김지민(16, 경남 창원시) 양은 “교과서에 실려 있던 사진이 아닌 사진들은 처음 봤다”며 “행방불명자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으로 모인 가족들 사진을 봤을 때는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2층에는 3.15부정선거 방법과 3.15의거의 전개 과정 및 4.19혁명까지의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는 제2전시실인 ‘강건한 울림’이 있다. 사진과 자료의 내용은 터치 화면을 통해 자세히 볼 수 있으며, 방명록에 글도 남길 수 있다.

3층에는 민주화 운동사와 창원시 민주화 유적지 전시, 민주화 거리 구간 위치도를 관람할 수 있는 제3전시실인 ‘힘 있는 울림’과 교육실이 있다.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은 매주 화요일에서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오후 2시와 오후 4시에는 매일 2회 상시 관람 해설을 진행하고 있으며, 1층 안내데스크나 전화를 통해 접수 가능하다.

활기를 뛰기 시작하는 창동

침체된 직후 텅 비었던 거리는 다시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며 점차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창동 부림시장에서 여러 사람이 물건을 구경하며 걷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창동 부림시장에서 시민들이 물건을 구경하며 걷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수).

사람들은 평일과 주말, 밤낮을 가족들의 손을 잡은 채 창동을 거닌다. 비록 과거만큼의 활기를 되찾기엔 아직 어려움이 많지만 지역 시민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보영(54, 경남 창원시) 씨는 “창동이 예전처럼 북적북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창동은 예술촌과 민주화거리 외에도 조선의 15대장이라 불리었던 ‘부림시장’과 ‘통술 골목’, ‘아구찜 거리’, ‘250년길’, ‘아고라 광장’ 등 다양한 곳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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