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과 반일, 그리고 베트남의 대범함...민족적 치욕 담담하게 끌어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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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과 반일, 그리고 베트남의 대범함...민족적 치욕 담담하게 끌어안아야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8.04.0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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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이처문

지난해 퇴직한 한 친구는 요즘 해외여행으로 시간을 보낸다. 동남아에서 유럽, 미국까지 평소 마음에 뒀던 나라들을 숨 가쁘게 오가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 자기만의 엄격한 여행 룰이 하나 있다. 절대 일본에는 안 간다는 거다. 아베 총리가 하는 짓이 너무 얄밉다는 게 그 이유다. 친구들이 “일본인들을 접해보면 친절하고 배려심도 많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는 나라에 돈을 뿌려대며 갈 이유가 없다는 거다. 이 친구 앞에서 일본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간 ‘민족의 자긍심조차 없는 놈’으로 욕먹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지나친 반일 감정’이라고 면박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느낀 인상은 친절한 국민과 깨끗한 거리로 요약된다. 수개월 전 형제들과 대마도를 방문했을 때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렌터카를 몰고 바닷가 어느 공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초행인데다 한국과 달리 좌측 통행이어서 유달리 애를 먹었다. 입구를 찾지 못해 결국 길을 묻기로 했다. 마침 길가에 기모노를 입은 60대 여성 서너 명이 눈에 띄었다. 서툰 일본어로 사정을 이야기하자 이들은 자신들의 차를 따라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이 목적지에 도착하더니 차에서 내려 종종 걸음으로 족욕장으로 갔다. 그리곤 족욕장 물에 손을 담가보더니 “지금은 족욕을 못하겠네요”라고 했다. 온수 공급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연발했다. 공원까지 안내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족욕장 가동 상태까지 점검해주는 친절함을 보고서는 ‘역시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일본인 이미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하지만 이런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가끔 들려오는 ‘혐한(嫌韓)’ 사건을 접할 때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일본의 두 얼굴이라고. 식민시대에 뇌리에 박혔던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대물림된 거라고. 그들의 핏속에 흐르는 오랜 습관이 ‘혐한’으로 되살아난 거라고. 물론 뚜렷한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지난 주 일본 오사카에서 발생한 20대 한국인 피습 사건으로 또 다시 ‘혐한’ 논란이 일고 있다. 상대가 한국인임을 간파한 용의자는 자신을 깔보는 것 같아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물론 ‘깔봤다’는 것도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오사카의 유명 초밥집에서 한국인 손님에게 고추냉이를 듬뿍 넣은 초밥을 내놓아 충격을 준 게 불과 2년 전 일이다. 같은 해 오사카의 관광지 도톤보리에서는 일본인이 길을 가던 10대 한국인 남학생을 이유도 없이 발차기 공격을 가해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혐한 분위기는 출판계에서도 감지된다. 미국인 변호사 켄트 길버트가 쓴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은 지난해 일본에서 무려 47만 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일본인을 칭찬하고 한국인을 비하하는 내용이 ‘혐한’ 논란을 낳았다. “일본인은 이타적이다”, “한국인은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잘 한다”는 내용이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다.

혐한의 뿌리 역시 반일감정처럼 식민시대의 잔재일 수도 있다. 그 시절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느껴온 민족적 우월감 또는 업신여김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19세기 후반은 뼈아픈 과거로 남아 있다. 일본은 가해자로, 한국은 피해자로 만나 갈등했던 시기다. 일본은 당시 비(非)서양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였다. 서양의 간섭으로 국가의 존망이 달린 위기의 순간, 그들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해 근대화를 이루고 국가도 지켜냈다. 영국과 맺은 영일동맹(1902) 덕분에 한일합방(1910)으로 한국에 대한 ‘보호권’까지 인정받았다.

반면 한국은 당시 외세와 근대화의 압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식민시대에 누적된 일본에 대한 증오가 오늘날까지 ‘반일감정’으로 강하게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일부 일본인들이 과거사에 젖어 그릇된 우월감으로 혐한을 부추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극소수가 저지르는 혐한 사건을 놓고 분기탱천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 과거의 증오에 사로잡혀 사사건건 과민반응을 보인다면 같은 수준의 ‘혐일(嫌日)’만 낳을 뿐이다. “일본에 가지 말자”고 화풀이해본들 몇 사람이나 수긍할지 의문이다. 지난해 오사카에만 240여만 명의 한국인이 방문했다.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 출신 축구감독을 데려간 나라가 베트남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양국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사과할 때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했던 사람들 역시 베트남인들이다. 그들의 대범함이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난 2009년 3월 4일 오전 9시 서울 홍은동 힐튼호텔에서 K리그 개막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 더 팩트 이호준 기자, 더 팩트 제공).

어쨌거나 우리도 식민시대의 민족적 치욕을 담담하게 끌어안을 때가 된 것 같다. 과거사를 잊거나 진실규명을 포기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만 분노로 다스려온 과거를 놓아줄 때가 아닌가 싶다. 설사 일본 내 극우파에 의한 몇몇 혐한 사건이 불거진다 해도 우리의 대범함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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