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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봄이 시작된 시기, 대북 강경론자 해리 해리스의 주한 미대사 내정의 의미는?/ 논설주간 강성보

이런 술자리 우스개가 있다.

“남자는 미국의 큰 저택에서 순종적인 일본 여자와 함께 살며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고 프랑스식 예술과 문화를 즐기는 삶을 꿈꾼다.” 반면 “일본의 좁은 집에서 드센 미국 여자와 살며 맛없는 영국요리를 먹고 한국식으로 빡세게 사는 것은 악몽”이다.

“맛있는 중국 요리 대신 프랑스 요리”, “예절바른 영국 집사의 서빙을 받으며~” 등 나라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버전이 있지만, 어떤 나라, 어떤 버전의 우스개에서도 일관되게 들어가는 요소는 “일본여자와 함께 사는 것”이다. 일본여자는 유럽이나 미국인들에게 가슴 설레게 하는 하나의 ‘로망’이다.

19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자포네즈리’, 즉 일본 취향이 유행했다. 일본의 예술, 일본 도자기, 일본 차 등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면 모두 아름답고 멋있다는 생각이 번졌다. 일본 문화에 모든 유럽인들이 심취했다. 특히 일본화 등에 그려진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들의 모습은 유럽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기모노를 입은 소녀>라는 작품을 남겼다. 빨간 색상의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채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소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소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을 계기로 시작된 ‘자포네즈리’는 20세기 초반까지 약 30여 년간 지속된 사회현상이다. 중세기 르네상스에 필적하는 근대적 미의식을 창출해냈다는 평판에 따라 하나의 취향에서 ‘이즘(ism)’, 즉 사상체계로까지 등극했다. 이른바 ‘자포니즘’이다. 모네를 비롯해 고흐, 드가, 마네, 로트렉, 르노아르, 툴루즈, 고갱 등 초일류 예술가들, 구스타프 클림트 등 누보아르 작가들은 거의가 자포니즘에 사로잡혀 있었고, 보들레르, 생상스 등 많은 시인, 작가, 음악가 들도 오페라 <동양의 공주> 등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일본에 대한 선망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특히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 집을 무대로 미국의 해군장교 핑커톤과 나비부인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많은 오페라 팬들을 진감시켜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2막 1장에서 나비부인이 핑커톤을 그리며 부르는 <어떤 개인 날>은 최고의 명곡 오페라 중 하나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한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톰 크루즈 주연의 2003년작 <라스트 사무라이>는 일본 메이지 유신 때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명예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사무라이들과 미국인 장교 알그렌의 우정과 신념을 주제로 한 하드보일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한 것은 눈부신 스펙타클 장면 이면에 알그렌과 일본 현지 여인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알그렌은 일본 신식군대와의 싸움에서 전멸한 사무라이들의 충성심을 천황에게 알리고 낙향한다. 그가 발길을 옮긴 곳은 그의 고향 미국땅이 아니라 일본 사무라이들의 본거지에서 자신을 돌봐줬던 여인이 사는 곳이었다.

2차대전 후 미군이 대거 일본에 진주했다. 요코하마, 사세보, 오키나와를 비롯 일본열도 곳곳에 미군기지가 세워졌다. 2차대전 말기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보인 발악적 전의에 질렸던 미국 군인들은 일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일반 일본 국민들이 드러낸 뜻밖의 환대에 놀랐다. 특히 일본의 여인들은 특유의 상냥함과 친절함으로 점령군 군인들의 환심을 샀다. 군인들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에 나오는 핑커톤과 같은 로망을 품기도 했다. 일본은 당시 미군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외국 주둔지였다. 일본 여인과 사랑에 빠져 국제 결혼하는 미군도 적지않았다.

그중 한 명이 도쿄 인근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에서 근무하던 미 해군 원사 해리스였다. 그는 현지의 일본 여인과 결혼, 1956년 8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현재 차기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된 해리 해리스다. 해리 해리스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전근으로 어렸을 때 미국으로 옮겨와 테네시와 플로리다에서 자랐다. 1974년 아나폴리스(미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 1974년 소위로 임관한 뒤 해군 장교로 승승장구해 6함대 사령관을 역임하고 지난 1월 태평양 사령관을 끝으로 퇴역했다.

