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고향유정(故鄕有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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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고향유정(故鄕有情)
  • 김민남
  • 승인 2019.09.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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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귀향길에 적은 시 한 수
"친구는 뿔뿔히 흩어졌어도...고향은 그래도 고향으로 남아 있구나"
친구들은 뿌뿔히 흩어졌어도 고향은 그래도 고향으로 남아 있다고 작가는 노래를 부른다. 사진은 어느 시골 농가의 모습(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친구들은 뿌뿔히 흩어졌어도 고향은 그래도 고향으로 남아 있다고 작가는 노래를 부른다. 사진은 어느 시골 농가의 모습(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고 향 유 정(故鄕有情)>

마실 앞을 흐르던 
상천(上川) 하천(下川)은
바닥을 드러내 돌밭이 되고
한내는 수풀이 우거져 
흐르는 물을 멈춰 세운다 

송송 구멍뚫린 돌담길은 
시멘트 블록이 
무너질듯 기울어 있고
세 누님 누이가 
물을 길르고
빨래하던 동네 우물은 
가느다란 골목길이 되고
정겹던 방망이 소리가 
멈춘지 오래다

멍한 눈길로 꼬리를 치며 
파리를 쯫던 
마굿간 황소는 
다시는 볼 길이 없구나 

뒷동산 소나무 그네를 타고 
오월 단오 바람을 날리던 
울긋불긋 치마자락
어여쁜 처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스무살 수줍은 충청도 색시
낯설고 물선 경상도로 시집와서
어느듯 칠십년 세월에 
묻어난 흰머리 형수씨
미수(米壽)에 이른 그 형수씨
등굽은 한 그루 소나무처럼
선산(先山)을 지키고
오손도손 종가(宗家)를 
여기까지 갈무리해 왔으니
이제 나와 안사람이 
고마운 절을 올려야겠다

그런데도 저녁엔
형수씨가
정갈한 이부자리를 곱게 펴주시고
단술 두 사발 머리맡에 놔주신다
큰며느리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구수한 된장 밥상을 챙기기에 
손길이 바쁘다

돌아오는 길에는 
참기름 조청 단술 감홍씨가
차에 가득하다

마을 앞을 구비치던 한내는 
여기저기 메말랐고 
학업을 잇지 못한 아이들 
동사(洞舍)에 모아 
야학(夜學)시키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찾을길 막막해도
강물처럼 흐르는 
그 고향유정(故鄕有情)은 
아직
고향으로 남아 있구나

2019. 9. 15 
추석 귀향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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