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에 담은 인생' 송유수 씨의 주머니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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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에 담은 인생' 송유수 씨의 주머니시 이야기
  • 취재기자 정현수
  • 승인 2023.10.30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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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의 길을 포기하고 창업에 뛰어들다
‘창업 천재' 송유수 대표의 주머니시와 인생

이것은 작고 귀여운 시집입니다

“본 제품은 담배가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작품은 남용하셔도 좋습니다.”

주머니시 시집. 담뱃갑처럼 생겼다(사진: 주머니시 제공).
주머니시 시집. 담뱃갑처럼 생겼다(사진: 주머니시 제공).

주머니 속 시집, ‘주머니시’라는 도서 시리즈에 적힌 문구이다. 담뱃갑 모양의 패키지, 매력적인 일러스트로 꾸며진 겉면, 그 속을 채운 20장의 시는 청년 창업가 송유수(31) 씨의 손에서 탄생했다.

주머니시의 대표 송유수 씨 (사진: 주머니시 제공).
주머니시의 대표 송유수 씨 (사진: 주머니시 제공).

‘사랑의 재력가’

유수 씨는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하는 마음’과 ‘정의감’, ‘부모님의 사랑’이 주머니시를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중심에 있던 ‘정의로운 로봇의 영웅 서사물’은 유년 시절의 유수 씨를 사로잡았고 그는 “당시 방영한 로봇 애니메이션 대부분을 알고 있을 정도”라며 “제 정의감과 이상적인 마음은 어렸을 때 봤던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다”고 했다. 유수 씨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무엇보다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의 재력가’라고 설명한다. “세상을 살면서 중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심지가 더 굳건해져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유수 씨를 성장시킨 너그러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부모님의 성향은 주머니시에 담겨 더 많은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있다.

어쩌다 보니 광고홍보학과

유수 씨는 2012년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 광고홍보학과 12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유수 씨의 대학 진학에는 재미있는 비밀이 숨어있다. 원래 그의 꿈은 청년 창업가가 아닌 심리사였다. 심리학과를 목표로 이곳저곳 원서를 넣던 중,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에도 원서를 넣게 되었는데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에는 심리학과가 없었다. 유수 씨는 소비 심리를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광고홍보학과에 지원했고, 진학하게 되었지만 소비 심리는 여전히 모르겠다고 한다.

왜 ‘시’였을까?

얼떨결에 광고학도가 된 유수 씨는 어느 날 친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쓰게 되었다. 평범한 것은 싫었던 그는 평소에도 시를 자주 읽던 터라 쪽지에 나름의 시를 적어서 친구에게 줬고, 쪽지를 받은 친구보다 자신의 마음이 더 뿌듯함을 느껴 ‘펼치는 시’라는 하나의 아이디어로 남아있었다.

담뱃갑에 담긴 시

‘펼치는 시’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시기가 2014년이었는데 당시 연말에는 담배값 인상 이슈가 있었다. 마침 유수 씨도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참이었고, 담배값 인상 이슈에서 금연 캠페인을 해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금연 캠페인의 수단으로 ‘펼치는 시’라는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문학과 담배라는 아이러니 하지만 매력적인 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주머니시의 성장

주머니시의 개발에는 무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펼치는 시’라는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 ‘주머니시’로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내용물의 형태이다.

주머니시 내용물의 초기 모습이다(사진: 주머니시 제공).
주머니시 내용물의 초기 모습이다(사진: 주머니시 제공).

최초의 주머니시는 지금의 카드형 시가 아니라 담배처럼 말려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머니시는 담배처럼 종이의 끝과 끝이 맞물리는 형태가 아닌 두루마리처럼 여러번 감기는 형태였기 때문에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지금의 카드 형태가 되었다. 유수 씨는 카드 형태로 된 것이 큰 이점으로 작용해 다행이라고 한다.

주머니시의 시제품. 초기 주머니시는 두루마리처럼 만들었다(사진: 주머니시 제공).
주머니시의 시제품. 초기 주머니시는 두루마리처럼 만들었다(사진: 주머니시 제공).

