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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 망신시킨 꼴뚜기, 나라 망신시킨 조현민의 갑질강동수 자투리시사인문(41) ‘갑질’의 사회학, 그리고 혈구지도(絜矩之道)

1.

편집국장 강동수

우선 질문 하나부터. ‘갑질’을 뜻하는 영어단어는 무얼까? 정답은 ‘Gapjil’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는 한국어 단어 자체가 영어가 된다. ‘갑질’은 ‘재벌(Chaebol)’, ‘김치(Gimchi)’, ‘온돌(Ondol)’ 등과 같이 한국어가 원산인 영어다.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최근 미국의 '뉴욕타임스(NYT)'의 지면을 장식했을 때 이 기사는 ‘재벌(Chaebol)’과 ‘갑질(Gapjil)‘이라는 단어를 한국어 표현 그대로 옮겼다. 하고 보면 조현민은 한국어의 세계화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조현민을 2104년 ’땅콩 회항‘ 사건을 일으킨 그의 언니 조현아와 싸잡아 ’분노의 땅콩 여동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영어에는 ‘갑질’에 해당하는 똑부러진 단어가 없다. 한영사전을 검색해 보면 한 단어로 표현되기보다는 ‘자신의 힘을 과하게 씀(to overuse one's power)’라거나 ‘권력에 취함(power tripping)’, ‘우두머리 행세를 함(Being bossy)’ 따위로 풀어서 설명한다. 그 조차 ‘갑질’의 뉘앙스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풀이도 아니다. 글쎄, 그 단어가 없는 건 서양에선 ‘갑질’이 없어서 그럴까. 일본 교도통신은 한국의 갑질을 '파워하라'라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파워하라’는 힘(power)과 괴롭힘(harassment)을 조합한 일본식 조어로 상사가 부하를 괴롭히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기야 우리의 ‘갑질’이란 단어도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니 아직은 신조어이긴 하다.

뉴욕타임스는 갑질을 ‘중세시대 영주처럼 임원들이 부하 직원이나 하도급업자에게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라고 정의를 내렸다. 어쨌거나, 갑질이란 말의 유래는 다들 아는 대로다. 계약서를 쓸 때 계약 당사자를 ‘갑’과 ‘을’로 줄여 쓰곤 하는데,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갑’으로 지칭되는 데서 온 말이다. 집주인이 ‘갑’이고 세입자가 ‘을’, 고용주가 ‘갑’이고 피고용자가 ‘을’인 것처럼. 직장에선 상사가 ‘갑’의 위치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어쨌거나, 갑질이란 말이 그렇게 자주 쓰이고 때로는 뉴스까지 장식하는 건 그 만큼 우리 사회가 불평등, 불공정하다는 뜻일 터. 문명국일수록 약자에 대한 법적·사회적 보호 장치가 잘 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나 유럽은 ‘갑질’에 해당하는 단어가 굳이 필요 없을 만큼 민주화와 시민 평등권이 정착된 사회란 뜻이 되겠다. 그러니 ‘갑질’이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인 모양이다.

‘갑질’이란 말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며 세계인에게 웃음과 풍자거리를 제공한 조현민의 활극은 이미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대한항공의 광고를 맡은 대행사 직원의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친 말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는 내용이다. 아직 확인되진 않았지만 음료수병까지 던졌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 뿐이면 또 모르겠는데, 대한항공 직원이 녹음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음성 파일까지 공개돼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에이 XX 찍어준 건 뭐야 그럼”으로 시작해 “어우 이것들이 진짜 이 씨…”가 반복되는 이 음성파일 속의 여성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느낌을 줄만큼 기괴하다. 서른다섯 살의 이 여성은 아버지뻘 되는 간부들에게도 함부로 반말하고 욕을 했다는, 그것도 일주일에 서너 차례는 이런 행사를 되풀이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이전에 광고대행사의 직원에게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도 한다. “나 스물아홉 살이야, 당신 마흔 넘었지, 쉰이야? 반말 안 들으려면, 일 잘하지 그랬어?” 에휴,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더 말을 못 할 지경이다. 어쨌거나 언니와 더불어 ‘자매는 용감했다’라고나 해야 할까.

 

2.

