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은막 이후 삶이 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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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은막 이후 삶이 더 아름다웠다
  • 김민남
  • 승인 2019.08.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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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시절보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의 삶이 더 아름답게 빛나다
동료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장례식에서 "하늘이 천사 한 명을 더 갖게 됐다"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2)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당시 세기적 미남 배우로 이름을 떨치던 그레고리 팩과 주연으로 등장, 단숨에 영화계의 샛별이 되었다. 이 영화에서 헵번은 18세 청순한 이미지의 앤 공주로 출연하여 신문기자 그레고리 팩과 동화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헵번은 이 영화 외에도 <전쟁과 평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백만 달러의 사랑> 등에 출연했고 제26회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도 받았다.

오드리 헵번(사진: pxhere 무료 이미지)
오드리 헵번(사진: pxhere 무료 이미지)

그러나 헵번의 삶은 영화계를 떠난 이후에 더욱 빛이 났다. 그녀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고 너무도 값진 삶을 살았지만, 그러한 후반 인생은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거니와, 또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도 않았다. 그녀는 한마디로 전 세계 가난한 어린이들의 어머니였고 지극한 사랑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굶주림에 허덕이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찾아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한 방울의 힘도 남기지 않고 헌신했다. 화려한 은막을 누비던 삶과 비교하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희생이고 헌신이다. 아프리카 열대의 척박한 오지에서 벌어진 그녀 일상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아시아 방글라데시와 중남미 엘살바도르까지 달려갔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대부분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사하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헌신과 희생으로 엮어진 그녀의 후반 삶이 출발한 지점이다. "희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그녀 말에서 우리는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을 사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녀 개인의 사재(私財)를 털어 시작한 봉사였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고, 신문과 방송 등의 보도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뒤에 세계 빈곤 어린이들을 돌보는 유엔 산하 기구 유니세프(unicefㅡfor every child) 친선대사(親善大使)로 위촉되었다. 60대 초반이었다. 1년 보수 1달러, 교통비와 숙박비 외에는 받지 않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삶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날 갑짜기 대장암 말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치료한 의사가 마지막에 "최선을 다했지만, 죄송합니다. 암이 온 몸에 퍼져 있어서ㅡ" 라고 말하자 헵번은 오히려 의사를 위로한다. 

"선생님, 저한테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그게 제 숙명(宿命)이니까요." 그때 헵번의 나이 63세였다. 짧지만 적어도 빛이 지구의 절반을 밝게 한 그녀의 한 생이었다.

헵번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아주 빈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나치 추종자로 독일 히틀러에게 가버려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삶을 만들어내는지 오드리 헵번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녀의 장례식에 조문을 온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천사(天使)를 갖게 되었다." 

착하고 아름다운 천사가 지상에서 너무 오래 고생한다고 하늘이 잠시 쉬어가도록 불러들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2019년 8월 13일, 묵혜(默惠) 김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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