주머니시의 특징 중 하나는 기성시인의 작품이 아닌 일반인의 작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유수 씨는 ‘시라는 장르가 친절한 장르는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누구보다 공감대를 잘 형성할 수 있는 일반인의 시를 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머니시의 팬 김도연(20)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학 생활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삶에 지쳐있던 시기에 주머니시를 한 장 한 장 읽으며 깊은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한다던 유수 씨는 주머니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라는 도움을 주고 있다.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주머니시의 초창기 시절, 유수 씨는 청년창업 SMART2030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해 1차 서류 평가 이후 2차 면접을 보러 갔다. 심사위원 세 분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1차 서류 평가 때, 주머니시는 총 세 표 중 두 표의 불합을 받아 탈락해야 했지만, 지금의 아내와 연애시절 매일 아침 문자로 시를 적어 보내던 추억이 생각나 면접에서 꼭 보고 싶었다.”

이 말을 들은 유수 씨는 세상 곳곳에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주머니시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위기의 주머니시

“주머니시는 언뜻 보면 담배에 더 가까워서, 매장 방문을 통한 소비 경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머니시의 입고와 판매는 대부분 독립서점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며 서점에 방문하는 고객이 크게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주머니시와 같이 소비자의 매장 방문이 중요한 독립서점에 고객의 발길이 끊기자 주머니시도 덩달아 힘들어졌는데, 별다른 정산 없이 폐업을 했던 서점도 일부 있어서 주머니시의 사정이 더 힘들어졌다.

주머니시가 독립서점에 진열되어 있다(사진: 주머니시 인스타그램 캡처).
주머니시가 독립서점에 진열되어 있다(사진: 주머니시 인스타그램 캡처).

“대형서점 입고에 다소 차질을 빚었습니다. 분실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요.”
주머니시는 도서 중에서도 미니북으로 취급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머니시는 담뱃갑 정도의 사이즈로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사이즈이다. 때문에 주머니시의 대형서점 입고에 차질이 있었고, 유수 씨는 대형서점의 각 지점으로 직접 방문하기 시작했다. 주머니시에 대한 설명과 진열대를 공급하는 등의 노력 끝에 좋은 반응을 얻어 점차 지점을 늘려갔다.

주머니시가 교보문고에 입점했다(사진: 주머니시 인스타그램 캡처).
주머니시가 교보문고에 입점했다(사진: 주머니시 인스타그램 캡처).

알을 깨고 나오다

“마지막으로 도전하고 깨끗이 내려놓자.”

힘든 나날을 견뎌오던 유수 씨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 신청을 했다. 그런데 서울국제도서전 소비자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행사 단 5일만에 주머니시 1년 총 판매량 20%를 달성한 것이다. 이때의 성공적인 반응에 힘입어 주머니시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다.

어디로 달려가는가

“무엇보다 돈이 되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테니까요.”

유수 씨는 얼마 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을 쓴 시인 박준의 수익에 관한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해당 시집은 10만 부 판매로 큰 흥행을 이루었고, 1억6000만 원 가량의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시집이 출간된 지 무려 6년 만의 기록이었고, 흥행을 이룬 작가조차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유수 씨는 이런 현실을 바꾸는 것이 주머니시가 바라는 목표라고 한다.

글쓰기가 대중화되고, 스타 작가가 탄생하고, 스타를 동경하며 글을 쓰는 사람들, 그 덕분에 더 많은 활자와 철학을 접하며 건강해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주머니시의 목표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주머니시는 먼저 행동하고 있다. ‘봄놀다’라는 웹/앱 서비스를 통해 주머니시를 구성할 작품을 공모받고 있다. 자격요건 없이 글을 쓴다면 누구든지 공모할 수 있으며 작품이 선정된다면 판매 수익의 일부를 작가에게 지급하고 있다. 유수 씨는 지금도 자본을 쌓아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시를 녹여낼 방안을 찾고 있다.

스스로 바라본 자신의 업적

유수 씨는 광고를 공부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순 있어도, 문화나 관습은 바꿀 수 없다”였다. 유수 씨가 보기에 주머니시는 “문화와 관습에 도전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며 그 상황에 변화가 생기고, 주머니시의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니, 어쩌면 꽤 대단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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