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정치에 있다-북미 정상회담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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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정치에 있다-북미 정상회담을 보며
  • 칼럼니스트 정장수
  • 승인 2019.03.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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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정장수

북한과 미국의 정상들이 만난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과로 끝났다. 김정은은 장장 66시간 동안 열차로 중국 대륙을 종단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트럼프는 폭풍 트윗으로 화답했지만, 희대의 정치쇼는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로 끝났다. 이를 두고 많은 언론들은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해묵은 수사를 갖다 붙였다.

과연 그럴까? 큰 틀에서의 합의는 이루었지만 세부적인 각론의 이견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해석이 옳은 것일까? 천만에다. 북미회담 결렬의 원인은 디테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있다.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는가? 북핵이 국제적인 문제로 공론화된 것은 1989년 영변의 핵시설이 원자력 발전시설을 넘어 핵무기 제조시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이지만,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4년 북미간 제네바협정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하는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수십년간 지속되었지만, 북한은 두 번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며 세계를 조롱했고,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6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하며 IRBM, SLBM, ICBM 개발 완성을 선언한 단계까지 왔다.

북한 정권이 핵개발에만 매달려 있는 수십년 동안 해마다 수십만 명의 북한 인민이 굶어죽었다. ‘2018년 세계기아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기아 수준은 세계에서 11번째로 심각하다. 오랜 내전으로 전 국민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수단이나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와 비슷한 수준이고 나이지리아보다도 나쁜 상황이다.

국제적인 원조나 햇볕정책의 수혜자는 북한 인민이 아니라 오로지 북한의 핵이었다. 핵은 김씨왕조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이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김씨왕조는 무너진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면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당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니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니 하는 북한 비핵화 협상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한은 추가적인 핵개발 중단과 장거리 탄도 폐기를 약속하고 그 대가로 대북제재해제와 핵보유국 인정을 받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 정도 수준의 스몰딜을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1812년 영미전쟁에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잿더미가 된 뼈아픈 역사를 잊지 못한다. 미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외국 군대에 수도를 점령당한 사건 이후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제1원칙은 ‘절대안보(absolute security)'다. 북한 핵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스몰딜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ICBM을 폐기, 포기한다고 해서 북한 핵이 미국 본토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북한은 이미 이라크 등에 불법으로 무기를 수출한 전력이 있다. 북한이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나 테러집단에 핵무기를 팔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 북한은 국제적인 규칙이나 약속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정상국가가 아니다. 여기에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트럼프는 애당초 불가능한 협상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자신들에게 집중시켰고, 5000만 국민이 핵의 포로가 된 대한민국의 문재인 정부는 국정 지지도 고공행진이라는 최대의 낙수효과를 누렸다.

국어사전의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속이는 것도 정치가 된다. 세계사의 수많은 전쟁들은 오직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집권자의 정치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은 제재강화와 핵개발이라는 각자의 길을 가는 모양새다. 그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남북경협이라는 생뚱맞은 길을 고집하고 있다. 고비마다 지지도를 견인해주고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선물까지 안겨준 북핵이라는 요술방망이를 차마 놓지 못하는 것일 테지만, 국민들이 이 정부의 정치에 더 속아줄까?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고마해라. 마이 무따아이가” 하는 말은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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