대한항공의 광고 업무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현민은 일찍부터 광고업계에선 신화적(?)인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요즘 ‘조현민 막말 리스트’란 것도 인터넷 공간에 떠돌아다닌다. 글쎄, 그 내용의 일부만 들춰보면 이렇다. 쌍꺼풀 수술을 받고 회사에 나타난 그에게 회사의 상사가 “예뻐졌네”라고 딴에는 아부성 발언을 했다가 즉시 다른 부서로 쫓겨났다는 거다. 글쎄 어디 감히 사주의 따님에게 ‘예뻐졌네’ 어쩌네 소리를 하는 거냐는 거다.

뉴욕타임즈의 4월 13일자 조현민 기사(사진: 뉴욕타임즈 인터넷판 캡처)

머리가 허연,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 대표가 미팅 시간에 늦은 조현민을 앉아서 기다리다가 “어디 감히 대행사 대표가 광고주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서서 기다리지 않고 앉아 있느냐”고 힐난을 받았다,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광고 우드보드를 집어던지기 일쑤다, 등등.

애써 가져간 광고시안을 제대로 듣지 않는 조현민에게 어떤 광고대행사 대표가 “스텝들이 애써 만든 것이니 경청해 달라”고 한 소리를 했것다. 조현민이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그 광고대행사에 향후 20년 동안 대한항공 광고대행 금지조치를 내렸다. 그러자 그 광고대행사 대표가 조현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럼 우리는 향후 100년 간 대한항공이 우리 회사에 광고를 의뢰하는 걸 금지하겠다”고 쏘아붙였다고. 이 광고대행사 대표의 ‘사이다’ 행동은 광고업계의 ‘레전드 스토리’가 됐다고 한다. 글쎄, 인터넷을 떠도는 소문이니 믿거나 말거나.

조현아의 ‘땅콩 회항’, 조현민의 ‘물컵 투척’과 더불어 그 오빠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역시 화려한 전력을 갖고 있다. 2000년 교통법규를 위반한 뒤 단속하던 경찰관을 치고 뺑소니 친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엔 난폭운전을 나무라던 70대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고 2012년엔 자신을 취재하던 기자와 피켓 시위를 하던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욕설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고 보면, 이들 남매는 ‘대한항공 갑질 3대첩’이란 빛나는 전적을 세운 셈.

따지고 보면, 대한항공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기업 오너의 갑질 사건이 터진다. 최근의 ‘갑질 흑역사’를 큰 것만 따져 봐도 대강 이렇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동생인 M&M 대표 최철원은 2010년 10월 SK본사 앞에서 시위를 해오던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내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 등으로 폭행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맞은 대가를 2000만 원으로 받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큰 비난 여론이 일었다. 2015년엔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이 개인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욕설과 폭행을 했다는 폭로가 터졌다. 2016년엔 정주영 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는 ‘갑질 매뉴얼’ 문서까지 만들어 수행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저질러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한화그룹’의 갑질 역시 만만찮다.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은 지난해 1월 만취 상태에서 술집 종업원을 때리고 난동을 부려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처분을 받았는데 집행유예 기간인 지난해 9월에도 술집에서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들과 술자리를 하다가 변호사 2명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여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기도 했다. 김동선은 10년 전에도 술집 종업원과 시비하다 다쳤는데, 김승연 회장이 아들을 때린 종업원들을 직접 청계산으로 끌고 가 쇠파이프로 몽둥이찜질을 했다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총수께서 몸소 자식들에게 ‘갑질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시범을 보인 사례라고나 할까.

하기야 갑질이 어디 이것뿐일까. 2013년 5월 남양유업이 오랜 기간에 걸쳐 대리점에 물건을 밀어내기(강매)를 했다는 고발과 함께 막말 녹취록이 공개된 적도 있다. 이른바 ‘열정 페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저임금에 열악한 근무환경, 장시간 노동에 내모는 기업도 적지 않다.

 

3

나는 서두에서 다른 나라에선 ‘갑질’에 해당하는 단어가 따로 없는 것으로 보면 한국보다 갑질문화가 훨씬 뒤떨어진(?) 게 아니냐고 썼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어찌 갑질이 없겠나.

