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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이후...노벨상은 남 주고, 평화만 갖는 길동무 되길/ 편집위원 이처문

80년 전 뮌헨회담은 나라간 협상에서 ‘매파’가 ‘비둘기파’를 몰아붙일 때 곧잘 써먹는 사례로 등장한다. 유럽에 전운이 감돌던 1938년 9월 29일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독일 뮌헨에서 히틀러와 전쟁을 막기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히틀러의 불가침 약속을 믿었고, 그 대가로 전략적 요충지인 체코 주데텐을 독일에 넘겼다.

체임벌린은 귀국 후 “평화가 왔다”고 선언했지만 1년 뒤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짧은 평화는 깨어지고.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 전쟁을 불렀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1938년의 뮌헨회담. 맨 왼쪽이 체임벌린 영국 수상, 왼쪽에서 세번째 사람이 히틀러(사진: German Federal Archive)

하지만 정반대의 평가도 있다. 체임벌린 덕분에 영국이 시간을 벌어 2차 대전 때 독일의 공세에 버틸 수 있었다는 진단이다.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체임벌린의 평화주의가 실패가 아닌 전략이었다는 거다.

영국 외무부는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6년 “영국이 재무장하는데 최소 2년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영국으로선 히틀러의 야욕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뮌헨협상을 전후해 영국은 1937~1940년 사이에 50여 개 레이더 기지를 구축했다. 공군력도 1938년 이후 2년간 10배나 강화했다. 900여 개의 대피소도 만들었다. 뮌헨협상으로 번 1년이란 시간이 영국을 버티게 했던 셈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체임벌린’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쏘아붙인다. 세계인이 지지하는 회담을 ‘어처구니가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뮌헨회담의 한쪽만 바라본 데서 오는 오류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정상회담 이후’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정상회담 이전’이 분단의 고착화였다면, 그 이후는 평화시대다. 회담 이전이 적대감이었다면 이후는 동질감이다. 평화의 집을 무대로 펼쳐진 ‘환송 영상쇼’는 ‘위장 평화쇼’라는 공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도보다리 벤치에서 30분간 이어진 두 정상의 회담은 한국전쟁으로 산산조각났던 ‘평화’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리게 했다. 비핵화와 핵폐기가 무언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설마 이러다가 통일되는 것 아닌가” 하는 설렘을 갖게 했다. 그렇게 하루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설마’가 ‘현실’로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남북교류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남북 정상의 도보다리 회담(사진: 청와대 제공)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돌이 항아리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요, 항아리가 돌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다.” 이유야 어쨌든 깨어진 항아리의 불행일 뿐이라는 거다. 인간의 힘으로 항아리 조각을 붙이려고 애를 써도 헛된 노력이다. 새 항아리를 구해야 한다. 과거의 불행에 연연해 조각들을 이어 붙이려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라는 말이다.

한반도의 비극이 그렇다. 분단으로 빚어진 과거의 모순은 깨어진 대로 내버려둘 일이다. 두 정상의 만남과 대화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면 그만이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노래했듯 남과 북은 두 갈래 길 가운데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 선택이 한반도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

분단에 젖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대화와 협상은 유약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전략일 뿐이다. 하지만 핵우산이나 전술핵으로 안보를 지키겠다는 낡은 발상은 깨진 항아리나 다름없다. 핵 자체가 재앙이다. 평화를 외치면서 정전상태를 옹호하는 이율배반으로는 이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기 어렵다. 미국이 변하고, 중국도 바뀌고 있다. 과거의 언어로 현재를 이야기하면 미래가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는 북측 속담을 언급했다. 김정은 위원장을 가리켜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길동무”라고도 했다. 불신을 걷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보다 뛰어난 외교 전략은 없을 듯하다. 종전선언에 이어 남북교류와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려면 두 정상이 길동무가 돼야 할 것이다.

남녀간 사랑이 한 여름 느닷없이 퍼붓는 장대비라면, 우정은 봄날에 내리는 보슬비와 같다고 했다. 때론 돌부리에 걸리고, 때론 거센 물길을 만나겠지만 믿음으로 버텨낼 일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보슬비 같은 우정을 맺는데 성공한다면, 올 가을엔 한반도에 평화의 가랑비가 내릴 거라 믿는다.

편집위원 이처문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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