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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현상’과 한국 정치
  • 칼럼니스트 강석진
  • 승인 2018.07.30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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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석진

중복(7월 27일)이 들어 있던 올 7월 마지막 주는 ‘노회찬 주간’이었다. 충격으로 다가온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시작해 수많은 팬들의 애도 속에 장례가 엄수되면서 한 주가 마무리되었다.

노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에는 밤 늦게까지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수십 명씩 한꺼번에 문상하는 불편함에도 누구 하나 불평을 내놓기보다는 한 순간이라도 그와 함께, 그의 의지와 함께, 그의 따스함과 함께 하려는 듯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을 기렸다.

노 의원은 기실 사망 전 난처한 사태를 겪고 있었다.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과 관련된 수사를 하라는 특검이 느닷없이 노 의원이 드루킹으로부터 2016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금품을 수수했다며 곁가지 수사로 노 의원의 혐의를 공표했기 때문이다. 여타 정치인이라면 별로 양심의 가책도 받지도 않았을 일에 노 의원은 깊은 책임감을 스스로 떠안고 세상을 하직했다. 시민들은 노 의원의 혐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지어, 떼를 지어, 구름이 모이듯 그의 영정 앞에 섰다. 그리고 노 의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용한 흐느낌 속에 더 애잔하게 토해 냈다.

7월 마지막 주의 노회찬 조문 열기는 가히 ‘노회찬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지 않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평생을 함께 했을 뿐 권력을 쥔 적이 없는 노 의원에 대해 시민들이 해일처럼 소리 없이 일어나 감싸 안고 안타까워하며 그를 떠나보낸 것이다. 특검의 곁가지 수사로 ‘돈’ 문제가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오랫동안 보아온 노 의원의 진정성, 대중과 함께 해 온 정치 역정에 대해 뜨거운 사랑을 보여 주었다.

노회찬 현상은 한국 정치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인 나아가 정치에 대한 평가를 시민들이 직접 내리고, 이를 표현하는데 저어함이 없음을 보여 준다. 다수당을 구성하고 오랫동안 권력을 쥔 주류 세력이냐 여부는 중요치 않다. 시민들은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의 폄훼에도 흔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평가를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모습 속에는 앞으로 한국 정치가 어떤 경로를 걸어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변화가 담겨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회찬 현상에는 또 진보정치 지지가 노동자 계급이나 하층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중산층과 젊은 세대로 확산되고 있음도 보여 주었다. 노 의원 조문객들은 노 의원의 정치 역정과 주장에 공감하거나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조문객들은 남녀노소를 넓게 포함하고 있었고 넥타이 부대도 조문 대열에 대거 참석했다. 노 의원이 사망하기 전에 이미 정의당이 지지율 10%대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앞으로 한국 정치에 진보 정치가 확산된다면 노 의원의 죽음은 또 하나의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숙제가 남아 있다. 사망 2주 전쯤 나는 노 의원과 식사를 같이 했다. 현안 문제 등 여러 이슈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기억에 가장 뚜렷이 남는 것은 정치 개혁에 관한 그의 주장이었다. 하반기 국회 원 구성에서 정의당은 상임위를 포기하고 정치개혁특위를 맡게 되었다. 노 의원은 “별 볼 일 없는 상임위를 맡기보다는 정치개혁특위를 맡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충분히 공감되는 발언이었다. 개헌과 선거구제도의 개편 등 한국 정치의 개혁이 중요하고 시급하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선거구 제도를 개편해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또한 꼭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국민 지지만큼 의석이 배분되고, 의석이 배분된 만큼 권력이 배분되어야 민주주의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특정 지역에서 50% 남짓한 득표로 90%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는 권력 뻥튀기기의 혜택을 듬뿍 받았다. 이전에는 역으로 한국당 쪽이 그러한 부당 이득을 얻은 적도 적지 않다. 국민은 따라서 총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양당제의 틀을 깨고 다당제로 가길 희망하는 신호를 보내 왔다. 노 의원이 말한 선거구 제도의 개편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다.

국회 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거대 정당이 선거구 제도의 개편에 동의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정의당이 이끄는 정개특위가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 정치개혁에 성공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호남은 어느 당, 영남 특히 TK 지역은 또 다른 어느 당이 영구집권하는 한 정당들은 대화와 타협을 고려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노 의원이 남기고 우리가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다.

소수파 정당들이 국민 지지만큼 의석을 얻어 거대 정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면-물론 그 반대로 소수파 정당이 거대 정당을 더 극단으로 이끌어 갈 가능성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로 표현되는 한국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쉬움도 있다. 노 의원이 숨을 거두기 전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을 때였다. 정의당 일각에서 “우리가 노회찬 대표를 출당시킬 수 있을까. 만약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진실로 밝혀진다면 출당 조치가 맞는다”, “사실이라면 사정은 있겠지만 스스로 의원직 사퇴 및 당을 떠나야 한다”, “노 의원을 지지하지만 엄정 대응해야 한다” 등 노 의원을 비판하는 당원들의 글이 SNS에 실렸다. 노 의원이 유서에서 밝힌 것처럼 돈을 받은 사실은 사실 대로 남아 있는 만큼 반박을 하기 어려웠겠지만 아마 그에게는 꽤 아픈 비판이었으리라. 특검의 조사와 노 의원의 해명 등을 더 듣고 ‘동지’로서 품었다면 참혹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의 사후 정의당은 물론 시민들이 “한국 정치의 큰 자산을 잃었다”며 “우리 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이 이어져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음을 감안할 때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특정인을 평가할 때 나부터 공(功)을 평가하는 데는 박하고 과(過)를 드러내거나 공격하는 데는 지나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

“사람이 바른 선비를 사랑하는 것은 마치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도 같다. 살아 있을 때에는 죽이려고만 하다가 죽은 뒤에는 아름다움을 칭송한다(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生前欲殺之, 死後方稱美, 조선 중기 선비 남명 조식의 시 <우음(偶吟>)고 하였던가. 공을 평가하고 덕을 칭송하는데 인색하고 허물을 나무라는 데만 눈을 밝히지 않았는지 아쉬운 마음이 커져만 간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상찬할 수는 없지만 노회찬 의원은 그리움, 아쉬움, 숙제를 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 등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나갔다. 노회찬 현상을 디딤돌로 한국 정치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은 이제 남아 있는 ‘산 자’들이 따라가야 할 일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됐다.

칼럼니스트 강석진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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