해리스는 혼혈임에도 모계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머니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2차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부대였던 442 전투연대 생존자들에 훈장을 수여하는 운동에 가담했으며 JAVA(Japanese American Veteran Association) 등 여려 일본계 미국인 단체 행사에도 출석한다. 2014년 태평양사령관으로 임명됐을 때 미군은 아시아계 최초의 4성장군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 내정자(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해리스는 미군내 대표적인 강경파였다. 특히 중국과 북한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북한 미사일과 중국 영유권 문제에 대해 서슴없이 강한 어조로 비난하기도 했다. 또 한미일 동맹강화와 태평양 미군 전력증강을 소리높여 주창하기도 했다.

2017년 북한이 신형 미사일을 공개하고 연달아 발사 시험을 하자, 북한의 미사일은 자신이 겪어본 최악의 위기이며 재앙으로 가는 레시피라고 언급하고 김정은은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할지 의심스러운 인물로 평했다. 선제타격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을 즈음에도 김정은의 위장 평화를 조심해야 할 것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태평양 사령관 시절 그의 집무실에는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뒤 김정일이 부하직원과 함께 파안대소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 속 김정은의 말 풍선 속에는 “LAUNCH? NO! LUNCH”라고 씌여져 있었다. 론치(발사)와 런치(점심)의 발음이 비슷한 것을 들어 “미사일 발사 말고 점심식사나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패러디 물이라고 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중국이 필리핀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에 인공섬을 건설하려 했을 때 “바다에 만리장성을 쌓다니 이 무슨 짓거리냐”고 맹비난했다. 지난해 중국 해군 함정들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자오위다오) 해역으로 진입하려 했을 때 해리스는 미군 함정을 급파해 압박하기도 했다.

당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퇴역한 해리스를 주 호주대사로 내정했다. 지난 2월 워싱턴의 네이비 야드(해군복합단지) 내 한 장군의 관저에서 해리스 대사 내정자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이 때 한 지인이 해리스에게 “이런 상황에선 주한 대사로 가는 게 맞지 않나”라는 농담을 건넸다. 그 농담이 진담이 됐다. 지난 24일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미 정부가 주 호주대사 지명자인 해리 해리스를 주한대사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이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최종재가가 나면 호주대사 지명철회, 한국정부에 아그레망 신청, 공식지명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해리스가 정식 주한대사로 임명되면 미국의 대북정책 관련 인사가 죄다 강경파로 구성된다. 볼턴 국가안보비서관과 폼페이오 외무장관, 여기에 해리스까지 매파 일색이다. 미국 언론에선 이들을 묶어 ‘대북한 삼각편대’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 이 삼각편대가 완성되면 북한의 비핵화가 완성될 때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트럼프 전략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물론 해리스가 대북 매파임에는 틀림없지만 무모한 강경론자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 그는 지난해 5월 의회에 나와 군사행동 가능성을 집요하게 캐묻는 의원들에게 “우리가 군사, 외교 조치를 모두 고려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김정은을 무릎 꿇게 하려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성을 찾게 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시작됐다. 판문점을 넘어오는 김정은의 모습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김정은은 평화의 집 방명록에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썼다. 물론 사전 준비된 방명록 글귀 몇 자에서 그의 사고체계 전체를 넘겨짚는 것은 섣부르지만 그동안 보여온 그의 파격적 행보에서 볼 때 해리스가 걱정하는 것처럼 비이성적 인물은 아닌 듯하다. 해리스가 주한 대사로 부임한다고 해도 한반도 평화의 분위기와 어긋나는 강경론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리스는 부친이 해군 항해사로 진해에서 근무했던 것을 비롯해 한국과 상당한 인연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이해와 애정, 한국민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다고 털어놓은 바도 있다. 안동소주와 하회탈 매니아라는 전언도 있다. 한국에 대해 이해도가 깊은 친한파라는 얘기다.

해리스가 실제 서울에 부임하게 될 경우 완연한 봄이 온 한반도에서 남북간의 평화무드를 만끽하는 첫 주한대사가 되기를 기대한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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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liathus 2018-05-17 13:07:22

    첫문장에 빠져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이런 경우 흔치 않은데 구성과 정보력 모두 뛰어나네요!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기사내용도 좋았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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