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이 갑이고, 기사는 을” 한국에서 유독 대우받지 못하는 택시운전사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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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이 갑이고, 기사는 을” 한국에서 유독 대우받지 못하는 택시운전사의 비애
  • 부산시 해운대구 조라희
  • 승인 2020.11.02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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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택시운전사의 잘못으로 생겨난 선입견으로
모든 운전사를 잠재적 가해자로 바라봐선 안 돼

서로에 대해 예우를 중시하는 외국 사례 본받고
우리나라 택시 계에도 선진 교통 문화 마련 필요
지난 1일 택시가 부산시 해운대구 지하철 앞 택시정류장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라희).
지난 1일 택시가 부산시 해운대구 지하철 앞 택시정류장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라희).

우리나라에서 택시운전사가 추천하는 경로로 오롯이 운행하게 된다면 어떨까. 택시운전사만을 믿고 도착지까지 갈 것인가, 원하는 경로로 가달라고 어필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손님이 택시운전사에게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사소한 것까지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 택시운전사 이홍우(7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손님이 구체적으로 길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고, 운전사가 본인이 알고 있는 익숙한 길로 운행하지 않는 경우 헛기침을 하는 등 기분 나쁜 티를 내는 손님이 있다”고 말했다.

손님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손님에게 원하는 바를 상세하게 질문하는 택시운전사도 있다. 택시운전사 박경숙(70,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손님이 탑승하면 “어느 길로 갈까요?”라고 먼저 물어보고, 모든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항상 여쭤본다”며 “손님에게 경로를 맞추니 트러블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유럽과 같은 외국에서는 주로 택시운전사가 추천하는 경로로 운행한다. 택시운전사가 되기 위해 길에 대해 잘 알아야 하며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하는 영국 런던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비교적 쉬운 시험을 통과해도 택시 운전 자격을 얻을 수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에서도 택시운전사에 대한 대우는 우리나라보다 높다.

이탈리아나 영국 등에서는 택시운전사가 목적지까지 손님의 목숨을 담보한다고 인식해 운전사를 신뢰하고 존중한다. 해당 국가에서 택시운전사가 운행 중인 경로에 대해 의심하거나 다른 길을 권유하면 운전사는 무시당했다고 판단해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한다.

부산시의 경우 주행거리가 2km를 초과하면 택시 기본요금 3,300원에서 주행요금과 시간요금이 붙는다. 주행요금과 시간요금을 합산해 최종 요금을 책정하는 요금제다. 주행요금이 133m마다 100원, 시간요금(15km/h이하 시)은 34초에 100원 씩 추가된다.

승객이 최단거리만을 고집할 경우 택시운전사와 종종 갈등이 발생한다. 택시운전사 이상훈(74, 부산시 동래구) 씨는 “최단거리지만 신호가 많아서 시간요금이 많이 붙는 경로 대신, 거리가 다소 멀어도 (신호가 없어서) 시간요금이 덜 나오는 구간으로 운행하는 경우에 일부러 먼 거리로 돌아간다고 오해하는 손님이 있어 답답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손님이 택시운전사에게 과속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택시운전사 박종민(57, 부산시 남구) 씨는 “천천히 가도 좋으니 안전운전을 원하는 손님은 극히 드물다”며 “탑승하자마자 “빨리 가려고 택시 탔습니다”라고 과속을 재촉하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제한속도를 위반하면서까지 과속을 강요할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단속카메라가 줄지어있는 도로에서 손님이 속도위반을 요구해 과속하면 택시운전사가 오롯이 손해를 입는다. 박종민 씨는 “손님의 요구로 속도위반을 해도 과태료는 오롯이 택시운전사가 책임져야 한다”며 “과속을 해서 가스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도 운전사가 감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손님이 신호위반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박경숙 씨는 “신호를 무시하고 가도 목적지까지 1, 2분 정도 차이인데도 손님이 무섭게 신호위반을 요청하면 난감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손님이 자차로 직접 운전할 때와는 달리 택시의 교통법규 위반은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씨에 의하면 “노란 불로 바뀌었는데 신호위반해서라도 가 달라”, “밤이라서 아무도 안 보는데 빨간불을 무시하고 가달라”는 등 무리하게 요구하는 손님들이 있다. 박 씨는 손님들이 ““신호를 다 지켜서 운전할 거면 내가 택시를 왜 탔냐”고 적반하장 식으로 화내면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택시운전사의 업무에 감정노동도 수반된다.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택시운전사에게 분풀이하는 손님이 있기 때문. 택시운전사 이말자(69,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술 취한 손님이 갑질하며 운전사의 팔을 발로 툭툭 치거나 욕을 쉴 새 없이 하는 등 시비를 걸어와도 지구대를 가면 돈도 시간도 빼앗기니까 화가 나도 참아내야 한다”고 털어놨다.

쉼터 택시 노동조합 윤예준(67, 부산시 사하구) 조합장은 “한국에서 택시운전사는 사회적으로 대접받기를 포기하고 산다”며 “우리나라에서는 택시 승객이 갑이고, 기사는 약자이자 을이다”고 말했다. 윤 씨는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힘들게 돈을 버는 택시운전사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손님에게 기분 좋게 서비스를 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택시운전사에 대한 승객들의 인식은 어떨까. 일부 택시운전사의 폭언이나 폭행과 관련한 언론의 기사는 전체 운전사에 대한 선입견을 불러왔다. 대학생 김종현(2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택시를 타보면 불친절한 기사님은 많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기사를 본 후 택시를 탈 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목적지까지 먼 경로로 운행하는 택시운전사도 부정적인 인식을 초래한다. 대학생 유종화(25, 부산시 남구) 씨는 기본요금 거리를 택시 운전사가 노선을 돌아가서 약 3천 원을 더 지불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유 씨는 “택시운전사가 되려 “운전 경력이 많은 내가 길을 더 잘 안다”고 말해 불쾌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택시운전사의 전문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손님도 있다. 대학생 이지영(2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택시운전사가 길을 잘 몰라서 내비게이션을 이용해보지도 않고 길을 물어볼 땐 속으로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어딘가에 늦어서 급할 때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기사님이 길을 잘 알고 능숙하게 운행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들도 잘못을 저지른 운전사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택시운전사 김호기(68,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택시 기사도 쉬는 날에 택시를 이용할 때 몇몇 운전사의 잘못된 점을 보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운전사의 잘못을 보고 전체 운전사의 잘못으로 성급하게 일반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택시운전사이자 쉼터 택시 노동조합 윤예준 조합장은 “(소수 운전자의 잘못으로) 전반적으로 택시 운전사와 손님 간의 관계에서 신뢰가 무너지고 서로 존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생겨나 안타깝다”며 “잘못을 저지른 택시운전사가 징계를 받고 물러나야 나머지 택시운전사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도 운전사이기 이전에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다. 한국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감정노동자인 그들에게도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려 고통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택시운전사에 대한 처우 개선이 선행되면 운전사들이 손님에게 기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돼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택시운전사나 승객의 폭언·폭행 등의 문제들이 사라지려면 택시운전사와 관련해 서비스가 잘 구축돼 있는 영국, 홍콩, 일본 등의 경우와 같이 손님과 택시운전사 모두 서로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 일부의 사건들로 인해 모든 택시운전사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기보단 상대를 존중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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