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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의 물벼락은 ‘땅콩의 복수?’...대한항공 ‘공주의 갑질’ 어디까지/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내 나이 서른다섯 때에는 안전화도 벗지 못한 채 현장에서 밤을 샜는데, 누구는 그 나이에 대한항공 전무 꿰차고, 제 멋대로 성질부리고, 나무랄 사람도 없고, 사람 팔자가 뭔지.”

몇 달 전 퇴직한 친구가 저녁모임에서 느닷없이 신세타령을 해댔다. 그는 “아무리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도 그렇지, 30대에 검증도 없이 대한항공 전무라니, 세상 참 요지경이네”라며 푸념을 이어갔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파문 이후 국민적 분노가 일면서 그의 나이까지 시빗거리로 올랐다. 문득 나는 서른다섯에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들췄다. 신문사의 경제부 기자로 현장을 뛰던 시기였다. 비교의 결과는 허탈감이었다. 자본주의의 맹점에 대한 공분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착한’ 결론을 내렸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비교하는 자체가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어리석은 발상이요, 패자들의 유치한 시샘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조현민 전무의 갑질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기업을 일구는데 벽돌 한 장 쌓은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30대에 대한항공 전무에 올랐는지. ‘오너 3세’라는 이유만으로 한진관광 대표이사와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를 맡아도 괜찮은 건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오너 리스크로 인해 대한항공 주가가 곤두박질쳐도 소액주주들은 하소연할 길이 없다.

대한항공의 B787-9 차세대 항공기 공개행사가 2017년 2월 27일 오전 인천 대저동 대한항공 인천정비격납고에서 열린 가운데 조현민 전무가 조원태 사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대한항공은 조현민 전무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한다. 물벼락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거다. 하지만 국민적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사퇴를 피하려고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시간은 어차피 대한항공의 편’이라는 과거의 경험이 가르쳐준 ‘지혜’인지도 모른다. 일각에선 대한항공의 ‘대한’이라는 명칭과 태극 문양을 닮은 로고도 못쓰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벼락에 대한 해명도 석연찮다. 조 전무는 광고대행사 직원의 얼굴에 물을 “안 뿌렸다”고 주장했다. 물 컵도 던지지 않고 “밀쳤다”고 했다. ‘밀치다’의 사전적 의미는 ‘힘껏 밀다’다. ‘물 컵을 밀쳤다’는 주장은 그래서 생뚱맞다. 물 컵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밀치기까지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4년 전 ‘땅콩회항’을 기억하고 있다. 언니가 시련을 겪을 때 동생이 ‘복수’를 다짐했던 사실도 잊지 않고 있다. 그때의 악몽을 동생이 되살려주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물벼락 사건은 잠재된 특권의식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안하무인식 반말 공세는 사회적 책무나 배려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환경 탓이 아닌가 싶다.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스스로 계급을 만들어 차별화하려 했다는 비판도 받을 만하다.

‘땅콩 회항’ 사태로 물의를 빚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2014년 12월 17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서부지검에 출두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 더 팩트 제공).

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돼있다. 물론 대한민국에 형식적, 제도적 계급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상의 계급’은 엄연히 존재한다. 금수저와 흙수저, 빈부격차에 따른 실질적인 경제적 계급은 누구나 체감하고 있다. 천양지차인 사교육만 비교해도 그렇다. 다만 ‘계급’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다. 갑질 또한 여기서 자라났을 것이다.

한자 ‘갑(甲)’의 상형(象形)은 땅속(田)의 씨앗이 발아하고(丨) 있음을 뜻한다. 본격적인 시작 또는 추진인 셈이다. ‘을(乙)’의 글자 모양은 나무나 넝쿨이 휘어지게 자라나 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비즈니스에 대입하면, ‘갑’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쪽이고, ‘을’은 이를 추진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능력을 인정해 달라고 과시하는 쪽이다. 이를 테면 광고를 의뢰하는 기업이 갑, 광고대행사가 을에 해당한다.

광고업계에선 광고주가 ‘주님’으로 통한다고 한다. 광고주의 준말이지만 ‘주(인)님’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권력관계가 담겨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렇다고 ‘갑질의 자유’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법치국가에서의 자유란 다른 사람의 변덕스럽고 불확실하고, 자의적인 의지에 종속되지 않을 자유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미 400년 전 영국의 사상가 로버트 필머는 “사람마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며, 어떤 법에도 구속되지 않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라고 설파했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갑질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민주주의 학습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편집위원 이처문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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