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청부살인업자의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 소설 ‘파과(破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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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청부살인업자의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 소설 ‘파과(破果)’
  • 부산시 서구 신나리
  • 승인 2019.09.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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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파과' 표지(사진: YES 24).
도서 '파과' 표지(사진: YES 24).

책 <파과>(破果)의 저자인 구병모 작가는 냉장고 청소하다가 발견한 시큼한 시취(屍臭)를 풍기는 과일이 영감의 첫 시작이라고 했다. 나는 <파과>라는 낯선 단어의 책 제목과 영감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바로 책을 구입했다.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해서 후회하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았다. 책을 다 읽은 후, 책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과 신선한 캐릭터에 대한 충격이 남아있었다.

<파과>는 나를 3일 동안 소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 책은 40년 넘게 청부 살인이 직업인 60대 여성 킬러 ‘조각’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청부 살인이 직업인 만큼 평소에 냉정하고 묵묵한 조각이 자신의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숨겨왔던 감정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책의 줄거리다. 흔한 소설의 내용 같지만 주인공이 여성이고, 구병모 작가의 생생한 글의 표현이 절대 흔하지 않아 더 큰 재미를 전달한다.

책은 지하철을 탄 조각이 한 남자를 살해하는 일로 시작된다. 함께 지하철을 탄 노인들과 달리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는 핀잔 없이 조용히 성경책을 읽는 할머니로 조각의 모습이 쓰여 있다. 마치 내가 조각과 같이 지하철을 탄 것처럼 생생하게 모든 상황들을 잘 표현했다. 그 후에도 조각이 싸우는 장면과 조각이 타인을 지켜보는 시선까지 눈을 감으면 그 상황이 보이는 것처럼 세세하게 설명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내용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강점이 또 다시금 책을 읽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파과>를 산 지 3개월 만에 네 번이나 읽었다. 읽을 때마다 어려운 표현들을 더 깊게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독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용이 질리지 않아야한다는 점인데, 이 책은 그 부분을 걱정할 필요 없게 만든다.

낯선 단어인 <파과>는 흠집이 난 과실이라는 의미와 함께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목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342쪽에 마지막 구절인 “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이다. 이 부분은 조각이 환영받지 못하는 늙은 킬러가 되면서 자신에게 파과는 이미 사라진 것을 깨닫는 그녀의 독백이다. 그리고 농익은 과일이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과일로 변하는 것과 나이가 들어서 빛나는 시절인 파과가 사라져도 슬퍼하지 말고 보내주자고 작가가 조각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60대 킬러 조각이 우리에겐 낯선 인물이지만 어쩌면 우리와 차이 없이 빛나는 시절을 보냈던 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 소설에서 많이 찾아볼 수 없는 여성 중심 소설이라는 점이 <파과>의 강한 개성이다. 구병모 작가가 가진 특유의 냉소적인 문체는 독자들을 환상 속으로 데려다주는 길잡이다. 그래서 나온 지 6년 된 책이라도 항상 새로움을 전달해준다. 인터넷에서 본 <파과>에 대한 평은 생생한 표현력이 무섭다는 독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긍정적이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파과>를 읽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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