미국 포드자동차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 1세는 “내 기업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식으로 일관한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해군 권투선수 출신인 해리 베넷이란 사람을 기용해 자신의 사생활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 노릇을 맡기면서 노조를 폭력으로 탄압하도록 한 것도 그 중 하나라고. 일본 기업 파낙의 이나바(稲葉) 회장도 미국의 <포춘> 지로부터 독재자로 선정될 만큼 ‘독재 경영’을 했다. 그 누구의 이견도 용납하지 않고 기업을 군대 조직처럼 운영한 것. 일본 ‘유통업계의 제왕’으로 일컬어졌던 나카우치 이사오(中內功) 다이에 그룹 회장 역시 40년 동안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 이른바 ‘톱다운 경영’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독선 경영’ 때문에 엄청난 적자를 내고 유통혁명에서 뒤지고 말았다는 지적에 따라 1999년 퇴임했다.

헨리 포드 1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최근에 발생한 대표적 사건은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의 고객에 대한 갑질이다. 지난해 4월 9일 미국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 켄터키주 루이빌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항공사 측은 정원보다 4명이나 많은 승객이 타고 있음을 확인했다. 항공사 측의 '오버부킹'(빈 좌석 발생에 대비해 정원보다 많게 예약을 받는 일)이 원인이었다. 3명은 유나이티드 항공이 제시한 인센티브를 받고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1명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항공사 측은 공항 보안요원들을 불러 중국계 남성 승객 한 명을 강제로 끌어내도록 조치했다.

69세의 이 남성은 자신이 의사이며 다음날 진료 예약이 있어 내릴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항공사 측은 “가장 싼 값에 티켓을 샀다”며 강제로 끌어내렸다. 이 남성은 보안요원들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얼굴이 의자 팔걸이 등에 부딪혀 피투성이로 변했다. 이 모든 과정이 승객들에 의해 동영상으로 촬영돼 고스란히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유나이티드 항공은 세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던 것.

그래도 미국이나 일본에선 재벌 2, 3세에 의한 갑질은 나오지 않으니 우리나라와는 유가 다른 셈이다.

 

4.

‘갑질’은 인간에게만 특유한 현상도 아니다. 자연계에서도 갑질은 존재한다. 추위와 폭설로 유명한 일본 나가노엔 마카크 원숭이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들은 야외 온천장에서 영하 20도로 내려가는 혹한기를 난다고. 그런데, 이 온천탕에 들어가는 티켓은 원숭이 집단의 우두머리에게만 국한돼 있다. 우두머리 수컷은 제가 거느린 암컷과 제 새끼의 입장만 허용할 뿐이다. ‘흙수저’ 수컷 원숭이는 온천 주변에서 오들오들 떨어야 한다. 이 같은 ‘지위 서열(status hierarchies)’은 닭들의 세계에서도 발견된다. 모이를 뿌려주면 닭들은 서열에 따라 차례로 모이를 쪼아 먹는다고.

마카크 원숭이의 일종(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동물의 세계에선 ‘서열’에 관여하는 호르몬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암컷을 놓고 수컷끼리 싸움을 벌인다면 이긴 놈의 테스토스테론이 상승하지만 진 놈은 감소한다. 이는 인간에게도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흥미로운 것은 승리해서 높은 서열을 차지한 놈의 테스토스테론이 상승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테스토스테론을 먼저 주입하면 무리 내에서 서열이 올라간다는 대목.

코르티솔(cortisol)이란 호르몬도 마찬가지. 이를테면 직장에서 서열이 낮은 사람들의 코르티솔 수치가 상급자보다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보다 더 많은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다시 말해 코르티솔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호르몬인 것. 코르티솔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유용하게 작동한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성장이나 번식, 면역을 억제해 그 에너지를 긴급히 동원해 심혈관계의 작동을 원활히 하는 데 쓰게 하거나 얼른 도망갈 수 있게 해준다. 말하자면 ‘흙수저’들의 생존 호르몬인 거다. 하고 보면 ‘갑’의 횡포와 ‘을’의 방어기제 작동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셈이다.

 

5.

