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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황순원 문학촌과 소나기 마을, 그리고 추억의 보리밥 / 장원호[제3부] 삶의 뜻을 생각하는 은퇴인
  •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8.01.0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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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온천 여행과 부산을 방문한 뒤, 셋째 동생 원식이 내외가 서울 근교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서울의 물줄기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근처에 있는 순수 문학의 대가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로 길을 나섰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소설 <소나기>는 내가 70년 전 경험한 사연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소나기>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시골 마을의 초등학생 석이는 요양하러 내려온 윤초시의 증손녀 연이를 개울가에서 만나게 되고, 연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기뻤지만, 쑥스러운 마음에 무뚝뚝하게 외면하곤 합니다.

그러나 며칠 째 학교를 나오지 않던 연이가 학교에 오자, 석이는 용기를 연이에게 내 말을 걸고 방과 후 함께 들로 놀러갑니다. 단풍놀이를 하던 둘은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고, 오두막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그날 비를 많이 맞아 심하게 앓다가 겨우 일어난 연이는 개울가에서 석이를 만났고 읍내로 곧 이사 간다고 말합니다.

그날 밤 석이는 덕쇠 영감의 호두를 따서 연이에게 주려고 개울가에서 연이를 기다리지만, 연이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습니다. 잠결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연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석이는 이불 속에서 숨죽여 흐느껴 웁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우리 시절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으며,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부각시킨 뮤지컬로도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중반, 해방을 맞은 1945년에 나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해방 전에는 초등학교도 학생을 선발하여 입학시켰는데, 해방이 되자마자, 적령기 어린이들을 모두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우리 반에는 갑자기 2-3년이나 나이가 많은 형과 누나 같은 소년 소녀들이 들어왔고, 반 편성도 갑자기 남녀 공학이 됐습니다. 여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지만,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남자 쪽과 여자 쪽이 따로 책상을 쓰게 했습니다. 

우리 반에는 부모들이 서로 친구인 남 씨 댁의 큰 딸이 오게 됐습니다. 나는 남씨 댁 큰 딸을 한두 번 가족과 함께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교외로 소풍을 가는 날, 남 양이 내 책상에 사과와 삶은 달걀을 몰래 넣는 것을 본 나이 많은 학생이 이를 크게 소문 내어 우리 둘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등교하면 누군가가 칠판에 소녀과 소년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 둘의 이름을 그 밑에 적었습니다. 다음해에 반이 바뀌기까지, 우리 둘은 서로 눈도 못 마주치고 피해 다녔습니다. 그 후 나는 청주로 유학을 떠났고, 그 소녀네는 어디로 이사를 간 듯하며,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이 아름다운 기억은 황순원의 <소나기> 속 석이와 연이의 이야기처럼 아직도 내 아음 속에 애처롭게 남아 있습니다.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 있으며, 소나기 마을의 배경 무대와 지상 3층 규모의 황순원 문학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황순원 문학관에는 황순원 선생의 유품과 작품을 전시하는 3개 전시실이 있고, 소나기 광장에는 노즐을 통해 인공적으로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시설이 있습니다. 또, 징검다리, 섶 다리 개울, 수숫단 오솔길 등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체험장이 있습니다.

황순원 문학관 안의 전시물(사진: 장원호 제공)

황순원의 다른 소설을 주제로 한 목넘이 고개(<목넘이 마을의 개>), 학의 숲(<학>), 해와 달의 숲(<일월>), 별빛 마당(<별>)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소나기 광장과 사랑의 무대 등 부대시설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남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은 3.1운동 때 평양 숭덕학교 교사로 재직 중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옥살이를 했습니다.

1921년 만 6세 때, 황순원의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했고, 그는 만 8세 때 평양의 숭덕소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으며, 1929년에는 정주에 있는 오산중학교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교장인 남강 이승훈 산생을 만났고, 1930년부터는 동요와 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8.15 광복 이후 황순원은 평양으로 돌아 가지만,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지주 계급으로 몰리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이듬해 월남했습니다.

월남 후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한 황순원은 지속적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1953년에는 장편 작가로서 그를 인정받게 한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를 발표합니다. 1957년에는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발령받아 생활이 안정되면서,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더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1985년 발표한 산문집 <말과 삶과 자유>를 발표할 때까지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우며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2000년 타계할 때까지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았으나 간간이 시작품을 발표하며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아들 황동규는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나기 마을을 인상깊게 돌아보고 시내 식당가에 들려 옛날식 보리밥 점심을 들었습니다. 아주 좋은 점심식사였는데, 보리밥은 춘궁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메뉴였습니다, 이제는 건강식품으로 흰 쌀밥보다 귀하고 좋은 영양식이라고 합니다. 보리밥은 과거 부자들이 잘 먹지 않던 갓, 씀바귀, 열무, 상추, 치나물 등을 넣고 고추장과 비벼서 먹는 것이 옛날식입니다. 여기에 참기름을 한 숫가락 넣으면 천하일미입니다. 노인들에게 무서운 과체중, 당뇨, 고혈압을 예방하려면 탄수화물이 많은 쌀밥보다는 보리밥이 월등히 좋다고 합니다. 

보리밥 정식(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푸짐한 보리밥 점심을 들고, 소나기 마을에서 멀지 않은 양수리 두물머리 나루터로 가서 강변에 조성된 옛날의 양수리 모습과 식물원을 보았습니다.

양수리 전경(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한국도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좋고 나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는 곳마다 옛날 모습을 복원하여 관광지로 개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것은 참으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1000만이 사는 서울에 풍족한 물을 공급하는 푸른 물줄기를 부럽게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는 물이 모자라 야단인데, 서울은 물 걱정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단지 상수도 수원지인 양수리가 관광지가 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깨끗하게 물을 보존하도록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혼자 걱정을 해보았습니다.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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