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비건∙동물성 의류 기피하는 비거니즘, 국내인구 15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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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비건∙동물성 의류 기피하는 비거니즘, 국내인구 150만명
  • 취재기자 정소희
  • 승인 2019.12.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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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니즘은 동물과 자연보호 철학과 신념...다이어트로 보는 건 편견
-전국에 350여 비건 전문 식당, 비건 전문 책방도 등장...편의점도 비건 식품 출시
-전문가, “비타민, 과일 등 건강기능 식품으로 영양 균형” 권고

우리나라에도 서서히 채식주의 비건(vegan)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 채식 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를 3~4%, 즉 150~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2008년 약 15만 명에서 10년 동안 약 150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비건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오고 있다.

동물 보호를 위해, 자연 보호를 위해, 건강을 위해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채식을 찾고 있다. 하지만 조용히 퍼져나가긴 할 뿐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기에 비건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 비건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 시선은 계속되고 있다. 작년부터 비건을 시작한 학생 이수진(20,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주변에서는 비건에 대한 관심들이 확실히 예전보다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채식에도 사실 여러 가지 스펙트럼과 단계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구분은 아직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비건이라고 하면 무조건 ‘채소만 먹는 사람’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건도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 대표적으로 비건(완전 채소만 먹음),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 채소, 유제품은 먹고 육류, 해산물, 달걀 먹지 않음), 오보 베지테리언(ovo vegetarian, 채소, 달걀은 먹고 육류, 해산물, 유제품은 먹지 않음),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 ovo vegetarian, 채소, 달걀은 먹고 육류, 해산물, 유제품은 먹지 않음),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 채소, 해산물, 달걀, 유제품은 먹고 육류는 먹지 않음)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육류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세미 베지테리언(semi vegetarian)도 있으며, 이렇듯 어떤 음식을 먹고, 먹지 않는지에 따라 비건의 단계도 다양하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인 학생 박 모(18, 서울시 송파구) 양은 “나는 육류를 먹지 않고 달걀, 유제품, 해산물을 허용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끊는 것은 어려워서 페스코 베지테리언에서부터 천천히 완전한 비건까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비건에서 더 확장돼, 식사뿐만 아니라 의류, 뷰티 등 어떠한 것도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비거니즘도 있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며 비거니즘도 많이 떠오르는 추세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꽃피는 4월 밀 익는 5월’ 베이커리 대표이자 작가 임은주 씨는 “동물의 가죽, 털로 만들어진 옷을 포함한 동물성 제품들을 다 끊었다. ‘끊는다’고 표현한 것만큼 가죽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동물들 소리를 외면하고 계속 가죽제품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갈등이나 사투도 많았지만 결국은 끊게 됐다”고 말했다.

비건의 단계가 다양한 만큼 비건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도 다양하다. 동물 도축 과정에서 충격을 받았던 이수진 씨는 동물보호를 위해 비건을 시작했다. 또한 김주희 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그리고 고기 생산 과정에서 회의감이 들어 비건을 시작했다. 동물과 자연을 사랑한 생태주의자 박 모 씨는 동물과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비건을 알게 됐다. 이처럼 동물 보호, 자연 보호, 다이어트 등 다양한 이유를 배경으로 비건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수진 씨는 “고기를 얻기 위해서 동물들을 도축하는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이것도 인간이 다른 개체에 가하는 폭력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한 폭력을 앞으로 없애고자 보탬이 되고 싶어서 비건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비건의 세계가 넓어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비건으로 지내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가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지 않아 아직 비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과 사람이 많은 것이다. 임은주 씨는 비건을 시작하고 곤란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학부모 여행을 간 날, 모든 사람이 해산물을 먹고, 해산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즐길 때 임 씨는 조용히 맨밥으로 허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부모들의 이야기와 식사에 끼기 어려웠던 임 씨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혼자 가만히 있었다. 임 씨는 “비건은 투명 인간이 아니다. 앞으로는 ‘나는 비건이고 비건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강조할 것이다. 비건은 내가 선택해서 한 행동이기에 그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수진 씨도 비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로 육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인 것을 뽑았다.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거나 회식을 하면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육류 위주의 식사다. 이 씨는 평소에 도시락을 챙겨 다녔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식사를 할 때도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없어서 식사 시간이 외로웠다. 이 씨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연스럽게 육류를 생각하는 것과 예절문화, 선후배 문화 등 여러 가지 문화가 합쳐져 ‘내가 고기를 먹기 싫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육류 식사 문화, 그것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보내는 비건에 대한 오해, 시선과 문화의 차이를 대부분의 비건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힘들었던 교사 김주희(32) 씨는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라고 날씬하지는 않네?”, “유난하네”라는 말을 들어왔다. ‘비건은 유난하다’는 생각이 강한 사회에서 이런 오해에 대한 대처와 해결을 하지 못하고 머쓱하게 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김 씨는 “비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소중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게 식사지만, 비건들은 그것마저 힘들다. 임은주 씨가 식당에서 달걀을 빼고 라면을 주문했으나 막상 받은 라면에는 달걀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 씨는 최대한 달걀을 가려내고 라면을 먹으려고 했지만 강하게 올라오는 달걀 냄새로 인해 라면을 먹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또한 바쁜 스케줄에 급하게 매점에 간 임 씨는 쿠키 하나를 사 먹으려 해도 우유가 첨가돼 있어 음식을 고르기 힘들어 곤란했던 적이 있다. 이렇게 항상 어떤 음식을 먹으려면 이것저것 따져서 생각하고 확인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임 씨는 “다른 것보다 식사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비건은 밖에 나가면 음식 먹기가 힘들어서 하나하나 다 확인하고 따져봐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많이 겪는다”고 말했다.

