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다큐멘터리 영화<B급 며느리>의 감독 선호빈은 직접 출연한 이 영화 오프닝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에서 말하는 ‘이상한 여자’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며느리 상과는 다르게 결혼제도의 불합리성에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다 말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고야 마는 며느리를 뜻한다.
이 다큐 영화를 관람하기 전, 나는 한 친구와 통화하며 “이 영화가 나를 얼마나 답답하게 만들지 상상조차 안 돼”라 말했다. 대략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내용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흔한 막장 드라마처럼 답답하고 말 안 통하는 시어머니와, 여러 핍박에도 꿋꿋이 “네, 네”라고 대답하는 순종적인 며느리를 보게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이 영화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며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재밌게 봤다. 내가 이렇게 이 영화를 즐기면서 본 이유는 오로지 ‘진영’이란 주인공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연출자인 선호빈 감독의 가족이 실제로 나온다. 이 다큐의 주인공이자, 선호빈 감독의 아내인 김진영도 직접 나온다. 김진영은 “내가 이런 거 다 바꿀 거야”라 말하며, 주변에서 며느리라는 역할을 잣대로 삼아 억압하려 들 때 “도대체 내가 왜?”라는 의문을 던질 줄 아는 여성이다.
<B급 며느리>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은 선호빈 감독의 어머니이자, 진영의 시어머니인 경숙 씨다. 경숙 씨는 며느리란 모름지기 집안의 대소사는 반드시 참석해야만 하며, 집안의 대소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는 자신의 남편이자, 진영의 시아버지의 생신이라고 생각한다. 선호빈 감독은 자신의 엄마 경숙 씨에게 묻는다. “왜 엄마 생일은 두 번째냐”고. 이에 경숙 씨는 “시아버지는 남자잖아”라고 답한다. 이러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경숙 씨는 며느리 진영이는 B급도 아닌 F급이라고 외친다.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고부간의 갈등과 관련해서 주변 가족들은 거의 방관자에 가깝다. 선호빈 감독의 동생과 아버지는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그저 부인한테 가서는 시어머니 욕같이 해주고, 엄마한테 가서는 며느리 욕같이 하면서 맞춰주면 되지. 그 방법이 최선이야”라고 말한다. 하물며 감독의 고모로 추정되는 인물도 “며느리는 시댁 가면 하인이야”라는 발언을 한다.
내가 이 다큐 영화를 보며 가장 공감했던 장면은 진영이 카메라에 대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장면이다. 진영은 “이런 게 사실 다 웃겨. 사지 멀쩡한 어른이 여럿 모여도 왜 시어머니와 나만 이걸 내가 하니 네가 하니 이런 식의 대화를 해야 해”라고 말한다. 또 그녀는 모든 상황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었는데”라고 말하며 울분을 토해낸다. 다큐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어느 정도 갈등이 해결된 채로 마무리되지만, 해결하게 된 원인이나 과정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나도 <B급 며느리>를 보고 나왔더니, 최소 5년은 결혼생활을 한 느낌이 들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던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비혼주의가 더욱 굳어졌다. 나는 진영처럼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닐뿐더러, 진영이가 “더 이상 시댁에 가지 않겠어”라고 선언했을 때, “그래 가지마”라고 해줄 수 있는 선호빈 감독 같은 남편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나와 같은 사람이 꽤 많았다. 어떤 관람객은 “비혼주의가 흔들릴 때마다 봐야 할 영화"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울 수 있는 자신의 치부를 영화로 만들어 공개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텐데, 용기 있는 결정으로 많은 사람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과 그의 가족인 출연진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