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인류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두 사건...고대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 그리고 일본의 8.15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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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인류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두 사건...고대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 그리고 일본의 8.15항복
  • 김민남
  • 승인 2022.08.2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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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마침 8월9일이 들어간 대목에서 눈길이 멎었다. 소설 '로마인 이야기' (제5권)의 '파르살로스 대회전'(大會戰)이다. 또 이날은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미국의 두번째 원자 폭탄이 떨어져 '대일본제국'을 '치욕'의 항복으로 몰아넣었다. 신으로 격상된 일본 천황이 적군에 허리를 굽힌다는 건 일본인들에겐 있을 수도 없고, 있었어도 안되는 '천지개벽'이다. 그런데 그런 '사고'가 결국 8월15일 정오에 터져버렸다.

이 두 사건은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가 돼,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BC 49년 8월9일 고대 로마의 공화정(共和政) 말기, 원로원 파의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BC 106-48)장군과, 8년간이나 유럽 원정을 끝내고 로마로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44, 쥴리우스 시저로 읽히기도 한다) 장군이 그리스(Greece) 아테네 북쪽에서 운명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

줄리어스 카이사르 동상(사진: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율리우스 카이사르 동상(사진: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폼페이우스는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려는 원로원 의원들과 귀족들에 떠밀려 원로원을 고수하는 장군으로 추대되었다. 유럽 여러 전쟁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개선식도 뒤로 미뤘다. 네 마리 백마가 이끄는 이 개선식은 로마 장군에겐 필생의 영광이다.

그러나 원로원은 '최종권고'를 결의, 카이사르를 졸지에 국가반역자로 몰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유명한 '루비콘강'을 건너 그리스로 도망간 폼페이우스와 원로원 의원들을  추격하는 개혁파 장군이 되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젔다." 말이 좋아 개혁파(改革派)지 그를 따르는 귀족세력은 한사람도 없었다. 여기서 개혁이란 공화정으로는 더이상 로마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카이사르의 인식이다.

8월9일, 이들은 한낮의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그리스 중부의  파르살로스 평원에서 서로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5만4000명의 대군을 거느린 폼페이우스는 그보다 3배 가까이나 적은 2만4000명의 카이사르 군에 참패했다. 원로원파의 오만과 김치국부터 먼저 마신 천박한 판단 탓이었다.

패장 폼페이우스는 겨우 30여 명의 수하들만 거느리고 그리스를 떠난다. 짙은 쪽빛의 에게해를 지나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의 이집트 왕국에 몸을 맡기러 망명(亡命) 길에 올랐다. 그는 당시 로마의 동맹국이자 그의 '클리엔테스'(피보호국 및 그 국민을 일컫는 라틴어)인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 항구앞, 세계 불가사의의 하나인 거대한 '파로스' 등대 부근 해상에서 이집트왕의 '화려한' 영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집트왕실 환관들과 15살의 어린 왕은 이미 승자가 된 카이사르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의 끝에 폼페이우스를 살해하기로 결론낸다. 그들은 마중하는 척 하며 숨겨온 칼을 폼페이우스의 옆구리에 들이댔다. 칼을 휘두른 이 암살자는 샙티무스라는 과거 한때 폼페이우스의 부하(백인대장)였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쫓긴 했지만 이런 비극적 결말은 상상도 못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항아리에 담긴 삼두정(三頭政) 당시의 동료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는 폼페이우스를 정중히 화장해서 본국 알바의 별장에 머물던 그의 아내에게 보냈다. 이 덕분에 그의 무덤은 아직도 이탈리아에 남아있다.

이때 카이사르는 만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는 딱 한마디,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아낄 줄 알았다. "나는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서야 그의 죽음을 알았다"고. 후세 사가(史家)들은 이렇게 적어 전하고 있다. 

이로써 로마 공화정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도시국가 로마는 제국주의 체제로 들어선다.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역적(逆賊)으로 몰렸던 카이사르는 로마의 제일인자(임페라토르)가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카이사르는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살려준 마르쿠스 브루투스 세력 일당들에게 암살된다. 칼에 찔린 카이사르는 검붉은 피가 낭자한 토가 자락을 여미며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브루투스 너마저."

