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황순원 문학촌과 소나기 마을, 그리고 추억의 보리밥 / 장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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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황순원 문학촌과 소나기 마을, 그리고 추억의 보리밥 / 장원호
  •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8.01.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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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삶의 뜻을 생각하는 은퇴인

덕구온천 여행과 부산을 방문한 뒤, 셋째 동생 원식이 내외가 서울 근교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서울의 물줄기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근처에 있는 순수 문학의 대가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로 길을 나섰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소설 <소나기>는 내가 70년 전 경험한 사연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소나기>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시골 마을의 초등학생 석이는 요양하러 내려온 윤초시의 증손녀 연이를 개울가에서 만나게 되고, 연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기뻤지만, 쑥스러운 마음에 무뚝뚝하게 외면하곤 합니다.

그러나 며칠 째 학교를 나오지 않던 연이가 학교에 오자, 석이는 용기를 연이에게 내 말을 걸고 방과 후 함께 들로 놀러갑니다. 단풍놀이를 하던 둘은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고, 오두막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그날 비를 많이 맞아 심하게 앓다가 겨우 일어난 연이는 개울가에서 석이를 만났고 읍내로 곧 이사 간다고 말합니다.

그날 밤 석이는 덕쇠 영감의 호두를 따서 연이에게 주려고 개울가에서 연이를 기다리지만, 연이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습니다. 잠결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연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석이는 이불 속에서 숨죽여 흐느껴 웁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우리 시절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으며,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부각시킨 뮤지컬로도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중반, 해방을 맞은 1945년에 나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해방 전에는 초등학교도 학생을 선발하여 입학시켰는데, 해방이 되자마자, 적령기 어린이들을 모두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우리 반에는 갑자기 2-3년이나 나이가 많은 형과 누나 같은 소년 소녀들이 들어왔고, 반 편성도 갑자기 남녀 공학이 됐습니다. 여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지만,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남자 쪽과 여자 쪽이 따로 책상을 쓰게 했습니다. 

우리 반에는 부모들이 서로 친구인 남 씨 댁의 큰 딸이 오게 됐습니다. 나는 남씨 댁 큰 딸을 한두 번 가족과 함께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교외로 소풍을 가는 날, 남 양이 내 책상에 사과와 삶은 달걀을 몰래 넣는 것을 본 나이 많은 학생이 이를 크게 소문 내어 우리 둘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등교하면 누군가가 칠판에 소녀과 소년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 둘의 이름을 그 밑에 적었습니다. 다음해에 반이 바뀌기까지, 우리 둘은 서로 눈도 못 마주치고 피해 다녔습니다. 그 후 나는 청주로 유학을 떠났고, 그 소녀네는 어디로 이사를 간 듯하며,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이 아름다운 기억은 황순원의 <소나기> 속 석이와 연이의 이야기처럼 아직도 내 아음 속에 애처롭게 남아 있습니다.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 있으며, 소나기 마을의 배경 무대와 지상 3층 규모의 황순원 문학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황순원 문학관에는 황순원 선생의 유품과 작품을 전시하는 3개 전시실이 있고, 소나기 광장에는 노즐을 통해 인공적으로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시설이 있습니다. 또, 징검다리, 섶 다리 개울, 수숫단 오솔길 등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체험장이 있습니다.

황순원 문학관 안의 전시물(사진: 장원호 제공)

황순원의 다른 소설을 주제로 한 목넘이 고개(<목넘이 마을의 개>), 학의 숲(<학>), 해와 달의 숲(<일월>), 별빛 마당(<별>)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