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기적처럼, 서설처럼 잘 넘기고 풀렸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동백섬 계단 아래 곱게 물든 단풍잎 몇 닢이 흩날린다. 수없이 오고가는 내외 관광객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죄도 없이 밟히고 있었다. 마음이 좀 안쓰러웠다. '너는 왜 하필 이 계절에 태어났느냐'고 뜬금없이 물어본다. 아파트 마당에도 노란 은행잎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래도 낙엽(落葉)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를 흥얼거렸다.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 입고서
남쪽 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오라 부탁하노라."
계절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왔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고개 숙이고 물러간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그칠 날 없이 시끄럽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특히 심상치 않다. 겨울이 되면 으레 차가운 북풍(北風)이 몰아친다. 올해는 거기다 핵을 앞세우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오락가락'과 지소미아 파동, 그리고 한미동맹 파열음 등 안보 틈새를 노리며, 북한은 연일 우리를 깔아뭉게고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뱉어내고 있다. 북쪽의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얕보일 빌미를 만들었는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50만 군의 국방 강국인 우리로선 좀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딘가 우리가 '고장난 시계'로 비친 듯하다.
일본과의 무역 마찰과 한미동맹까지 흔들리는 조짐이 '간밤에 또 한 조각 먹구름'이 되었나 보다. 이 한 점 구름이 하늘을 떠돌며 간혹 해를 가려 맑은 가을을 흐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잠시나마 눈길을 돌려 이 가을을 한 번 만나자.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과 푸른 바다와 갖가지 단풍들은 우리가 밀어내지 않아도 곧 떠나간다. 그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안아줘야 할 일상의 오랜 벗이 아니던가. 중국 속담에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일상이 곧 기적이다.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기적을 만들며 살고 있다는 걸 종종 놓치고 있다.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해파랑길을 한바퀴 돌고 집에 들어 오니 현관 문 앞에 창원단감 두 상자, 하동대봉감 한 상자, 사과 한 상자가 기다리고 있다. 대학 제자들과 친구의 정성이 담긴 가을의 선물이다.
그저께는 두 제자와 점심을 같이했다. 회사 일과 국정에 바쁜 시간들을 쪼갠 것이라 고맙고 미안했다. 한 제자는 22일이 내가 주례를 서준 결혼 날이라고 한다. 꼭 이 날을 챙긴다고 하면서 고단한 한 시절을 돌파한 아름다운 삽화 한 토막을 그려주었다. 이들이 끝없이 파랗고 파아란 이 가을을 내게 한 번 더 불러다 주었다. 이것 역시 기적이고 축복이다.
두 장 남은 달력을 들추었다. 11월 22일, 이 날은 24절기상으로는 소설(小雪)이다. 첫 눈이 내리고 추위가 가팔라진다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節期)다. 그러나 제자들에겐 소설(小雪)이 아니라 언제나 서설(瑞雪)이길 바란다.
하늘을 우중충하게 하는 하수상(何殊常)한 시국(時局)과 우리들을 슬프게 하는 한때의 '부조리'(不調理)들은 역사가 보여주듯이, 높고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앞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다. 하늘의 마음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진리고 헌법이다.
가을이 오면 푸른 잎은 늘 붉은 치마로 갈아 입게 된다. 어느 누가 이 거대한 자연을 거역할 수 있을까. 가을의 마지막 자락에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오늘 아침 친구가 전해준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All for the Love of a Girl, 자니 허턴)이란 가을같은 노래 가락이 겹쳐진다. 어쩌면 이 모두 떠나는 가을이 아쉬워서인지 모르겠다.
2019년11월 24일
묵혜(默惠) 김 민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