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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가 두려운 인사들의 고춧가루 뿌리기....그들도 ‘톨레랑스’의 대상인가/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파리 크로아상처럼 우리 언어 생활에도 깊숙이 자리잡은 프랑스 말 ‘톨레랑스(tolerance)’는 일반적으로 ‘관용’으로 번역된다. ‘관대함’이나 ‘자비’라는 의미도 품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뉘앙스가 다르다. ‘관대함’, ‘자비’ 속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여유, 즉 힘의 불평등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반면, ‘관용’은 힘의 평등관계를 전제로 한다. 타자(他者)와 타자성(他者性)에 대한 존중, 남을 인정하는 적극적인 관용이 ‘톨레랑스’의 본령이다.

톨레랑스를 사유체계로 정립하고 실천적 행동으로 표현한 사람이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다. 평생을 권위, 비관용과 맞서 싸웠다. 그의 일대기도 거의 대부분 무슨무슨 책을 내고 무슨무슨 성명을 발표하고 누구누구의 분노를 샀으며 투옥되거나 망명했고 누구누구를 비판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속에서 셀 수 없이 재치있는 말을 많이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명언이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이다. 1770년 2월 르리슈라는 철학자에게 보낸 서신에 이런 문구가 들어있었다. (실제로는 “저는 당신의 글을 경멸하지만 당신이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였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볼테르의 사상을 정리한 이블린 홀이 <볼테르의 친구들>이란 책에서 그 서신 내용을 약간 변용해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대표하는 이런 명언을 만들어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볼테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프랑스 지성은 이런 톨레랑스에 익숙하다. 종교나 인종, 피부색, 이념체계의 다양성에 대해 유럽에서 가장 관용스러운 사회분위기가 형성된 곳은 프랑스다. 이슬람 과격세력의 테러가 파리 중심가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 중동인의 입국을 규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이를 매섭게 공격하고 쑥 들어가게 만든 것 역시 프랑스 언론이었다. “아무리 테러가 공포스럽다고 해도 프랑스답지 않은 비관용을 정책화할 수 없다”는 논지였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는 마지막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을 허용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격렬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드골. 알제리 사태 수습을 위해 프랑스 국민들이 이미 정계를 은퇴한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이다. 이때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말과 글로 식민지의 반인간성, 반역사성을 강력하게 외쳤다. 뿐만 아니라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 책임자로 나서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알제리인들이 갹출한 독립지원금 돈가방의 전달책임자를 자원했던 것이다.

1942년의 드골(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프랑스 경찰의 감시를 피해 그의 책임 아래 국외로 빼돌려진 자금은 알제리인들의 무기구입에사용됐다. 그의 행위는 문자 그대로 반역행위였다. 당연히 사르트르를 법적으로 제재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골 대통령 측근들 입에서도 나왔다. 이에 대해 드골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사르트르(사진: Creative Commons)

톨레랑스, 즉 사회적 관용의 존재 이유는 “내 머리로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통제된 일방적 주입정보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일면을 접할 필요가 있다”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사회 속에 다양한 사고의 표현이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표현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함이 이니다. 생각을 하고 판단을 내리기 위함이다. 표현의 자유는 생각을 할 때 비로소 존재의미를 갖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톨레랑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지성 드골과 사트르트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톨레랑스를 실천했다.

온 국민들에게 벅찬 기대감을 안겨주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남북평화의 분위기에 갑자기 찬바람이 몰아쳤다. 북한이 10일 새벽 남북고위급 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이다. 조선 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된 성명은 최근 진행 중인 한미 연합훈련 ‘맥스선더’를 문제 삼았다. F-22 랩터 스텔스전투기 등이 동원된 이 훈련이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난동”이라는 것이다. 또 “천하의 인간 쓰레기들이 국회 마당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을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중상”한 것도 거론됐다.

곧이어 북한 외무성 제1부부장 김계관은 담화를 통해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의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다가오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측 고위층 인사 중 한 명으로 참석하기도 했던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11일 “(남측이) 터무니 없는 유감, 촉구 따위의 말을 운운하며 상식 이하로 놀아대고 있다”며 이전 남북 대결 시절에 사용했던 격렬한 용어가지 동원하며 비난했다.

이러한 북측의 돌발적 방향전환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몸값 높이기 전략으로 분석한다. 존 볼턴 국가안전보좌관 등 미국의 대북 강경론자들이 가하는 압박감을 완화시키고 트럼프로부터 최대한의 당근을 얻어내려고 벼랑끝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남측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이 역시 워싱턴을 향한 우회 공격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중국은 적극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시진핑의 뒷배 약속도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돌부리에 걸려 잠시 주춤하게 됐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평화를 향한 걸음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완연한 봄이 왔는데 꽃샘추위가 몰아닥쳤을 뿐이라는 기대감 섞인 낙관론도 나온다.

하지만 머지않아 서울에서 기차타고 유럽까지 여행하고, 평양 옥류관에서 원조 평양냉면을 두어그릇 먹어보고, 개마고원에서 마음맞는 친구들과 트래킹하는 꿈을 꾸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지금 행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만일 그동안 애써 만들어진 평화 무드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느낀다. 심지어 남북 관계가 다시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북핵위기가 재점화되면서 미국의 대북한 군사공격이 현실화되면 어쩌나 하는 위기감도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그러다보니 이번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태영호 전 주영공사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다. 태 전 공사는 지난 14일 국회강연과 자신의 저서 출판기념회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공격했다.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는 것이다. 한 사업소 관계자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고 즉각 처형을 지시하는 잔인함의 소유자라고도 했다. 또 “김정은이 원하는 체제보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CVID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완전한 비핵화는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쏟아냈다.

태영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이 2017년 12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인권포럼 아시아인권의원연맹 주최로 열린 2017 올해의 인권상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석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 더 팩트 이새롬 기자, 더 팩트 제공).

이같은 태 전 공사의 발언에 북한이 발끈 하는 것에 대해 남측 국민들조차 대부분 동조하고 있다. 일부 시사평론가는 종편 방송 등 패널에 나와 “최고 존엄을 그렇게 모욕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지금 한참 화해 평화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지점에 국회에 나와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국익을 심대하게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몇몇 패널들은 태 전 공사를 국회로 초빙해 그런 발언을 유도한 심재철 국회부의장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겨냥, “지방선거를 앞두고 판을 흔들어 놓기 위한 것이라면 이번에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야유했다. 또 이들은 “김기식, 드루킹 등은 불발로 끝났고 불발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태영호 건은 정확하게 과녁을 맞춘 10점짜리 화살이 될 수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다만 정치적 목적에 눈이 멀어 나라의 안보와 국익을 도외시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북한의 대남 비방 성명이 전개된 직후 청와대 게시판에는 태영호 전 공사를 국외로 추방하라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애써 만들어놓은 평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탈북자의 망동을 왜 가만두고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 공세도 가열되고 있다. “친일과 독재의 잔존 세력에게는 통일과 평화가 두려울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국민 모두의 행복과 안녕을 외면하고 나라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는 정치세력은 하루라도 빨리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볼테르와 사르트르, 드골 등 프랑스 지성이 설파하고 실천한 톨레랑스가 이곳 한반도 땅에는 요원한 신기루임을 깨닫게 된다. 어느 누가 남북 평화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태영호 전 공사와 해 한반도 평화가 불편한 몇몇 극우 인사들에게 “내버려 두게! 그들도 대한민국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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