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려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가?” 사랑 위해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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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되려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가?” 사랑 위해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
  • 김나희
  • 승인 2023.12.05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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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동성애 커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족’ 이루기 어려워
레즈비언 부부의 국내 첫 출산, 새로운 가족 형태와 여러 고찰 제시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움츠러들지 않고 자연스레 존재하는 세상 되길

국내 첫 레즈비언 부부인 김규진 씨와 김세연 씨의 딸 라니가 태어났다. 지난해 12월,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서 정자를 기증받은 규진 씨가 무사히 출산에 성공한 것이다. 부부는 연합뉴스의 기사를 통해 아이가 건강히 잘 태어난 데 안도하며 기쁨의 목소리를 전했다.

출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들을 존중하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부터, 이해에 앞서 낯선 모습에 무작정 비난과 혐오를 보내는 사람들까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와글와글 모여 싸우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선뜻 믿기 어려워했던 건 사실이다. ‘우와, 축하할 일이네!’보다는 ‘진짜?’, ‘어떻게?’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보통 출산 소식을 들으면 그 사정이 어떻든 비난보다야 축하를 보내게 된다. 소중한 생명이 태어난 일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축하’는 뒷전이었다는 게 왠지 씁쓸했다.

사람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듯, 대한민국 사회에서 ‘레즈비언 부부’와 ‘출산’은 매우 낯선 단어의 조합이다. ‘동성애’도 인정할까 말까 한 나라에서 동성 부부의 ‘출산’이라니.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그만큼 두 사람이 정말 대단했다.

대한민국의 현 인식이 어떻든 간에, 규진 씨와 세연 씨는 누구도 선뜻 내딛지 못했던 그 길에 용감히 첫발을 내밀었다. 어쩌면 부부의 출산 소식은 앞뒤가 막혀 제자리에 서 있던 대한민국 사회에 새로운 길을 보여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용기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그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어서 이 주제로 에세이를 작성하게 됐다.

부부가 무사히 출산하기까지의 과정을 쭉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관련 법이 현재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꼈다. 어려움을 딛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는 두 사람은 지금 ‘레즈비언 부부’로 불리고 있지만, 동성 커플의 혼인 신고가 불가해 법적 부부가 아니다.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만 시술을 받을 수 있어 벨기에의 난임병원에서 정자를 기증받았다.

두 사람에게 닥친 여러 제약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화가 났다. 부부는 단지 ‘동성’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동성 커플의 진짜 사랑은 너무 쉽게 가짜 사랑이 돼 버린다.

유전자, 뇌 구조 등 동성애를 둘러싼 논란은 매우 많지만, 그 무엇도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에 진실로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언제까지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외면하고 살 수 있을까? 동성 간의 결혼과 출산은 이미 ‘있을 수 있는 일’로 우리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

제23회 한국퀴어영화제는 “성 소수자는 전 생애에 걸쳐 온갖 규범과 낙인에 맞서 싸운다”라는 말로 영화제를 소개했던 적이 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말인데, 유독 마음에 남았다. 사랑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그들이 언젠가 싸우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용기 있는 레즈비언 부부가 쏘아 올린 공은 한국 사회에 “‘가족의 형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남자인 아버지와 여자인 어머니, 그 아래 친자식들을 ‘일반적인’ 가족으로 여겨 왔다. 그곳에 ‘동성 부부’라는 가족 형태가 있을 곳은 없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출생 신고를 할 때, 엄마와 아빠를 기재해야 한다. 여기서 엄마에는 ‘여성’만, 아빠에는 ‘남성’만 기재가 가능하다. 하지만 부모님이 모두 여성인 라니는 출산한 규진 씨가 엄마고, 아빠는 부재한 한 부모 가정의 아이가 돼 버린다. 버젓이 서로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두 명의 부모가 있는데도 말이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친자식이 있어야만 가족인 걸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안다.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등 우리 사회에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동물까지 ‘반려’라는 이름으로 가족으로 여기는 시대다.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족이 ‘꼭’ 지켜야 하는 모습이란 없다. 그럼에도 아빠가 없는 아이가 걱정된다는 둥, 동성 부부 아래서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지 걱정된다는 둥 ‘걱정’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라니는 이제 막 세상 밖에 나왔다. 그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앞으로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다른 모든 가정이 그러해 왔듯이, 이제 막 출발선에 서서 미래를 고민하는 하나의 ‘가족’이다. 거기에 대고 사서 걱정하고, 이렇다 저렇다 자격을 논하며 말을 얹는 것은 노파심이자 결례다.

앞서 발제 발표에서, 이성애자 부부라고 해서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고, 동성애자 부부라고 해서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미 좋지 못한 일을 겪었던 수많은 이성애자 부부의 사례가 있음에도 우리는 그들의 결혼과 출산에 이만큼 걱정하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걱정대로 좋지 못한 환경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쩌면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아이를 출산한 이성애자 부부보다, 오랜 기간 고민하고 결심해 아이를 출산한 레즈비언 부부가 아이가 자라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생활동반자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길 바란다. 일각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곧 동성혼 법제화라며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이 법은 동성애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생활동반자법은 혈연 없이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법이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로 지내는 성인들, 독거노인 등처럼 말이다.

동성혼이 어떻고, 가족의 형태가 어떻고 여러 말이 오가는 것은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려는 움직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사회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가족의 형태가 어떻냐보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모두가 돕는 것에 집중하는 사회가 우리에게 도달하길 바란다. 그날이 오기까지,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산한 레즈비언 부부’로서 우리의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이 나아갈 미래를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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