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부산사랑’에 푹 빠진 도시설계 이론가의 ‘부산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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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부산사랑’에 푹 빠진 도시설계 이론가의 ‘부산 바로 알기’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3.09.05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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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경성대 교수) 지음 '구석구석 부산' 출간

역사·환경·보전 중심 도시설계 이론가 강동진(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의 현장답사 기반형 ‘부산 바로 알기’ 인문 교양서다. ‘바로 알아야 할 부산’의 12곳 구석구석을 역사로 더듬고 발로 뛴 공력에, 책 분량도 592페이지에 이를 만큼 두툼한 역저(力著)다.

도시설계 이론가 강동진의 부산 바로 알기 탐사기 『구석구석 부산』 표지(사진: 저자).
도시설계 이론가 강동진의 부산 바로 알기 탐사기 '구석구석 부산' 표지(사진: 강동진 저자).

거대도시 부산에 대한 그의 정의는 중층적(重層的)이다. 부산은 자연이 섬세한 도시, 근대역사를 응축한 도시, 1950년대 이후 국가경제 위기를 버텨냈던 역동의 도시,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미래를 열어가는 비전을 가진 도시다. 부산은 마치 조각보를 닮았다. 우리나라 최초 개항장으로, 일제 침탈과 한국전쟁을 버텼던 도시로, 1950~60년대 국가재건에 이바지했던 질곡의 시간 속에서 얻은 무수한 세월의 더께가 층층이 쌓인 형상이다.

어떤 도시계획으로도 이러한 모습의 도시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겉모습은 다소 혼란스럽고 복잡해 보이지만, 속을 꽉 채우고 있는 세월의 켜들에는 가늠할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가 스며있다. 그러기에 부산은 자투리 천들이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에 따라 아름답고 정겨운 조각보로 탄생하듯, 부산도 솜씨 좋은 어머니와 같은 도시 장인들이 많이 필요한 도시다.

부산을 이루는 조각들은 독불장군같이 따로 놀거나 상당수는 약해빠져서 툭하고 밀치면 금방 쓰러질 것만 같다. 부산의 정체성을 품고 있는 조각 사이사이에는 외세 침탈과 국란 극복의 역사와 현장이 스며있고 또 끼어있다. 지난 시간의 고통과 시련으로 크게 벌어졌던 조각들의 틈새가 치유와 회복의 시간 속에서 점차 좁아지고는 있지만, 그런 만큼 조각들의 정체성과 조각 간의 연계성도 줄어들고 있다. 부산 지역사회는 두루, 어떻게 해보려 몸부림을 치긴 하지만 도시 전역에 걸쳐 만연한 개발의 여파로 매력적인 조각보를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특별한’ 도시 부산 ‘구석구석’의 ‘특별함’ 생각하기

그런 만큼 부산은 ‘특별한’ 개발이 필요한 도시다. 조화와 회복을 앞세우는 신개발, 치유와 재생을 위한 재개발, 지속과 공존이 어울리는 재건축을 지향해야 하는 도시다. 이러한 시선으로 부산을 보며, 부산의 가치에 공감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의 상상력을 발현해 보자. 이 책을 쓴 동기다. 부산의 12곳을 선택. 이곳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산이 가진, 부산을 일구어 온 지역이 가진 ‘특별함’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려 한 것이다.

그 이야깃거리 12곳, *광복동과 남포동-메이드 인 부산, *부산의 전통시장-너무나 따뜻하고 행복한 곳, *산복도로와 피란마을들-산으로 올라간 사람들, *보수동 책방골목-세계 최고의 헌책방 집합소, *피란수도 부산유산-세계 유일무이의 평화 성지, *부산항-대한민국 물류업· 수산업·조선업의 원조 등이다.