한국의 직장인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역시 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했을 때일 터다. 좀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도 이런 사정이 확인된다. 직장인들은 ‘정해진 일 이외에 다른 일까지 요구받는 것’(47.6%, 복수 응답), 반말(25.4%), 무시(25.1%), ‘비용을 예정보다 늦게 결제하는 것’(18%), ‘주중이 아닌 주말 근무나 야근이 불가피하게 일정을 짜는 것’(17.4%), 욕설(19%), 선물이나 향응 요구(14.1%) 등을 대표적인 갑질이라고 토로했다. 그해 국회에서 열린 ‘재벌·대기업의 불공정·횡포 피해 사례 발표회’에서도 “자식뻘인 영업 담당에게 욕설과 협박, 갈취에 시달린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명절 때마다 떡값과 지점 회식비 등 각종 명목의 돈을 요구받았다”는 증언이 터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어떤 사이트의 ‘내가 당했던 최악의 갑질’에 대한 댓글 게시판에는 ‘상사의 아들 과학 숙제로 병아리의 탄생을 찍어오라고 해서 양계장까지 달려갔던 일’, ‘퇴근했는데 불러내서 자기 술값 계산하라고 했던 일’, ‘상사의 벌초까지 가야 했던 일’ 등 황당한 갑질 피해 사례가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갑질 문화’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개인의 품성이나 자질 문제도 물론 있지만, 더 큰 까닭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수직 체계’ 일 터다. 서열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문화 정서적 경향도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우리 사회의 기저에 갑의 강압적인 역할과 을의 저자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그런 문화를 답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 을이었던 개인이 또 다른 관계에서 갑이 됐을 때 같은 행동을 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다못해 대학의 동아리 모임에서도 후배에 대한 선배의 갑질이 예사로 행해진다. 갑질을 받았던 후배는 자신이 선배가 되면 후배에게 또 갑질을 한다. ‘며느리 늙은 게 시어미’라는 우리 속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게다가, 갑질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대개 우리 사회의 특권층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감시와 규제가 느슨한 것도 또 다른 원인일 터다. 재벌 2, 3세의 갑질 사건이 터지면 언론이나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히고 만다. 법원도 이들 유력자 자식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선 대체로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때도 법원은 그를 잠깐 구속했지만 곧 집행유예로 풀어줬지 않았나. 그는 잠깐 자숙하는 모드를 취하고는 올해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근본에서 반성하는 게 아니라 재수가 없어 당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문을 마지못해 발표한 다음 잠깐 잠수하고 있으면 여론의 파고가 가라앉는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아마, 이번 조현민 물컵 투척사건도 유야무야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온 세상이 야단이지만 기껏해야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고, 또 한 1~2년 조용히 있다가 슬그머니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글쎄, 수직 계열화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서열문화가 완화되지 않는 한 갑질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래서, 정부와 시민 사회의 대응이 중요해진다.

정부가 기업의 부당, 불공정 행위를 적극 감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대리점 등에 밀어내기, 꺾기 등 갑질을 저지른 대기업들에 대한 과징금을 대폭 올릴 필요가 있다. 협력업체를 상대로 한 불공정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은 심각한 불법 행위인데도 그동안 관행적으로 묵인해온 측면이 없다곤 할 수 없다. 그러니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고 공정위 등 규제기관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법원도 재벌에 관대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원칙을 적용해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서 벌이는 불법 행위에 대해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오는 것. 시민들도 소비자 권리 운동을 펼 필요가 있다. 악덕 기업이나 갑질 기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 이를테면 ‘불매운동’을 더 확실히 전개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다.

요컨대, 그들에게 품성을 키우라거나 일시적으로 사회적 비난을 가하는 것으로 끝내선 안 되고 갑질을 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법적, 경제적 책임이 부과된다는 것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다. 필요하다면 국회에서도 ‘갑질규제법’을 제정하기도 해야 할 터.

조현아나 조현민 같은 이들에게 경구 하나 선물(?)하겠다.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경구다. 세상에 갑질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없고 갑질을 바라는 사람도 없다. 월급 몇 푼 준답시고 타인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짓은 제 품격의 비천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제 얼굴에 침 뱉기’가 아닌가.

이런 경구도 있다. 혈구지도(絜矩之道). 목수들이 집을 지을 때 곱자를 가지고 정확한 치수를 재듯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엔 이런 말이 나온다. "위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도록 하지 말 것이다. 앞에서 싫어하는 것을 뒷사람의 앞에 놓지 말고, 뒤에서 싫어하는 것인데도 앞사람을 따르도록 하지 말 것이다. 오른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왼쪽과 사귀지 말 것이며, 왼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오른쪽과 사귀지 말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일러 혈구지도라 한다."

글쎄, 걸핏하면 아랫사람을 무릎 꿇리고, 함부로 물건을 집어던지는가 하면, 온갖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에게 이런 ‘공자님 말씀’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그래도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면 이런 말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하는 헛된(?) 소망을 버리지 못해 던져보는 경구다.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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