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술관을 위한 청사진, 부산시립미술관의 ‘극장 Post Media and Site‘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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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술관을 위한 청사진, 부산시립미술관의 ‘극장 Post Media and Site‘ 전
  • 취재기자 허아름
  • 승인 2023.11.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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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APEC로에 위치한 부산시립미술관이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마지막 기획전시 ‘극장 Post Media and Site’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열세 명(팀)의 작가가 참여하여, 예술의 역할과 미술관, 전시의 기능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본 전시에서 ‘극장’의 무대가 되는 전시 공간은 관객과 무대의 거리를 좁혀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작가에 의해 기록된 공간과 시간은 관람객에 의해 현재의 흐름에서 새롭게 재탄생했다.

구현주 - make some noise

공간에 들어서자, 스프레이 냄새가 가득했다. 한 곳에는 농구공 골대가 설치되어 있고, 실제로 농구 하고 있던 관람객이 보였다. 화려한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은 보통 상상하던 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구현주 작가는 미술적 공간의 물리적 구조에 내재하여 있다고 생각하는 권위를 해체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본 작품이 이것이었는데, 전시작품을 여러 방법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에서 작가의 색다른 시도가 느껴진다.

그래피티가 가득한 벽 위로 골대가 걸려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그래피티가 가득한 벽 위로 골대가 걸려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김동희 - 깎은 벽과 바닥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 실제로 공사 중인 것처럼 바닥이 뜯어져 있다. 어느 한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작품을 보러 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중 하나인 해체주의 건축이 떠오른다. 기존의 틀을 깨고 자유로운 형식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느껴진다. 구조적인 형태의 정석인 미술관에서 자유를 추구한다니. 시설을 해체한다는 시도는 리모델링을 앞두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관람객에게 익숙한 동선을 교란하고자, 새롭게 벽을 세워내지 않고 기존의 벽과 바닥이라는 기초구조를 깎아냈다.

​김동희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깎은 바닥이다. 단순히 바닥 마감재가 뜯어진 듯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김동희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깎은 바닥이다. 단순히 바닥 마감재가 뜯어진 듯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박진아 - 전시를 만들며 외 7점

박진아 작가는 스냅사진으로 장면을 포착한 것을 캔버스에 옮겼다. 회화의 공간을 확장하고 작품이 걸리는 전시장의 환경을 작품에 반영하여 순간의 장면을 담아 관람객에게 보여준 것이다. 또한 프레임 내에서 보지 못했던 화면 밖의 장면은 벽화로 재현되어 전시장의 장소성을 더욱 부각한다. 실제 작가들이 어떤 모습으로 전시를 준비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상황을 담은 것이 신선하다. 영상이나 음향이 아닌 그림이라는 매체를 이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소리나 동작 등 다른 요소가 배제된 그림이었기에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한 프레임 안에 잡힌 역동적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욱 활기가 느껴져 연극이 끝난 극장 뒤의 모습을 훔쳐본 것 같다.

그림 속 사람들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그림 속 사람들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연기백 - 구축향

이 작가는 특정 장소에 축적된 시간과 흔적을 되짚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고 한다. 곧 철거될 벽들과 바닥에 남겨진 물리적 흔적들에 집중한 작품이다. 실제로 타다 남은 재를 모아둔 곳도 있었다. 처음에는 마룻바닥 위에 검은 칠을 하였거나 태운 나무를 바닥에 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보니 실제 바닥을 뜯은 후 그 위로 공간을 조금 띄워 나무를 고정해 둔 모습이다. 단순 색의 차이로 그 부분이 두드러진 것이 아니었다. 일상적인 공간과 특정 부분이 좀 더 분리되어, 흔적에 눈길이 가도록 공간감을 주었다.

바닥에 검은 마루바닥이 얹어져 있고, 금지표시 아이콘 뒤로는 빛이 들어오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바닥에 검은 마루바닥이 얹어져 있고, 금지표시 아이콘 뒤로는 빛이 들어오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아름).

‘극장 Post Media and Site‘전은 2미술관을 '극장'에, 전시장을 그 '무대'에 비유한다. 극장의 상징적 의미는 건축가, 무대 디자이너, 화가, 배우, 극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인공적이지만)이상적인 세계를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극장은 시대, 사회, 문화, 정책의 역사적 맥락이 살아있는 장소를 뜻한다. 수많은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실제 체험하고 눈으로 보며 작가들의 열정을 느꼈다.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내가 체험하며 미술관의 장소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번 ‘극장’전은 지난 9월부터 오는 12월 17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해당 전시 관람료는 한시적 무료이며, 전시 작품의 자세한 설명은 현장에서 받은 가이드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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