이와함께, *섬이 아닌 섬 영도-다리를 건너 바다로 간 사람들, *수영강과 고려제강-호국의 강에서 문화의 강으로, *서면과 동천- 대한민국 재건의 기반처, *부산시민공원-14만평 도심평지공원으로 대변신, *305km 바닷길 이야기-대(臺)와 해수욕장은 부산의 보석, *낙동강-대한민국 존재의 근거 등도 다룬다. 책장을 넘기며, 그저 텍스트만 읽는 것이 아니라, 곳곳의 공간을 분석한 사진과 그림, 도표를 보는 재미도 산뜻하고 쏠쏠하다.

글쓴이가 책 제목에 ‘구석구석’이란 단어를 넣었듯, 부산을 ‘자세하게 살펴보자’라는 뜻과 함께, 그동안 우리의 관심에서 소외당하며 발길이 닿지 않았던 지역이 가진 숨겨진 가치를 두루 살펴본 것이다. 이 책은 특히, 우리가 놓치고 있었거나 소홀히 대하고 있는 부산의 것들에 대한 발견과 함께, 지속을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한 뜻도 갖고 있다.

강동진과 꿈, 도시유산의 보전과 도시의 창의적 재생

글쓴이는 부산 경성대에서 역사·문화·경관 등을 키워드로 하는 도시설계를 가르치며, 학생들이 도시의 창의적인 재생을 실천하며 도시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01년부터 부산에 정착, 산업유산, 근대문화유산, 세계유산 등을 주제로 하는 각종 시민보전운동과 연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영도다리, 남선창고, 하야리아부대, 북항, 산복도로, 대청로, 동천,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등이 그 대상이다. 근래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 남한산성 등과 등재 추진 중인 가야고분군, 피란수도 부산에 대한 연구활동에 참여했다.

글쓴이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국제신문'의 ‘강동진 칼럼’을 통해 부산시민과 부산 중심의 도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의 글은 논리적 일관성이 뚜렷하다. 무엇보다 낡은 도시 부산을 보전할 역사에의 뜨거운 애정과 새로운 도시 부산을 창조할 ·환경·보전 중심의 시각이 그것이다.

그는 최근 '‘싱가포르다움’을 위한 그들의 선택'에서, 싱가포르가 열대성 기후의 좁은 국토에서 작지만 부유한 국가를 성취한 비결을 묻는다. 그는 지적한다. 싱가포르는 세계최고 국가를 향한 다양한 미래실험이 행해지는 도전의 도시국가이며, 싱가포르의 최근 강점적 요소는 두루, 한계이자 장애를 기회의 자산으로 전환시킨 것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변화를 향한 싱가포르의 관심은 오직 ‘싱가포르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와 그 땅의 미래’에만 집중했다고. 무엇보다 ‘올곧은 공의와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그 ‘올곧은 공의(公義)’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묵중하다.

그는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는 글에선, 한국의 다양한 근대사를 품고 있는 부산항 제1부두의 섣부른 개발을 한껏 경계한다. 제1부두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앞으로 부산을 지키며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후손들의 것이다, 제1부두가 가져올 무궁무진한 경제·문화적인 미래 가치를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순 없다, 무르익지 않은 생각으로 급한 개발을 추진하지 말라….

그는 '황령산 봉수전망대에 보내는 간곡한 바람'에서도 일관성 있는 시선을 유지한다. 황령산 봉수전망대(이하 ‘황령산타워’) 건설계획을 보며, 부산이 취하고 득해야 할 것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 부산에서 지역경제의 지형을 바꿀 것이라 기대했던 대형 개발사업들이 가끔, 기대했던 결과에는 못 미치고 있다는 것,

21세기 전 세계인이 함께 다짐 중인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차원에서라도 황령산타워 건설의 진짜 조건, 곧 부산 난개발을 순화시키고 혁신적인 도시계획과 관리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들을 서둘러야 한다는 외침이다.

'더불어 살며 지켜가야 할 피란수도 부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그의 글은 제목에서 그의 논지를 바로 읽을 수 있다. 그의 글은 그처럼 논리적 일관성과 함께, 이공계 전공자에게서 보기 드문 인문학적 소양을 넉넉히 포용하고 있다.

비온후/2023-07-31/592쪽/값 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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