곧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된다. 그는 자기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18살의 앳된 소년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점찍어 뒀다. 로마인은 원래 '법(法)의 민족'이다. 카이사르의 유언은 그대로 법이 되었고, 누구도 거기에 토를 달지 않았다. 카이사르를 죽인 배신자 브루투스 일당들도 오래 영화를 누리지 못했다. 카이사르 세력 안토니우스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이후 로마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옥타비아누스는 훗날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皇帝)로 등극하는 아우구스투스 대제(大帝)다. 그의 나이 30세 때다. 

카이사르는 8년간 800여 곳 전쟁터를 누빈 장군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 보는 안목도 뛰어난 걸세출의 영웅이었다, 또 대단한 문장가요 시인이다. 그가 남긴 '갈리아 전쟁기'나 '내전기'가 그걸 잘 말해준다. 당시 로마의 유명한 변호사이자 시인인 키게로나 '플루타르쿠스 영웅전'도 카이사르의 문장력을 높이 평가했다.

가령 카이사르가 파르살로스 회전 다음해인 기원전 47년 6월 말. 시리아 등 소아시아 일대를 평정한 후 로마 원로원에 보낸 승전 보고서는 정말 놀랍다. 딱 세 마디의 이 간결한 보고서는 30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라틴어).

공화정 세력은 카이사르 암살엔 성공했으나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는 막을 수 없었다. 로마는 도시국가 틀을 벗어던지고 엄청난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帝國)으로 변신한다. 
동쪽으론 소아시아와 터키의 젤라, 서쪽으로는 영국(브리타니아), 프랑스(갈리아), 북쪽으론 독일(게르만)의 라인강과 그 아래 도나우강, 남으로는 스페인(에스파냐)과  북아프리카에 걸치는 대 제국으로 올라섰다. 이들 지역에 파견된 속주(屬州) 총독이 무려 13명에 이르렀다.

이 '제국'이 2000여년 후 20세기 초에 되살아 났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중심이 된 현대의 제국주의다. 이들은 아프리카, 인도 등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명과 무력을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유신(維新)혁명에 성공한 일본도 여기에 뛰어들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1910년 국권을 잃고 35년간 식민지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때 많은 국민들이 독립투쟁과 먹고살기 위해 중국, 북간도 시베리아 등지로 남부여대(男負女戴) 망명길을 떠나야 했다. 피눈물이 압록강 두만강 푸른 물결을 잠재웠다.

구약성서에 보면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40년 간이나 광야를 헤맨다(성서에서는 흔히 '출애굽기'라고 한다). 이 시기 전후 이스라엘 민족의 '디아스포라'(移散)가 시작된다. 이 디아스포라가 이 시대 한반도에 다시 소환된 민족적 비극이었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할 때 고심을 거듭했다. 처음엔 일본의 고도(古都)이자 과거 수도였던 교토(京都)로 결정됐다. 장소를 결정하기 위한 미국의 관련 위원회가 거듭 소집됐다. 일부 위원들이 일본의 고대문화와 유적을 보호하고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교토는 불가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결국 군수공장이 집결돼 있는 나가사키로 최종 결정됐다. 

일본 군부가 첫번째 히로시마 피폭 때 두손을 들었다면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이처럼 역사라는 것도 우연의 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역사가 때로는 별게 아닌 것, 역사 무대사(歷史 無大事)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최선진국 그 일본을 해방 70년만에 극복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우리 역사도 다시한번 뛰지 않으면 3만 달러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다. 거의 절체절명이다. 지금의 정부와 국민의 어깨가 그 어느 시대, 어느 때보다 막중한 이유다. 

우리는 지금 이웃나라를 속국으로 만들기 좋아하는 사회주의 중국과 러시아, 핵과 미사일을 움켜쥔 3대(三代)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북한과 재무장 태세에 들어간 일본 등에 에워싸여 있다. 

거기다 지금 거대 야당은 자기네 정부가 어질러놓은 적폐도 모자라는지 파트너에 대한 인용(忍容)과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로남불'도 예사다. 3천년 거리를 둔 카이사르의 말이 또한번 여기 소환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관용"(寬容), "여유"(餘有) 등은  카이사르의 철학이요 종교다. 이 시대에도 절실한 가치다.

나라를 끝내 지켜내는 힘은 국민이다. 국민을 넘어서는 정치는 없다. 이 정부는 우리 앞에 쌓인 적폐와 불법을 망설임없이 씻어내야 한다. 새로운 도약에 힘을 모을 때다. 어영부영할 시간은 단  1초도 허용되지 않는다.♡♡♡
 
2022.8.9 묵혜(默惠) 김민남, 
동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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