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명소 된 ‘이바구길’과 ‘적산 가옥’...근대화 흔적의 변화가 주는 의미 찾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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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된 ‘이바구길’과 ‘적산 가옥’...근대화 흔적의 변화가 주는 의미 찾는 길
  • 취재기자 정은희
  • 승인 2021.12.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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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와 피난지 거쳐 온, 부산 동구...초량 부근 곳곳 남겨진 근대 흔적
백제 병원, 168 계단, 적산 가옥 등...관광지 및 전시 공간, 카페로 변화
애환 서린 근대화 흔적, 관광지로...변화된 모습으로 역사적 의미 전달해

‘삶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는다’는 말이 있다. 삶의 곳곳은 흔적으로 넘쳐난다. 인생의 삶 자체가 흔적을 남기고 지우다 다시 또 남기는 것의 연속인 것이다.

부산은 근대화 시기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한국이 일제 식민통치를 받았을 당시와 부산항 개항을 시작으로 피란 수도가 됐을 때, 부산 지역 곳곳엔 당시 상황들이 가져다준 흔적들로 다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역과 국제여객터미널이 있는 부산의 관문, 부산 동구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주로 찾아볼 수 있다. 부산항이 개항 후 급진적으로 서구문물을 맞게 되면서 동구는 역사와 문화가 호흡하는 보물창고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근대화 흔적이 깃든 장소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해방과 산업혁명을 고스란히 담은 ‘이바구 길’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 굴곡진 이바구 길이 위치하고 있다. ‘이바구’란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초량 이바구 길은 일제강점기 부산항 개항부터 해방 후 50~60년대와 더불어 한국의 산업혁명기라 할 만한 70~80년대 굴곡진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바구 길은 총 1.5km 구간으로 약 2시간 동안 동네에 깃든 역사 속으로 데려가 준다.

이바구 길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이바구 길 구간과 위치를 안내하는 벽화가 자리 잡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이바구 길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이바구 길 구간과 위치를 안내하는 벽화가 자리 잡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100년의 세월이 깃든 ‘구 백제 병원’...엔티크한 갤러리 카페로 변화

부산역에서 길 하나를 건너자마자 이바구 길이 시작된다. 가장 처음으로 1920년대 지어진 ‘구 백제 병원’ 건물을 볼 수 있다. 1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곳은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건물로 현재 등록문화재 제647호로 지정됐다. 해당 건물은 당시 병원 폐업 후 중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운영되다가 일본인 장교숙소, 예식장으로 쓰이는 등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변해왔다.

이바구 길 구간 중 가장 먼저 100년의 세월이 깃든 구 백제 병원 건물을 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이바구 길 구간 중 가장 먼저 100년의 세월이 깃든 구 백제 병원 건물을 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현재는 이곳 1층을 갤러리 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로 들어서니 옛 모습을 보존한 엔티크한 인테리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곳곳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과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생 김수진(23) 씨는 “부산에 근대식 병원 건물을 개조해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탐방 왔다. 100년의 세월이 깃든 역사적 공간에서 지금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애환 서린 168 계단, ‘모노레일’과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있는 관광명소로 변화

이바구 길 중턱 구간에는 이바구 길 산복 도로에서 부산항까지 가장 빨리 내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 바로 산복 도로를 대표하는 168개의 계단이다. 이는 세로로 난 지상 6층 높이의 아찔한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계단 아래에는 원래 3개의 우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식수로 쓰이는 1개의 우물만 남아있다. 이러한 형태는 과거 물이 부족하던 시절, 물을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아찔한 경사를 느낄 수 있는 168개의 계단으로 오른쪽 비탈길에는 모노레일이 위치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아찔한 경사를 느낄 수 있는 168개의 계단으로 오른쪽 비탈길에는 모노레일이 위치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아찔한 경사를 올라야 했던 수고스러운 계단은 현재 색다른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비탈길 옆 위치한 모노레일로 더 간편하게 마을 경관을 둘러볼 수 있게 된 것. 모노레일 탑승 운영자 김성수(56) 씨는 “2016년 개통된 모노레일로 굴곡진 이바구 길을 편히 관람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부산의 역사가 깃든 이바구 길을 좀 더 편하게 느끼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단 중간쯤 위치한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초량 마을의 집들을 형상화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계단 중간쯤 위치한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초량 마을의 집들을 형상화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계단 중간쯤에 초량 마을의 집들을 형상화해둔 아기자기한 그림들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포토존이 있다. 관광객 김도은(30) 씨는 “3년 전쯤 왔을 때랑 차이가 날 만큼 계단 형상이 많이 변했다. 계단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변해서 새로운 포토존으로 거듭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방 후 남겨진 ‘적산 가옥’...‘전시공간’과 ‘카페’로 변화

