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성추행·성희롱에 우는 주류 판촉 알바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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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성추행·성희롱에 우는 주류 판촉 알바생들
  • 취재기자 김지언
  • 승인 2017.06.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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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유니폼 입고 술집 돌면 손님이 신체 더듬거나 언어 폭력 일쑤...에이전시는 입막음, 경찰도 미온 대처 / 김지언 기자
최근 사진과 같은 술자리를 돌며 소주 판촉 행사 알바를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나, 취객들을 상태하다보니 이들이 각종 형태의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한 소주 업체의 판촉 아르바이트생 A 씨는 일을 하다 성추행을 당했다. 판촉 행사를 하던 도중 술집에 있던 한 중년 남성이 A 씨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진 것. 불쾌감을 느낀 A 씨가 남성에게 "이것은 명백한 성추행"이라고 따지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 남성은 되레 A 씨에게 화를 내며 그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았다. A 씨는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정중히 자제를 요청했을 뿐인데 화를 내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A 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무성의하게 대처했고, 분노한 A 씨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학내 곳곳에 대자보를 붙여 경찰의 대응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주류 판촉 아르바이트생을 향한 성추행 사태가 심각하다. 술을 마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술을 따르라는 무리한 요구에서부터 아르바이트생을 더듬는 신체적 성희롱, 접대 여성처럼 취급하는 언어적 성희롱까지 도를 넘는 성범죄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이같은 구조적인 성추행의 반복은 이들의 성 상품화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주류 회사의 마케팅 방식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판촉 행사를 위한 인원 고용은 주류 회사가 아닌 하청 업체인 에이전시가 맡는다. 행사는 대개 여자 1명과 남자 1명으로 구성된 2인이 한 조가 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시 30분에서 10시 30분까지 4시간 가량 술집이 밀집된 지역의 술집을 돌며 진행된다. 판촉 행사는 에이전시와 사전에 협의된 술집에 들어가 손님의 테이블을 돌며 ‘자사 술을 한 병 마시면 건강식품 음료 한 병을 주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판촉 아르바이트생은 주류 업체 측이 제공한 유니폼을 입는다. 업체들은 서로 판매 경쟁을 하느라 다른 회사보다 더 노출이 심하고 자극적인 유니폼을 제공하는데, 짧은 치마나 반바지가 주류를 이룬다. 노출이 심한 유니폼을 입는 것을 싫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많지만 에이전시 측은 “돈을 받고 일하는데 규칙에 따르기 싫으면 그만 두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터라 쉽게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 설사 알바생이 불만 사항을 건의해도 에이전시는 개선하려는 의지조차 없이 에이전시에서는 “일할 사람은 많으니까 나가도 상관없다”는 식이어서 견딜 수 없는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그만두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한 대학 내 학내식 당 앞에 붙여진 대자보. 판촉 아르바이트생 A 씨가 가해자의 성추행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에이전시와 경찰 측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언).

A 씨의 피해 사례는 주류 판촉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성범죄의 대표적인 예다. A 씨를 성추행한 가해자와 함께 있던 그의 부인은 “짧은 옷을 입고 판촉 일을 하면 성추행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것 아니냐, 네가 뭐가 좋아서 만지냐”며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고, 화가 난 A 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광민지구대 소속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지 않은 채 피해자를 향한 가해자의 폭언과 욕설을 방관했다. 급기야 김모 경위는 “가게에 CCTV가 없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가족들도 다 있는 자리인데 남성이 실수로 만진 게 아니겠느냐”며 가해자를 두둔했다고 한다. 이같은 편파적인 업무 처리로 김모 경위는 현재 좌천된 상태다. 

에이전시의 실장도 “가족들이 다 있는 데서 성추행을 했다고 말하면 남자가 얼마나 부끄러웠겠느냐”며 “신고한 것을 취소하라”며 가해자를 감싸기에 급급했다. A 씨가 신고를 취소하지 않겠다고 하자, 실장은 “너 때문에 우리 회사 다 망하게 생겼다”며 되레 피해자인 A 씨에게 책임을 돌렸다고 한다. A 씨는 “주변에서 자꾸 나를 질책하니 ‘내가 잘못한 것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형철 부산남부경찰서장은 이 사실을 취재하던 한 일간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시나 엉덩이 만진 것까지 핥아줘야 하냐”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분노한 A 씨가 여러 단체와 함께 ‘김형철 서장을 징계하라’며 시위와 서명 운동을 전개하자, 김 서장은 징계 논란을 무마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A 씨에게 “만나서 얘기하자”며 연락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또다른 피해자 B 씨는 “유니폼인 짧은 치마를 입고 일할 때, 상품을 꺼내기 위해 허리를 숙이면 남성 손님들이 ‘오~’하고 환호를 보내고, 저들끼리 ‘속바지 다 보인다’며 희롱하는 것이 상당히 수치스러웠다”고 전했다. 또 다른 피해자 C 씨는 “나는 키가 큰 편인데 유니폼은 원사이즈라 치마 속 엉덩이가 보일 만큼 (나에게는) 훨씬 더 짧았다”며 “회사에서는 치마 속에 속바지를 입고 일하라고 했는데 속바지가 훤히 다 보여 일하면서도 정말 민망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내부적으로 자행되는 성희롱에도 수난을 겪고 있다.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주류 업체를 찾은 D 씨는 면접을 보던 중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몸 사이즈를 묻는 직원에 D 씨가 44 사이즈라고 대답하자 직원이 위아래로 훑으며 “44 사이즈도 안 되겠는데”라고 발언한 것이다. D 씨는 “아무리 외모가 중요하다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봐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남성은 어느 정도 정해진 급여를 받고 일하는데 비해 여성은 고정된 임금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주류 판촉 아르바이트생은 행사 도우미라는 명칭으로 고용된 일용직 노동자다. 주류 업체에서 에이전시로 아르바이트생의 급여를 포함한 일정 금액을 내려주면, 에이전시가 돈을 일부 뗀 뒤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형식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보통 6만~7만 원 정도의 일당을 받는데, 나이가 어리거나 판촉 경험이 없는 여성은 이보다 적게 받기도 한다. 반면 특출 난 외모를 가졌거나 끼가 많으면 훨씬 더 받기도 한다. 피해자 A 씨는 “서울에서 일할 때 모 예술대학을 다니는 여성이 하루 12만 원까지 버는 것도 봤다”고 전했다.

A 씨는 “내가 일한 M사에서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어떻게 매상을 올려야하는지는 가르치면서 성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교육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학생 이인아(21) 씨는 “주류 판촉 아르바이트 자체에 성범죄가 발생할 만한 여건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며 “약간이라도 범죄화될 가능성이 있다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이 씨는 “회사 측에서 강경하게 제지하고 조치를 취해야 노동 환경이 지켜질 것”이라며 “하루 빨리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겪은 성추행을 신고해야할지와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의 입장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류 판촉 아르바이트생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형법 제298조에 따르면, 강제추행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성폭력 범죄를 입었다면 신속하게 신고해야 하지만, 피해자가 자신의 신변 노출과 가해자의 보복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특수한 근무 환경상 주류 판촉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인 가해자를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서지율 국장은 “피해를 입으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신고하는 마음을 먹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피해 사실이 본인의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도움의 손길을 주는 곳이 생각보다 많으니 피해자가 전면에 나서서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성폭력 상담소와 같은 전문기관과 같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좋다”며 피해자의 적극적인 신고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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