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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 나는 당신의 고운 얼굴이 밉다/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지난 15일 남북 실무회담 대표단 중에 현송월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즉시 남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가 들고 온 지갑이 에르메스 명품이며 가격이 2500만 원이라고 언론이 떠들었으나,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녀가 21일 일요일 북한예술단 사전점검단장 자격으로 남한에 왔다. 그녀는 일요일 내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으며, 그녀의 동선을 따라서 몰려드는 취재진과 시민들로 서울과 강릉 지역은 북새통을 이뤘다. 그녀의 목도리가 여우 털이라거나, 구두가 무엇이고, 반지가 어떻다는 시시콜콜한 뉴스가 우리 귀를 간지럽혔다.

사건의 본질보다는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것을 미디어의 ‘타블로이드화(tabloidization)’라고 한다. 세계적인 선정적 대중신문이 대개 큰 종이신문 반 정도 크기인 타블로이드 판으로 발행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현송월을 그렇게 선정적으로 다루면, 독자들은 본질을 놓친다.

현송월을 다시 살펴 보자. 그녀는 1972년생이고 만 45세다(연도는 부정확할 수도 있다). 1994년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북한 최고의 왕재산경음악단과 보천보전자악단 출신이라고 한다. 2015년 12월에는 북한의 아이돌 그룹이라고 일컫는 모란봉악단을 이끌고 중국 베이징 공연에 나섰다가 중국 당국과 무언가 실랑이가 있어서 공연 3시간 전 공연을 취소하고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소위 모란봉악단 베이징 회군 사건의 장본인이다. 그녀는 현역 인민군 대좌(대령급)이고, 노동당 서기실 과장이며,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은 기간마다 숫자가 유동적이지만 대개 100여 명 정도다. 그 밑의 중앙위원회 후보위원도 100여 명 정도다. 그래서 현송월은 북한 전체 인구 중 서열 200위권의 인물이다. 그녀는 상위 1% 이내에 속하는 북한 핵심 지도층 인사다.

독일의 철학자 호르크하이머가 주도한 프랑크프르트 학파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 인간을 해방시킬 방법을 모색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물질지상주의이며 비이성적 사회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들은 동시에 자본주의의 반대쪽 공산주의 국가 구 소련을 방문하고 관찰한 이후 공산주의도 사회 비판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 이유는 소련이 공산주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고도의 관료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비이성적이기는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사실 1990년 구 소련 공산 정권의 멸망을 분석한 연구들 중에는 소련의 관료사회 문제를 지적한 게 많다. 원래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로 가는 길에 공을 들였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의 자각에 의한 노동자 계급혁명으로 국가 권력을 먼저 장악하고, 그 다음 모든 사유재산을 국유화하며, 그 후 공산주의라는 이상 사회가 건설되면 국가는 자연히 소멸될 거라고 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혁명 계획은 이렇게 국유화 과정이나 기타 국가 경영 전반 등 국가 권력 장악 후의 행정 방안에서 구체적이지 못했다.

레닌이 공산 혁명 후 수립한 구 소련의 정책은 곧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KGB와 같은 비밀경찰 국가 조직을 앞세운 공포와 폭력 정치였다. 솔제니친, 사하로프, 이반 데니소비치 같은 반체제 인사는 공산 정권 아래서 늘 추방과 탄압의 대상이었다. 소련 국가 지도자들은 레닌, 스탈린, 후르시초프 등등 이념 중심이 아니라 파워게임에 의해 승계됐고, 국가 권력은 소멸될 기미는커녕 점점 더 강화되어 갔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문제는 국가가 모든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경제를 완벽하게 계획에 의해 운영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것을 ‘계획경제(planned economy)’라 한다. 이는 자본주의 정부들의 경제 정책 계획을 의미하는 ‘경제계획(economic plan)’ 하고는 다르다. 국가가 한 나라에서 필요한 나사못 하나, 연필 한 자루부터 감자, 종이, 옷감, 석유 등 수십 만 가지 물품을 모든 지역 모든 인민이 골고루 적시에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관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무엇이 남고 모자라는 일이 소련 공산화 이후 내내 전국에서 벌어졌다.

