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부는 ‘경성시대’ 콘셉트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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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부는 ‘경성시대’ 콘셉트 유행
  • 취재기자 김지은
  • 승인 2019.09.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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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의상입고 사진촬영 바람...일제강점기가 좋다는 젊은 세대?
치욕의 일제 강점기 미화 우려...한쪽에선 뉴트로 유행일 뿐 반론

“당신을 낭만의 경성시대 속으로 초대합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경성시대’ 때의 콘셉트 사진 촬영이 인기다. 이 인기로 전국에 일명 ‘경성시대’의 의복을 대여해 입고 사진을 찍는 사진관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경성시대’의 유행이 문제의식 없이 일제강점기를 미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SNS에 #경성시대 #개화기콘셉트 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사진들이 뜬다. 이 사진들은 공통점이 있다. 남성은 쓰리피스 정장, 여성은 망사 장식이 달린 모자, 레이스와 브로치 또는 코르셋 장식이 달린 서양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또 사진 속의 배경은 마치 개화기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로 꾸며진 스튜디오라는 것이다.

이런 패션이 유행하면서 한복 명소로 유명한 서울의 경복궁과 익선동, 경주, 전주 한옥마을에서도 ‘경성시대’ 패션을 대여해주는 곳들이 많이 생겼다. 이곳들은 의상뿐만 아니라 모자, 핸드백 등의 소품까지 대여해준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대여비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크다. 의상을 보통 3시간 대여하고 사진 촬영까지 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3만 원대이다. 비싼 대여비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은 값을 지불하고 사진촬영을 한다.

대학생 안모(22, 부산시 남구) 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촬영하러 갔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며 “비싸지만 경성시대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너무 예쁘고 한복보다 불편함이 없고 좀 더 현대적인 옷이라서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의상을 대여해 사진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개화기 때의 의복을 입고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인기를 따라 개화기풍의 웨딩 촬영도 인기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최근 개화기 때의 의복을 입고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인기를 따라 개화기풍의 웨딩 촬영도 인기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은).

100년 전의 의상이 다시 유행하는 이유로는 최근 우리나라에 뜨겁게 불고 있었던 ‘뉴트로’현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의 합성어로, 과거에 유행했던 문화를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 현재 그 문화를 즐기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유행과 동시에 신미양요(1871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경성시대’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더욱더 빠르게 높아졌다.

대학생 강모(22, 경북 포항시) 씨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너무 재밌게 봤다”며 “드라마 속의 의상과 배경이 예뻐 친구들과 함께 개화기를 콘셉트로 해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볼 수 있는 개화기 때의 의복 모습이다(사진: 미스터 션샤인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볼 수 있는 개화기 때의 의복 모습이다(사진: 미스터 션샤인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인기를 증명하듯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는 경성시대나 개화기와 관련된 게시글이 1만 9000여건이 넘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너도나도 개화기 풍의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특히 ‘롯데월드’에서 올해 3월 개화기 축제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한복집, 가배(커피)집, 음반점, 양장점 등의 개화기 상점과 함께 전차 및 인력거 정류소 등의 1900년대의 거리를 재현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방문객이 개화기 패션을 대여해 입어 볼 수 있게 해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미화한 홍보 전략을 썼다며 롯데월드를 향한 소비자들의 비판 섞인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올해 봄 개화기풍의 의복과 분위기가 유행하자 롯데월드는 개화기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상점과 의복대여를 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사진: 롯데월드 홈페이지).
올해 봄 개화기풍의 의복과 분위기가 유행하자 롯데월드는 개화기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상점과 의복대여를 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사진: 롯데월드 홈페이지).

현재 일명 ‘경성시대’의 유행을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경성시대’는 일반적으로 1920~30년대를 가리키는 말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겨 강제 통치를 당했던 일제 강점기와 맞물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유행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미화하고 왜곡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이를 더 이상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이번 유행의 문제는 ‘경성시대’라는 말 자체에서도 알 수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적으로 지배하면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수도는 동경뿐이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수도를 한양이라고 오랫동안 불러왔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의 수도를 뜻하는 ‘한양’이라는 말을 없애고, 경기도의 일반 지방행정 단위로 격하시켜 ‘경성’이라고 부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성시대’라는 말 자체는 일본의 식민통치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현재 1900년대 초를 지칭하는 공식적인 시대적 명칭은 ‘일제강점기’로 통일돼있어 ‘경성시대’라는 말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실제 인스타그램에 개화기의상을 검색하면 개화기풍의 옷을 입고 인증하는 많은 게시물이 올라와있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실제 인스타그램에 개화기의상을 검색하면 개화기풍의 옷을 입고 인증하는 많은 게시물이 올라와있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현재 젊은 세대의 역사의식 부족으로 인해 생긴 문제라며 이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젊은 세대들은 역사적인 문제를 따지기 전에 SNS에 올리기 위해 ‘경성시대’에 열광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유행에 대해 단순히 즐길 거리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40대부터 80대까지의 어른들은 젊은 세대들을 이해할 수 없다, 역사의식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직장인 이모(50, 부산시 진구) 씨는 “아무리 유행이 돌고 돈다 하지만 이것은 심하다”며 “일제시대의 의복을 따라 입고 즐기는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던 일제강점기가 좋고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경성시대’ 유행이 일제 강점기를 미화한다는 주장은 너무 과한 반응이라고 말한다. 그 당시 개화를 하고 난 조선에는 일본 의복문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양복이 같이 들어왔다. 이 때문에 현재 유행하는 개화기 당시의 의복 유행이 꼭 당시 일본 문화를 따라 한다고는 볼 수 없다. 혹여 일본식 의복에 영향을 받았더라도 단순히 시대상의 일부로 즐기는 것뿐인데 일제강점기를 미화한다는 지적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대학생 이모(22, 경북 포항시) 씨는 “역사적으로 보면 이번 유행에 대해서 참담함을 느낀다”며 “하지만 단순히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그 시절의 의복을 대여해 입고 예쁜 사진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인데 너무 멀리까지 나간 것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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