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있는 웹툰 '며느라기'가 결혼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 박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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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있는 웹툰 '며느라기'가 결혼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 박수창
  • 경남 창원시 박수창
  • 승인 2018.03.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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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아. 나는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니?”

이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연재된 웹툰 <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이 한 말이다. 결혼 직후 처음 맞는 시댁 제사에 가기 전 민사린의 남편 무구영은 그녀를 “돕겠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남편의 조상을 위한 제사에 아내는 당연히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민사린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하면서 짚고 넘어간 것이다.

명절이나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대부분의 가사 노동을 집안의 여성이 전담하는 것은 한국 가정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 시간에 남성은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일하느라 힘들었던 아내에게 술상을 요구하는 남성도 있다. 남편 무구영처럼 잘못되었다곤 생각하지만 바꾸기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민사린의 시아버지 무남천처럼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며느라기>는 한국의 신혼여성이 겪는 불합리를 일상의 모습에서 그려나간다. 신혼여성 민사린은 아내, 며느리이기 이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보내던 현대여성이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권리와 부조리에 대해 당당히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하고 사소해 보이는 불평등을 거부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착한 아내’, ‘좋은 며느리’라는 역할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웹툰 <며느라기> 페이스북 페이지(사진: 페이스북 캡처)

작품은 직설적으로 ‘한국 가정에서 여성은 약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극적인 갈등으로 인해 고부간의 갈등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쉽게 경험하던, 어쩌면 사소하다고 여기는 차별을 ‘며느리’라는 입장에서 아주 담담하게 보여준다. <며느라기>는 변화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아주 가깝고 많은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들을 미화 없이 보여주는 것뿐이다. 작품은 웹툰 같은 대중매체가 보여주지 않는 결혼의 현실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이와 비슷한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비교해 수신지 작 <며느라기>는 더 많은 남성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한 여성의 출생부터 출산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와 다르게 <며느라기>는 가족이란 소재를 중심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집살이 중 성적 차별을 경험하는 아내 혹은 어머니의 모습은 중ㆍ장년층은 본인들에게서, 청년들은 부모들에게서 오랫동안 봐왔다. 남성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혹은 자신도 무구영, 무남천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며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잘못된 구조 안에 있을 땐 그것이 잘못되었단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독자들 중 특히 남자들은 이런 모순을 작품을 통해 목격함으로써 전에는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못했던 일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남자들은 큰상에서는 남자가, 작은 상에서는 여자가 따로 식사하는 모습, 하루종일 자는 아버지와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며느라기>를 보고 알게 된다.

작품의 마지막에 남편 무구영은 아내 민사린이 외출하기 전에 보고 있던 결혼식DVD을 이어보게 된다. 신부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영상의 민사린은 “항상 내 옆에서, 내 편이 되어줄 거지? 사랑해”라고 말한다. 무구영은 아내의 편이 되어주지도, 곁에 있어주지도 않았던 자신의 행동들을 떠올리며 영상을 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무구영은 급하게 아내를 찾아 나가며 작품은 끝이 난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무구영의 모습에서 어쩌면 많은 남성이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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