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얀테의 법칙'이 만드는 북유럽 국가들의 언론자유와 선진 정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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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얀테의 법칙'이 만드는 북유럽 국가들의 언론자유와 선진 정치문화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3.07.0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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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노르딕 사회 저변에 흐르는 행동지침이 있다. ‘얀테의 법칙’(덴마크어 Janteloven, 스웨덴어 Jantelagen)이다. 덴마크계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가 1933년 쓴 소설 ‘도망자는 자신의 발자국을 넘어간다’에서 허구의 작은 덴마크 마을 얀테를 묘사하면서 지어낸 법칙이지만 노르딕 사회에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관습이자 불문율이라는 게 설득력이 크다.

이방인의 눈에도 북유럽 사람들의 말과 행동, 습속을 보면 얀테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우선 잘난 체하거나 되바라진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옷차림도 값비싼 명품보다는 수수한 차림에 비슷하고 집들도 거기서 거기다. 어디를 가더라도 큰 소리를 내거나 호들갑스러운 모습을 보기 힘들다. 튀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게 눈에 보인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젊은 부부들은 ‘쉿’ 하고 아이들을 꼭 껴안아 달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속마음이야 어떻든 말과 행동은 꼰대와는 거리가 멀다. 평등한 사회, 균질한 삶을 추구하는 게 모두에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노르딕 사람들은 극한의 환경에서 살면서 깨달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얀테의 법칙’을 중시하는 이들은 정치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화와 토론문화를 키워온다 . 비타협적인 독선과 아집, 억지와 술수, 상대방을 저주하고 배제하는 정쟁은 찾기 힘들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발트해 한복판에 자리한 스웨덴의 섬 고틀란드의 작은 마을 알메달렌에서 열리는 정치 토론회 ‘알메달렌 주간(ALMEDALSVECKAN·THE ALMEDAL WEEK)’. 올해도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닷새간 열린 알메달렌 주간에는 의회에 진출한 8개 정당이 참여해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 알메달렌 주간에도 정당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기업 등도 참여해 5000여 개의 행사를 벌이고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고틀란드 섬을 찾아 정치 축제를 즐겼다. 편한 옷차림으로 잔디밭에 앉거나 의자에 기대어 음료수를 마시며 정치인들의 주장을 들은 뒤 질문하고 토론하는 알메달렌 주간에서 고성과 야유, 비아냥과 비난은 들리지 않는다.

스웨덴 민주당의 정치인 린다 린드버그가 1일 알메달렌 정치주간에서 청중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1일 스웨덴 알메달렌 주간에서 민주당 정치인 린다 린드버그의 연설을 스웨덴 공영 텔레비전 방송 svt가 실시간 생중계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알메달렌 주간은 1968년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스웨덴의 교육부 장관이던 올로프 팔메가 고틀란드 섬으로 가족과 여름휴가를 왔다. 총리 내정자이기도 했던 팔메 장관이 휴가 왔다는 소식에 섬 주민들이 몰려들어 나라 살림에 대한 궁금한 점들을 쏟아냈다. 팔메 장관은 알메달렌 공원에 주차된 트럭에 올라가 종이쪽지에 끄적거린 메모를 보면서 즉석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전국적인 뉴스가 됐고 이듬해 총리에 오른 팔메는 다시 알메달렌을 찾아 주민들과 만났다. 이렇게 알메달렌 주간은 매년 정례화됐다.

스웨덴의 알메달렌 주간은 이웃 나라로 전파된다. ‘얀테의 법칙’을 공유하고 있는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도 정치 박람회를 열었다. 특히 덴마크의 정치축제 폴케뫼데(Folkemødet·민중회의)’는 알메달렌 못지 않다.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매년 6월 중순 코펜하겐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 보른홀름에서 나흘간 정치축제를 벌인다.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고 있는 프리덤 하우스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의 맨 윗자리는 북유럽 국가들이 독차지한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의 세계언론자유지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남들보다 똑똑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고, 좋은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만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우리들 인간이 완전무결하고 실수와 실패를 결코 하지 않는 신(神)이 아니라는 솔직한 성찰과 존재의 확인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들간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다수결로 집단지성을 이뤄나간다는 정치철학을 갖고 있다. ‘얀테의 법칙’이 사회 저변에 흐르는 북유럽에서 ‘알메달렌 주간’ 정치 박람회 소식을 접하며 한국의 후진적 정치문화를 생각한다.

‘얀테의 법칙’ 10개 조항 중 나머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 마라.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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