한편, 요즘은 비건이 증가하는 만큼 가장 편리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편의점에서 비건 음식을 출시하고 있다. 편의점에서도 비건을 위한 맛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다양하고 재고가 많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밖에서도 간단히 사 먹을 수 있는 비건 음식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 흐름에 따라 앞으로도 생겨날 것이며, 그만큼 비건에 관심 두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CU가 편의점 업계 최초로 비건을 위한 간편 비건 음식을 출시했다. 여기서는 100% 식물성 단백질 고기로 만든 햄버거, 김밥, 도시락 등을 판매 중이다. 세븐일레븐에서도 식물성 콩으로 만들어진 고기를 이용한 햄버거와 김밥 등을 출시했다. 조성욱 BGF리테일 간편식품 팀장은 시빅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채식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맞춰 합리적 가격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비건 간편식을 출시했다. 앞으로도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다양한 상품으로 간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CU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채식주의 간편식(사진: 취재기자 정소희).
CU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채식주의 간편식(사진: 취재기자 정소희).

비건용 간편식 외에 비건 전문 식당, 베이커리들도 생겨나고 있다. 임은주 작가와 최태석 셰프는 공동대표로 부산 수영구 망미 번영로에 위치한 ‘꽃피는 4월 밀 익는 5월’ 베이커리를 운영 중이다. 이 베이커리는 그들이 생각해왔던 가치, 비거니즘을 구현해보고자 시작하게 됐다. 여기는 동물 보호, 환경 보호, 젠더 감수성까지 갖춘 가게고 첨가물 없는 건강한 빵들로 가득하다. 임 씨는 베이커리를 찾는 손님의 15%는 비건이고, 그 외에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아토피가 있는 아이, 당뇨 등 건강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한국 채식 연합 홈페이지 전국 채식 식당 게시판 글에 따르면, 아직 비건 음식점은 전국에서 350여 곳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음식점이 생겨날 것이라고 본다. 임 씨는 “사람들은 먹는 것이 중요하니까 비건 음식도 ‘진짜 맛있다. 비건인데 이렇게 맛있어?’라는 말이 나오는 식당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식당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사람들도 많이 접하면 사람들이 비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수진 씨도 “사실 부산이나 다른 번화 지역에는 비건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장소도 꽤 생겨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비건 식당들이 생겨난다면 더 많은 친구가 비건에 관심을 갖고 비건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에는 약 31개의 비건 음식점이 있다. 수영구 9개, 해운대구 5개, 동래구 4개, 금정구 3개, 진구 3개, 북구 2개, 중구 2개, 강서구 1개, 사상구 1개, 연제구 1개로 다양하게 부산에 자리 잡고 있다. 주로 베이커리와 카페가 많으며, 버거, 인도 음식, 한식, 중식 등 종류도 다양하다. 임 씨는 “앞으로는 더 경쟁력 있는 비건 음식점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비건 음식점은 부산이 강세라서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꽃피는 4월 밀익는 5월’ 비건 베이커리에서 첨가물 없는 건강한 빵을 판매 중이다(사진: 취재기자 정소희).
‘꽃피는 4월 밀익는 5월’ 비건 베이커리에서 첨가물 없는 건강한 빵을 판매 중이다(사진: 취재기자 정소희).

식당뿐만 아니라 부산에는 비건 책방도 있다. 부산시 망미동에 위치한 비건 책방 ‘비비드’에는 다양한 비건 책들이 진열돼 있다. 그 중 임은주 씨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책을 비건 입문자용 책으로 추천했다. 이는 미국의 유명 작가가 쓴 책으로 직접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엮어냈다. 또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비건 입문자용 책이라고 한다. 임 씨는 “인간이 동물을 억압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겠으며 억압이 재생산되는데 가담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 비건이다. 그것을 잘 간파한 책으로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비비드 책방에는 비건, 페미니즘, 퀴어 관련 책들이 다양하게 진열돼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소희).
비비드 책방에는 비건, 페미니즘, 퀴어 관련 책들이 다양하게 진열돼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소희).

현실적으로 비건으로 생활하기가 힘이 들지만, 반대로 많은 비건들은 그로 인해 더욱 꼼꼼하고 섬세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요리를 하지 않던 사람도 요리를 시작하게 되고, 어떤 첨가물이 들어있는지, 어떤 유해한 성분이 들어있는지 체크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음식의 재료와 원산지 등을 따지고 채소를 많이 섭취하다 보니 건강은 덤, 섬세한 성격과 감수성까지 미묘한 변화가 생겨난다. 김주희 씨는 “비건을 하면 고기를 생산해 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지구 파괴적인 요소들을 만들어 내지 않아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아직 비건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활발한 교류로 제법 역동적인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비건은 앞으로도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동물권리를 더 알리기 위해, 또는 건강을 추구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이유와 방식으로 비건은 커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물론 비건도 쉽지 않기에 결정을 하기 전 많은 고민과 주의가 필요하다. 김주희 씨는 “단순한 마음이 아닌 많은 고심을 하고 난 후에 비건을 선택하면 좋겠다. 생각보다 이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이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건을 하면서도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비건 식단을 통해 많은 영양소를 얻는 만큼 반대로 육류에서만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도 있다. 채소 위주의 완전한 비건을 하게 될 경우, 육류를 통해 섭취할 수밖에 없는 영양소가 갑자기 차단돼 칼슘 부족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유영숙 센텀힐병원 영양팀장은 “식물성 식품은 철분을 섭취할 때 동물성보다 체내 흡수율이 낮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과일을 같이 섭취하여 흡수율을 높이는 것이 옳다. 과일에는 비타민C, 구연산 등 유기산이 풍부해서 철분 흡수율을 높이는데 도움 된다. 또는 철분제 같은 건강기능식품으로 보충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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