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전원 ‘정답 처리’... 학생들이 이루어낸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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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전원 ‘정답 처리’... 학생들이 이루어낸 ‘쾌거’
  • 취재기자 허시언
  • 승인 2021.12.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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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지문 자체에 명백한 오류 있어” vs 평가원, “학업 수준을 가리기 위한 타당성은 유지돼”
수험생, 평가원의 결정 불복하고 법정 밖에서 여론전 벌여... 프리처드 스탠퍼드대 교수 “모순이 있는 문제”
2022학년도 대학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대해 법원이 오류 인정...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 취소
논란이 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수험생들은 풀이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형을 가진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지문 자체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사진: 생명과학Ⅱ 문제지 캡처).
논란이 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수험생들은 풀이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형을 가진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지문 자체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사진: 생명과학Ⅱ 문제지 캡처).

지난달 치른 2022학년도 대학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대해 법원이 오류를 인정했다. 교육당국은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대해 모두 정답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20살 안팎의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 낸 결과다.

학생들은 지난달 18일 수능이 끝난 직후 정답이 공개되자 곧바로 이의신청을 했다. 논란이 된 생명과학Ⅱ 20번 문제는 두 동물 집단 가운데 ‘하디·베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는 문제다. 수험생들은 풀이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형을 가진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지문 자체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문항 속 조건이 완전하지 않지만 학업 수준을 가리기 위한 타당성은 유지된다며 기존 정답을 유지했다.

이에 학생들은 평가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학생들은 조건이 ‘완전하지’ 않지만 학업 수준을 가릴 만큼은 된다는 평가원의 주장에 맞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대형 로펌을 선임한 평가원을 상대해야 했다. 학생들은 대형 로펌을 선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법정 밖에서 여론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평가원은 문제 출제, 검토, 채점, 이의신청 및 처리까지 전부 내부에서 비공개로 진행했기 때문에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전문가들의 객관적 평가가 절실한 상황에서 국내 전문가들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공식 답변은 고사하고, 몇몇의 전문가 정도만 ‘개인적인 의견’임을 피력하며 문제가 잘못됐다는 의견을 냈다.

학생들은 국내 전문가들에게서 답변을 듣기 힘든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국내 상황에 엮이지 않고 객관적인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당 문제와 이에 대한 이의 제기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외국의 대학교수와 연구진 등에게 메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집단유전학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 조너선 프리처드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로부터 “모순이 있다. 사실 풀 수 없는 문제”라는 답변을 받았다. 프리처드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해당 문항이 우리 과학자들에게 흥미로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면서 “고등학생이 치르는 시험에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이 놀랍고 인상적”이라고 글을 올렸다.

법원은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5일 서울행정법원은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이에 따라 평가원이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은 취소됐다. 재판부는 해당 문제가 명백한 출제 오류였다고 판단했다.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출제 오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강 평가원장은 “이번 판결을 무겁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번 일의 책임을 절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대입전형 일정에 더 이상 혼선이 일지 않도록 남아있는 2022학년도 대입전형 절차를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가원 측은 항소 없이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생명과학Ⅱ 20번 문제로 인해 교육부는 올해 수능 수시 전형 합격자 발표 마감일을 16일에서 18일로 연기했다. 이 때문에 수시 전형 합격자 등록일, 수시 전형 미등록 충원 기간도 늦춰졌다. 교육부는 한차례 연기된 대입 일정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판결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전원 정답 처리되면서 생명과학Ⅱ 응시생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탐구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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