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앵그리 영’ 인헌고 학생들의 용기
상태바
한국의 ‘앵그리 영’ 인헌고 학생들의 용기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1.08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사상을 주사 놓듯이 주입해 정치적 노리개로 쓰고 버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수능시험이 채 2주도 남지 않은 시점, 서울시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펜을 잡기보다 마이크를 들고 언론 앞에 나섰다. 그간 참아왔던 교사들의 정치 편향적인 교육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서란다.

최근 언론에 따르면, 인헌고 학생들은 국어 수행평가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해선 국어교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접속해야 했는데, 해당 카페에는 “자유한국당과 기레기들이 문재인 정부를 이간질한다”, “문재인 정부를 까면 안 되는 이유” 등 편향된 정치 시각을 가진 1400여 건의 글이 게재돼 있었다고 한다. 또 수업 도중 학생이 반일운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면, 일부 교사들이 “너 일베니?”와 같은 모욕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교육학자로 잘 알려진‘파울루 프레이리’는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보다는 그 수업방식이 일방적인 전수냐, 아니면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는가를 교육의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았다. 이 이론에 따르자면, 인헌고의 경우 일부 교사가 지향하는 수업 내용은 진보인데 수업 방식은 일방적인 주입식에 해당하는 보수적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간 인헌고 학생들은 교사의 편향적인 정치 시각에 반박할 수 있는 발언권이 아예 박탈당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학교는 학업성취라는 목적을 가진 사회 집단인 만큼, 그 속에서 학생들의 성적과 인성을 평가하는 교사의 역할은 청소년기의 사회화 과정에서 절대적이다. 이는 한국이 교육기본법을 통해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가치 판단에 교사의 정치 성향이 영향을 미치게 놔둬선 안 된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기득권층을 위한 교육을 하게끔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청소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나이가 19세가 됐다고 자동으로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민이 될 리 만무하니 순진무구한 상태로 유권자가 되는 것이고, 이는 현재 권력을 잡은 기득권층이 가장 환영할 만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먼저, 교사의 정치 발언을 옹호하는 이들 일부는“교사의 정치적 발언이 학생의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는 것 자체가 학생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교사가 교실 안에서 정치를 말하지 못하면 학생이 순진무구한 상태로 유권자가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학생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나 보다. 또한, 국내 현실을 고려했을 때 교사-학생 관계가 완전한 수평적 관계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정치적 견해에 자주 노출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즉, 정치에 관한 얘기를 나누되 교사는 정치적 성향을 학생들 앞에 드러내지도, 이를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교실 안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할 법한 얘기라는 것이다.

“교사들은 또 학생을 선동할 것이지만, 이제는 당하지 않겠다. 학생이 모여 학생을 지켜낼 것이다.”이는 인헌고학생수호연합이 지난 11일 공개한 입장문의 한 대목이다. 5년 전의 난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자문해본다. 분명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진 못했을 것 같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수능을 앞두고도 대의를 품고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인헌고 학생 수호 연합에 든 학생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간 교단에서 정치 편향적 발언을 스스럼없이 했던 교사들은 이번에 밝혀진 문제를 계기 삼아, 진짜 청소년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가치판단의 결과를 제자들에게 강요할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