이런 시스템으로 70년을 굴러가던 구 소련 몰락 직전에는 이런 유머도 생겼다. 한 사람이 모스코바 친구 집에 갔더니, 부모는 없고 자녀들만 있더란다. 아빠 언제 오냐고 물으니, 아이는 “0년 0월 0일 0시 0분 0초에 돌아오신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언제 오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엄마는 언제 올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가 무얼까? 아빠는 우주인이어서 도착 시간을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엄마는 빵 사러 시장에 가서 줄 서 있기 때문에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국가가 계획한 핵무기와 우주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었지만, 국가가 관심을 덜 쏟는 TV, 자동차, 고기, 빵은 엉망이었다.

이런 소련식 관료사회의 또 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일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평생 노력의 양과 상관없이 월급을 똑 같이 받고 똑같은 크기의 집에 산다면 일할 인간은 없다. 그래서 나타난 나태와 생산성 저하를 막고 일할 동기를 주기 위해, 구 소련 공산 장권이 만든 인센티브 제도가 당원과 비당원의 차별이었다. 일 잘하면 당원이 되고, 당원이 되어야 각종 혜택을 받았다. 그랬더니 한 번 당원이 된 이들은 경쟁과 비판이 없다보니 다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됐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인센티브가 영웅 칭호 등 수훈 제도였다. 공산당 간부들은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인 부르조와와 다를 바 없는 새로운 특권 지배 계급으로 변신했다. 이를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라고 한다.

1917년 이후 약 70여 년 간 이런 시스템에서 쌓인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구 소련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개혁)’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서, 협동농장의 농민들은 일과 후에는 각자 자기 집에서 채소를 가꾸고, 이를 시장에 나가 팔아서, 자기 이윤을 취하는 게 허용됐다. 협동조합의 의사는 국가 근무 시간 이후에는 개인적인 진료 행위를 해서 각자 사적 이윤을 얻는 게 역시 허용됐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협동농장과 협동조합에서는 하루 종일 빈둥대다가 저녁 이후에 자기 집에 가서는 자기만의 사적 이윤을 챙기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간의 심리는 참 오묘하다. 이렇게 소련의 계획경제, 관료주의, 그리고 인간의 평등하지 못한 욕망이 소련을 붕괴시켰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강력한 국가 중심 정치 체제를 건설해서 아테네를 지키려는 소크라테스의 계획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여자는 국가가 지정한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해야 하고, 이렇게 잉태된 아이들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국방을 위해 튼튼한 아이를 얻으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영화 <300>의 근육질 아테네 병사들을 보면 이 말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실제 국민의 성생활을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말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의 관점으로 보기 전에 이 대목은 눈을 의심할 만큼 충격적이다. 중앙 관리 시스템은 그래서 항상 중앙의 목표 달성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

국가든 그 무엇이든, 뒤에서 누군가가 조종한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언제나 부담스럽다. K-POP이 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아이돌 그룹은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태엽을 뒤에서 감아서 노래 시작과 동시에 태엽을 풀어 작동시키는 태엽인형과 다를 게 없다. 아이돌 노래와 안무는 ‘계획된 자유’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정현 선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 중계를 잘 보면,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남녀 ‘볼보이’들이 경기장을 여기저기 뛰어 다닌다. 그런데 그들의 동작과 동선은 기계처럼 신속하고 똑 같다. 그들은 단지 선수들의 경기에 차질 없이 움직이도록 훈련된 로봇일 뿐이다. 

아무쪼록 현송월이 이끄는 북한 관현악단이 평창올림픽을 맞아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 잘하고 그게 남북 평화 통일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 그러나 북한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화된 관료사회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현송월은 그 사회의 1% 안에 속하는 특권층을 상징한다. 그래서 나는 현송월의 고운 얼굴이 밉다. 나중에 미녀응원단이 와도 내 눈에는 예쁘게 보이지는 않을 듯하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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