초량 부근에서는 ‘적산 가옥’을 꽤 찾아볼 수 있다. 적산 가옥이란 적산(적의 재산)과 가옥이 합쳐진 단어로 즉, 일본인 소유의 가옥이었다가 해방과 동시에 일본인들이 물러나면서 남게 된 가옥을 말한다.

1943년에 지어진 적산가옥‘문화공감 수정’모습으로 근대기 주택 건축사의 자료로 보존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 330호로 지정됐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1943년에 지어진 적산가옥 ‘문화공감 수정’ 모습으로 근대기 주택 건축사의 자료로 보존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 330호로 지정됐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는 ‘문화공감 수정’이란 적산가옥이 위치하고 있다. 이는 1943년에 지어진 대략 80년 된 고급 일본식 주택이다. 당시 일본 무사 계급의 전형적인 주거 양식으로 건축되며 근대기 주택 건축사 자료로 보존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 330호로 지정됐다. 특히 이곳은 가수 아이유의 ‘밤편지’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하다.

가수 아이유,‘밤편지’뮤직비디오 장면으로 촬영지인‘문화공감 수정’이 배경되고 있다(사진: ‘밤편지’ 뮤직비디오 캡처).
가수 아이유 ‘밤편지’ 뮤직비디오 장면으로 ‘문화공감 수정’에서 촬영이 이뤄졌다(사진: ‘밤편지’ 뮤직비디오 캡처).

원래 문화공감 수정은 카페로 운영됐으나, 중단하고 현재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은 내부 공간, 목조 가구, 정원 등이 잘 보존돼 있으며 내부 곳곳에서 사진과 문화유산 자료 등 역사의 흔적들을 둘러 볼 수 있다. 관광객 이지현(28) 씨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을 왔는데 수정동에 있는 일본식 가옥은 꼭 들러 보고 싶었다”며 "역사의 아픈 부분을 담은 일본식 가옥에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941년 지어진‘적산 가옥’...카페‘초량 1941’로 변화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구봉산 자락에도 적산가옥이 위치하고 있다. 이는 20년간 방치돼 있다가, 문화재에 관심이 많던 어느 미국인의 제보를 통해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해당 가옥을 지역 내 대학교수가 조사한 결과, 1941년에 지어진 일본인 사업가의 주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많은 이들이 일본식 주택 건축배경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

그림  현재는‘초량 1941’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적산가옥으로 초량동 구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현재 ‘초량 1941’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적산가옥으로 초량동 구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은희).

현재 이곳 적산가옥은 ‘초량 1941’ 카페로 운영되고 있으며 방문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은 우유를 넣은 메뉴가 대표적인 우유 맛집 카페다. 그 이유는 6.25 시절, 부산이 임시수도였을 당시 산기슭에 ‘초량 목장’이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메뉴를 구성한 것. 방문객 최승민(26) 씨는 “이미 sns에서 핫플레이스로 인증된 곳이라 궁금해서 와봤다”며 “초량 목장에서 모티브를 따와 우유 카페로 개조한 것이 신선했고 무엇보다 가옥이 잘 보존돼 있어 과거로 시간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황정태(57) 씨는 “적산 가옥으로 방치됐을 당시는 음산했었는데, 카페로 개조 후 많은 방문객들이 다녀가니 밝고 활동적으로 바뀐 것 같다”며 “일제 시절 지어진 적산 가옥이지만 이것도 우리나라 배경 역사의 건축 일부라고 생각하고 잘 보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를 거쳐 민족분단이 있던 근대화 시기 속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장소들은 현재 흉터가 아닌 새로운 터로 자리 잡았다. 층층이 쌓여온 시간들은 시대의 변화된 새 터전을 마련했고 역사란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근대화 장소들은 변화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바구 길, 백제 병원, 168 계단, 적산 가옥 등은 현재 관광지로 우리에게 근현대 부산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고 기억하게 해주는 것. 전문가들은 “관광지로 개발된 곳들이지만 역사적 아픔과 국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많은 관광객들과 방문객들이 변화된 역사 장소에서 우리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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