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도 괜찮아”··· 차별 없는 사회, 우리에게는 더 많은 안은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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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도 괜찮아”··· 차별 없는 사회, 우리에게는 더 많은 안은영이 필요하다
  • 부산시 해운대구 조재민
  • 승인 2020.10.19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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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장애·가난 등 사회문제 다룬 작품 ‘보건교사 안은영’이 보여주는 사회
“나쁘지 않다면 평범한 것보다 이상한 게 더 좋아”···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시작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나는 새로운 취미생활이 생겼다. 바로 넷플릭스 시청이다. 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작품을 접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연출력과 줄거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왕따, 학교폭력, 가난 등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내용으로 더욱 흥미롭게 시청할 수 있었다.

정세랑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극화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의 첫 시리즈물로 주목을 받았다(사진: 넷플릭스 캡처).
정세랑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극화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의 첫 시리즈물로 주목을 받았다(사진: 넷플릭스 캡처).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안은영은 죽은 사람과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욕망을 형상화한 ‘젤리’를 볼 수 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젤리를 제거하기 위해 가방에 항상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을 들고 다닌다. 나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음 봤을 때, 단지 상큼 발랄하게 젤리를 사냥하는 히어로 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6화까지 정주행한 결과,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음을 느꼈다.

안은영이 근무하는 학교인 목련고 교훈은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교훈에 따라 학생들은 매일 아침 ‘내 몸이 좋아진다’고 노래를 부르며 겨드랑이를 두드리는 체조를 한다. 체조를 마친 후 다 함께 크게 웃는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기괴하게 웃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비애(悲哀)를 느꼈다. 진학 문제, 학업 스트레스로 웃음을 잃은 학생들에게 웃음 체조로 억지 행복을 강요하는 학교의 문화, 서울대학교 진학을 염원하는 부적을 방석에 깔고 공부할 정도인 지나친 학구열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재능은 획일화된 교육으로 무시된 채, 대학 진학을 유도하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를 비판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 드라마에는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이야기가 나온다.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는 1999년 인천의 4층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많은 10대 중·고등학생이 숨진 사건이다. 특히 공무원의 부정부패로 인한 인재(人災),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고였다.

한편 안은영의 중학교 동창인 강선은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산업재해 노동자다. 나는 강선을 보면서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급증한 택배량으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상기시키면서 기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이경미 감독의 연출력에 감동했다.

드라마의 후반부에는 안은영이 학교를 그만둠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젤리 파도가 학교를 집어삼킨다. 젤리 파도는 학생과 교사들을 젖게 만들고,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 극 중 혜민과 래디가 사귄다고 커밍아웃을 하자, 친구들은 “너희 둘 다 에이즈 걸릴 거야. 환자 XX”라며 동성애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한다. 곧이어 “거지랑 사귄다”고 저소득층에 대한 혐오까지 이어진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주거형태, 부모 월급이 놀림감이 된 오늘날 한국 사회를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학생들 사이에서 ‘빌거지(빌라에 사는 사람)’, ‘이백충(월급 200만 원대)’ 등 거지 및 벌레를 붙여 혐오하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함’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과 혐오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나는 서로를 혐오하는 신조어가 생긴 이유를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어른들의 잘못된 가치관이 어린 학생들에게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젤리 파도에 젖은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을 내버려 둔 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 선생님은 학생 중 레즈비언 커플이 다른 선생님 반에 있다며 조롱한다. 새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 학생은 어떤 학생인데요?"라고 묻는 등 차별적 질문을 망설임 없이 한다. 교장 선생님이 다리에 장애가 있는 학생이라고 하자, 교사들은 박장대소한다.

나는 혐오를 웃음으로 표현하는 장면을 보면서 일상화된 혐오 표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인터넷에선 좀 더 자극적이고 임팩트 있는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극혐’ 같은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한다. 헬린이(헬스와 어린이의 합성어)와 같이 단어 끝에 ‘린이’가 붙은 신조어를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는 무의식 중에 어린이를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혐오 표현이 일종의 유머와 집단 문화가 돼 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혐오를 인식하는 기본적인 감각을 서서히 잃는다면, 결국 혐오를 반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상한’ 작품이다. 그저 젤리를 사냥하는 영웅의 이야기를 다룰 줄 알았던 시청자에게 사회 문제에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으면 평범한 것보다 이상한 게 좋다"는 극 중 대사처럼, 한국 드라마가 쉽게 시도하지 않은 액션물로 평범하지 않아서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이 가득하다. 다만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상해 보일지라도, 나쁘지만 않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더 많은 안은영이 필요하지 않을까?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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