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에 성희롱까지..."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은 고객 술주정 받는 게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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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에 성희롱까지..."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은 고객 술주정 받는 게 기본"
  • 취재기자 조유란
  • 승인 2020.12.13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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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고객 줄고 대리기사 앱 등장해 경쟁 치열...친절 응대는 기본
감정노동자 보호법 있지만, 책임자 규정 애매하고 근로 감독 소홀한 게 문제점
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들은 밤새 술에 취한 진상 고객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들은 밤새 술 취한 진상 고객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음주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대리운전을 이용한다. 가게 카운터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다른 콜센터와는 달리 기계 아닌 사람이 직접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묻고 요금과 소요 시간을 안내한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대리운전 콜센터에 종사하는 상담원들은 많은 고충을 겪고 있다. 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 박 모(30) 씨는 “고객은 술에 취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횡설수설하는 술주정을 받아주느라 진땀을 흘리는 게 밤마다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남의 한 대리운전 콜센터는 오후 6시부터 오전 5시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총 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경남권의 한 도시 내 대리운전사들이 합동으로 한 개의 연합콜센터에서 전화 업무를 처리한다. 상담원이 콜센터에서 고객 위치를 접수해 컴퓨터에 입력하면, 그 도시의 연합콜센터에서 제공하는 앱을 통해 근처에 있는 가입된 대리운전기사에게 전달되고, 대리 기사 중 앱에 뜨는 건수를 잡고(클릭하고) 고객이 기다리는 장소로 가서 고객을 만나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콜센터 상담원 정 모(32) 씨는 “우리 도시 대리기사 전체가 연합해서 콜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업무량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리운전 콜센터에서 많이 겪는 진상 고객 유형 중에는 반말형이 가장 많다(그림: pngtree 제공, 취재기자 조유란 수정 제작).
대리운전 콜센터에서 많이 겪는 진상 고객 유형 중에는 반말형이 가장 많다(그림: pngtree 제공, 취재기자 조유란 수정 제작).

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들과의 취재를 종합하면, 진상 고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그중 전화를 받음과 동시에 반말부터 내뱉는 ‘반말형’ 진상 고객이 가장 흔한 유형이다. 반말형 고객 중에는 “나 OO에 있으니까 10분 안에 와”라고 말하고, 상담원이 기본적으로 입력해야 할 사항들을 미처 물어 보지도 안았는데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는 고객이 가장 많았다. 상담원 박 씨는 “이럴 경우엔 정말 난감하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술이 취해 받지 않는 고객이 대부분이라 접수하기도, 그렇다고 접수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다음 유형으로는 ‘술 주정형’이 있다. 상담원들이 접수를 마친 뒤에도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게 '술 주정형' 고객들의 주된 주사다. 술 주정형 고객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다. 주위에 내 얘길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어주지 않아 시간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다. 상담원 김 모(29) 씨는 “고객에게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면, 고객에게 이래도 되냐며 화를 낸다. 그럼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고 전했다.

“너 몇 살이야? 목소리 예쁘다”고 말하며 시간을 끄는 ‘성희롱형’ 고객도 흔하다. 전화 접수하는 내내 “몇 시에 마치냐. 끝나고 나랑 술 한 잔 어떠냐”며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성희롱형 고객도 적지 않은 편이라고 상담원들은 말한다. 콜센터의 막내 상담원 이 모(21) 씨는 “목소리에서 어린 티가 나다 보니 고객들이 더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땐 크게 놀라 퇴근 후 집에 가서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요금은 목적지가 어디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상담원들은 접수할 때 항상 고객에게 지불해야 할 요금을 기본요금과 다른 지역으로 갈 경우 추가 요금이 있다는 것을 안내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후, 추가 요금을 지불할 경우에 해당되지만 추가요금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항의 전화를 걸어오는 ‘요금 불만형’ 고객들도 많다. 상담원들은 “요금에 불만을 가진 고객이 ‘난 요금을 안내받은 적이 없다. 절대 요금을 줄 수 없다’”고 말하며 대리운전기사에게 기본요금만 주고 가버리는 고객들이 많다고 한다. 상담원 정 씨는 “분명히 기본요금과 행정 구역에 따른 추가요금을 안내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무작정 우기고 본다. 상습적으로 이 방법을 악용하는 고객도 있다. 그럴 경우엔 전화번호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해서 다음부터는 안 받든지, 받아도 요금 관계를 확실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골이란 명목을 앞세워 빨리 대리운전기사를 보내주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대리운전회사를 이용하겠다고 큰소리치는 ‘협박형’ 고객도 있다. “그런 고객은 ‘나는 못해도 이틀에 한 번은 부르는데 1순위로 기사를 보내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못해 주겠으면 앞으로 다른 대리기사 회사를 쓰겠다’고 협박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상담원들은 말했다. 이러한 협박형 고객들은 대개 단골이면서 동시에 다른 지인들을 고객으로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회사 입장에서는 힘들어도 단골 고객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 외에도 접수해놓고 사라져버리는 잠수형, 전화 연결 대기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욕설을 남발하는 욕설형, 콜센터로 찾아와 다 엎어버리겠다 협박하는 분노형 등 가지각색의 진상 고객 들이 있었다. 상담원들은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가끔 이유 없이 욕을 먹고 있으면 급속도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평생 먹을 욕을 일하면서 다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진상 고객들의 횡포에도 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들은 마음을 다 잡고 친절히 응대해야 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고객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가, 전통적인 전화 콜 방식이 아니고 핸드폰 속 여러 가지 앱을 통해 대리운전을 싼 가격에 부를 수 있는 방법도 생겼다. 그래서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붙잡아야 겨우 회사 운영을 유지할 수 있다. 콜센터 본부장 정 모(42) 씨는 “이대로 가다간 직원도 줄이고, 월급도 줄여야 할 것 같다.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 그리고 핸드폰 앱들이 익숙하지 않았던 그 시절엔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상담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도 어김없이 진상 고객은 있었고, 거부할 여유도 있었다고 상담원들은 말한다. 상담원 정 씨는 “우리가 상대하기 힘든 진상 고객은 본부장님이 직접 대응해 주기도 했다. 그땐 진상 고객에게 ‘사이다 발언’도 시원하게 하곤 했는데 요즘은 고객이 귀해서 그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반대로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은 그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감정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감정노동 관리사’라는 직업이 생길 정도로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은 크다.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이정훈 소장은 시빅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 법안 속에 의무 책임자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1인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근로자의 건강한 노동을 위해 사업주가 법이 제시하는 의무사항을 지키도록 지정돼 있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청 관계에 있는 경우, 의무 책임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예를 들어 A 사가 B 사에게 하청을 주고, B 사가 감정노동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의무 책임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소장은 “이런 경우엔 의무 책임자를 가려낼 수 없다. 법안에서 회사가 원·하청 관계에 있을 때 책임자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근로 감독관 수가 감정노동자 수에 비해 월등히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서비스업의 비중이 산업 중 70% 이상인 데다가 그중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 수는 셀 수 없이 많고, 그에 비해 근로 감독관 수는 턱없이 부족해 산업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우에만 근로 감독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 소장은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예방적 근로 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확한 법 개정과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콜센터 상담원 박 씨는 “우리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다. 근무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도 잠시 잊게 된다. 잠깐의 전화 한 통이라도 따듯하게 대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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