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성희롱에 속수무책...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물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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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성희롱에 속수무책...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물리치료사
  • 취재기자 김예지
  • 승인 2017.08.29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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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예쁘다", "밖에서 만나자" 등 언어 폭력...일부 병원은 "환자 떨어지니 참아라" 쉬쉬 / 김예지 기자
물리치료에 이용되는 전기 치료 기기(사진: 취재원 제공)

물리치료사 김모(25, 경남 김해시) 씨는 최근 동료로부터 경악스러운 요구를 한 환자 이야기를 들었다. 물리치료에는 전기나 초음파 같은 기계를 이용한 치료가 많은데, 환자가 자신의 성기에 전기 치료 기기를 부착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불쾌감을 느낀 해당 물리치료사는 “죄송하지만, 그곳은 치료가 어렵다”고 거절하고는 상황을 벗어났다.

김 씨 역시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초음파 치료를 할 때 50대 남성 환자 두 명이 옆 침대에 누워 번갈아 가며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한 것이다. “전에 있던 여선생님의 엉덩이가 예뻤다”,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꾀어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얘기부터 시작한 성희롱은 급기야 “얼굴 보니 남자 몇 명 거느리겠다. 문어발이지 않냐. 언제 일을 마치냐. 밖에서 커피 한 잔하자”며 치료 과정 내내 김 씨를 괴롭혔다.

물리치료사 A(29, 부산시 사하구) 씨는 기자에게 “1~2년 차 때였으면 충격적이었던 성희롱을 다 말했을 텐데 이젠 워낙 익숙한 일이라 기억조차 잘 안 난다”고 말했다. 신경계에서 일했던 A 씨는 환자의 반말은 기본이라며 "네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를 주물러야 내가 낫지"라며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치료를 받으면서도 치료사를 종 부리듯 부린 환자가 있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또한, A 씨는 다른 물리치료사가 겪은 이야기라며 성생활이 불가능한 척수 손상 환자가 여성 물리치료사를 붙잡고 "한 번 대주라"라는 등의 언어 성희롱을 가한 사례를 전했다. 물리치료사의 경우 밀폐된 공간에서 환자와 단둘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며 “술 마시고 난동을 부려 병원에서 강제 퇴원당하는 환자는 봤지만, 성희롱으로 직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환자가 강제 퇴원당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성적 희롱을 받으면 당사자에게 항의하거나 환자를 자제시켜야 하지만 실상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환자가 불만을 제기하면 병원의 이미지에 문제가 생긴다며 병원장이 직접 "그냥 넘어가라"고 지시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환자를 내보내지 않고 오히려 직원을 해고하기도 한다. 이런 풍토 때문에 대부분 물리치료사는 참고 견디지만, 버티다 못해 결국 병원을 옮기기도 한다. 

이같은 성희롱을 막기 위해 남성 환자는 남성 치료사, 여성 환자는 여성 치료사가 담당하도록 하는 곳도 있지만, 이 또한 전면적으로 실시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 A 씨는 “환자가 성희롱을 심하게 지속하는 경우 남성 물리치료사로 바꾸어 치료를 받도록 하기도 하지만, 치료사의 남녀 비율이 맞지 않아서 치료사를 바꾸어 줄 수 없는 병원은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병원에 있는 치료사 수에 비해 환자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성별을 가려 환자를 진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환자의 성희롱 발언에 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됐으면 좋겠다”며 직원 보호 규정이 있음에도 지키지 않는 일부 원장도 함께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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