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분위 결정은 엉망인데, 성적장학금 없애고 소득장학금만 남긴다?
상태바
소득분위 결정은 엉망인데, 성적장학금 없애고 소득장학금만 남긴다?
  • 부산시 금정구 김지현
  • 승인 2019.11.20 0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대가 “내년부터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서울대는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는 대신, 소득 8분위 이하 학생들의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고려대, 서강대도 이미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을 확대시켰다.

상위대학들이 장학금을 성적중심에서 소득중심으로 변화시키면서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아르바이트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는 하위소득 수준의 학생들은 성적 장학금을 받을 확률이 낮아 성적 장학금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장학금으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공부의 기회를 주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항상 소득분위를 측정하는 시기가 오면, 학교 커뮤니티에는 “소득분위의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글이 올라온다. 현재 소득분위는 월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월 소득환산액을 더해서 산정된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넉넉하게 사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를 가지고 재산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재산 명의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소득 산정이 4인 가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다자녀 가구에게는 불리하다고 한다. 또한, 매번 신청할 때마다 소득분위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많아 학생들은 기준이 모호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고,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킨다. 소득분위 산정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소득분위만으로 장학금을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국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니지만, 내 친구는 상황이 다르다. 친구는 부모님의 소득이 적어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친구가 살고 있는 15년도 더 된 오래된 집이 자가여서 소득분위가 원래 집안형편보다 높게 나왔다. 그래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교를 다녔다. 친구는 성적 장학금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이렇게 소득분위는 높게 측정이 되더라도 실질적인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성적 장학금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성적 장학금을 아예 폐지하려면, 소득분위가 높지만 실제로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이 역차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학은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학의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성적 장학금이 존재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대학은 의무교육이 아니고 자기가 돈을 내고 공부의 뜻이 있어서 다니는 곳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만으로는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 장학금이 필요한 경우는 다양하고,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남겨놔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을 확대하되, 성적 장학금의 액수를 축소하더라도 함께 공존시키자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런 논란을 잠식시킬 수 있는 것은 등록금 인하다.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을 확대하려는 노력보다 모든 학생이 이득을 볼 수 있도록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주 수입원이 학생들 등록금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등록금을 인하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성적 장학금 폐지에 대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성적 장학금 폐지가 학교 재량인 만큼, 학교 재학생들의 의견이 녹아있어야 한다. 단계적으로 축소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폐지하려면, 더더욱 학생들의 상황과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 없이 독단적으로 성적 장학금 폐지를 진행한다면 학생들의 반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