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고, 대충 때우고...대학생들 식생활 건강 ‘비상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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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고, 대충 때우고...대학생들 식생활 건강 ‘비상사태’
  • 취재기자 조봉선
  • 승인 2019.12.1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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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금전적 부담, 혼밥 기피 등 이유로 식사 거르기 일쑤
김밥, 햄버거, 핫바, 라면 등 불량 식품 일변도...20대 염증성 장 질환 발병률 증가
전문가, “삼시세끼 건강 식사로 젊을 때 건강 챙겨야”

대학생 김민지(21, 경남 창원시) 씨의 하루 일과는 아침식사를 거른 채 시작된다. 창원에서 마산까지 통학하는 김 씨는 지각을 면하기 위해 아침 기상부터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학교에 가기 바쁘다. 학교에 도착하여 수업을 열심히 듣고 나면, 어느새 시간은 점심시간. 하지만 김 씨의 점심 식사는 편의점 샌드위치와 음료수 하나가 전부다. 김 씨는 “아침은 등교하느라 바빠서 못 먹고, 점심은 공강 시간이 짧아서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는다.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건 저녁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즘 불규칙한 식습관을 가진 대학생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식생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기반의 식생활평가지수 개발 및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남녀 1만 5954명을 대상으로 한 연령대별 식생활평가지수에서 20대가 100점 만점에 57.5점으로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의 식생활평가지수인 63.3점보다 낮은 점수로, 대부분 60점을 넘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대의 식생활 건강은 평균보다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생활평가지수는 100점 만점으로 측정된다. 지수 점수가 높을수록 과일·채소, 고기, 생선, 잡곡, 유제품 등의 건강식품을 많이 먹고, 점수가 0에 가까울수록 지방, 나트륨, 당, 음료류 등 해로운 식품을 많이 먹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수가 57.5점이란 안정적인 식생활 수준인 70점을 훨씬 밑도는 수치로 매우 불규칙하고 불균형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른 연령별 식생활평가지수. 19~29세의 점수가 57.5점으로 연령대별 식생활평가지수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만큼 식생활이 불규칙적이고 불균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도표: 질병관리본부 자료, 시빅뉴스 제작).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른 연령별 식생활평가지수. 19~29세의 점수가 57.5점으로 연령대별 식생활평가지수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만큼 식생활이 불규칙적이고 불균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도표: 질병관리본부 자료, 시빅뉴스 제작).

대학생들이 불규칙한 식습관을 가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이유는 바쁜 하루 일과 때문이다. 대학생 류수현(21, 경남 창원시) 씨는 간호학과 전공 실습으로 인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류 씨는 일주일 대부분을 한 끼만 먹는 때가 많다. 류 씨는 “간호학과 특성상 실습이 많다 보니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굶거나 삼각김밥, 햄버거 같은 걸로 때우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현수(21, 경남 창원시) 씨도 바쁜 일과로 인해 끼니를 챙겨 먹기 힘들다. 김 씨는 관광학부 학생으로, 수많은 과제와 공부, 근로활동 등으로 인해 달력에 스케줄이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때문에 김 씨는 코앞에 있는 편의점에 다녀올 틈도 없어 간단한 끼니 해결조차 힘들다. 김 씨는 “바쁜 시간에는 이동 시간조차 아깝다.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굶고 할 일 하나를 빨리 끝내는 게 낫다”고 말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바쁜 일과로 인해 제때 밥을 챙겨먹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많은 대학생들이 바쁜 일과로 인해 제때 밥을 챙겨먹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대학생들이 불규칙한 식생활을 하는 데에는 금전적인 부담이 큰 탓도 있다. 대학생 강은혜(21, 경남 거제시) 씨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식권을 구매하지 않아 대부분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강 씨가 식권을 구매하지 않은 이유는 기숙사에서 제공되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거니와 무조건 80장 이상을 사야하는 식권 구매 시스템으로 인해 늘 남게 되는 식권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정된 용돈 내에서 음식을 사 먹는 강 씨는 식비로 지출이 생길 때마다 생활비 걱정부터 앞선다. 강 씨는 “아무래도 밖에서 자주 사 먹을수록 생활비가 줄어드니까 배가 별로 안 고프다 싶으면 굶기도 하고, 컵라면으로 자주 때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금전적인 부담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벌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 김소연(21, 경남 마산시) 씨는 부모님이 주는 용돈 20만 원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비 40만 원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김 씨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돈이 부족하다. 김 씨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도 관리비를 내고 수업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 남은 돈으로 어떻게든 생활해야 하니 굶거나 라면으로 하루를 버틴 적도 많다”고 말했다.

혼밥의 어려움도 대학생들이 불규칙한 식생활을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학생 조주현(24, 부산시 사하구) 씨는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에 복학하니 선·후배, 동기들이 대부분 졸업해버려 혼밥을 해야 하는 때가 많아졌다. 그런 조 씨에게 혼밥은 난제 중에서도 최고 난제다. 조 씨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혼밥을 하기는 부끄럽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먹을 수 있는 삼각김밥이나 핫바 같은 걸 자주 먹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규칙한 식생활은 혈기왕성한 20대 젊은이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국제 학술지 ‘Journal of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에 실린 곽민섭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0~2016년 건강보험심사평가 자료에 나타난 연령대별 염증성 장 질환의 발병률에서 20대의 발병률 증가 폭이 다른 연령에 비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대표적 염증성 장 질환인 궤양성 대장염의 20대 발병률은 2009년 10만 명당 0.67명에서 2016년 1.14명으로 증가했고, 2013년부터는 발병률 1위를 차지했다. 교수팀은 1인 가구 증가, 육식·가공식품 섭취의 증가가 젊은 연령의 염증성 장 질환 발병률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연령대별 2009년과 2016년의 10만 명당 궤양성 대장염 발병률 그래프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대의 궤양성 대장염 발병률 변화폭이 크다(도표: 곽민섭 교수팀 논문, 시빅뉴스 제작).
연령대별 2009년과 2016년의 10만 명당 궤양성 대장염 발병률 그래프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대의 궤양성 대장염 발병률 변화폭이 크다(도표: 곽민섭 교수팀 논문, 시빅뉴스 제작).

앞서 소개된 류수현 씨는 원래 소화기관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류 씨는 어릴 때부터 속 쓰림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기 일쑤였고, 가방 안에는 항상 위산 억제제와 소화제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류 씨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 위주의 식사가 류 씨의 장 건강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류 씨는 “대학에 들어오고 난 후 제때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게 되면서 장 트러블이 자주 찾아왔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와도 식습관이 똑같으니 낫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은혜 씨도 반복되는 불규칙적인 식생활로 장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최근 들어 강 씨는 소화불량과 장염 증상을 자주 경험했다. 처음에 강 씨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이 잦아졌고, 결국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강 씨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진단받았다. 강 씨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불규칙적인 식습관에 큰 영향을 받는 병이라더라. 그래서 진단받는 순간 ‘내 식습관이 그렇게까지 불규칙하고 안 좋았나?’ 하면서 반성하게 됐다. 의사 선생님이 규칙적으로 먹고 생활하다 보면 나을 수 있다고 해서 이제부터라도 노력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성대 식품영양학과 노재경 교수는 대학생들의 불규칙한 식생활에 대해 대학생들이 자기 몸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굶거나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등을 자주 먹는 식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 3, 40대가 됐을 때 장 질환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혈관계 질환과 같은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많은 대학생들이 원하는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삶이 전제돼야 한다”며 “삶의 주인인 자신이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게 되도록이면 한식 위주의 건강한 음식과 삼시 세끼 정확한 식사를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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