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용 개 혈액 제공 '공혈견' 사육, "너무나 비인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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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용 개 혈액 제공 '공혈견' 사육, "너무나 비인도적"
  • 취재기자 김영백
  • 승인 2015.11.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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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결 환경 철장에 가둬놓고 학대 일삼아 ...사료 아닌 음식물 쓰레기 제공하기도

사람은 사고가 나거나 큰 수술 등으로 피가 대량으로 소모되면 수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헌혈을 통해 확보한 피로 수혈을 한다. 그런데 요즘처럼 애완견을 많이 키우고 끔찍이 돌보는 세상에, 애완견들도 다치면 수술을 하게 된다. 그러면 애완견도 수혈이 필요하다. 개들이 헌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들은 도대체 어떻게 피를 공급받을까?

해답은 공혈견(供血犬)이다. 이 세상에는 애완견들이 수술 받을 때 필요한 ‘피를 공급하기 위해 사는 개’가 공혈견인 것이다. 공혈견은 말 그대로 피를 공급하기 위한 개를 뜻한다. 수혈을 하는 대부분의 개들은 공혈견들이 공급하는 피를 이용한다. 그러나 개를 키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공혈견들의 존재를 모른다.

수의사들은 개의 혈액형은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개의 혈액형은 13개나 되지만, 사람의 혈액형과는 달라서 일종의 항체구조라고 한다. 그래서 개는 사람과 달리 자연적으로 생기는 항체가 없기 때문에 고유 혈액형이 있어도 첫 수혈은 어떤 혈액형의 피라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두번째부터는 첫 수혈과 같은 혈액형의 피를 사용해야 된다고 한다.

개에게 수혈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하는 애견인 박종호(35, 부산 북구 화명동) 씨는 “개도 수술할 때 수혈한다고는 들었지만, 어디서 공급되는 피인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또 부산의 한 동물병원을 애완견 때문에 방문한 이모(26) 씨도 “개가 헌혈하는 것도 아닌데 피가 어디서 공급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다”고 말했다.

공혈견들은 일부 큰 동물병원에서는 자체적으로 길러 수혈에 대비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병원에서는 민간기업인 ‘한국동물혈액은행’이라는 곳에서 수혈용 피를 구입해서 사용한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한 수의사는 “공혈견을 개인 동물병원들이 직접 키우면 좋겠지만, 여건상 키우는 것보다 피를 사서 쓰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사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 수술 후 수혈을 받고 있는 개의 모습(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공혈견이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채혈을 위한 개이기 때문에 직접 공혈견을 키우는 동물병원에서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세퍼트,’ ‘그레이 하운드’와 같은 대형견을 선호한다. 이 개들은 덩치도 크지만 성격도 온순하기 때문에 선호된다고 한다. 또한 예방접종이 완료되어야 되며, 수혈을 쉽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O형에 해당하는 혈액에 마이너스 인자를 가진 개들이 가장 좋은 공혈견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혈견으로 사용되는 개들이 일반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대형견이라는 조건 때문에 작은 동물병원에서는 섣불리 공혈견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수의사들은 증언했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 래브라도 리트리버, 세퍼트, 그레이 하운드(사진: 강쥐닷컴).

한국동물혈액은행이라는 민간회사가 독점적으로 시장에 혈액을 공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혈견들은 여기에서 기르고 있다. 공공성을 가진 기관으로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동물보호 시민운동 단체 ‘케어’가 공무원과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곳의 혈액을 믿고 써도 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케어가 <시빅뉴스>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공혈견을 사육하는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약 300여 마리의 공혈견들이 나무판자도 없는 철창에 갇혀있는 상태였다. 또한 공혈견으로 쓰이는 개들은 대형동물병원에서 기르는 비싼 대형견들이 아니라 개고기용 잡종견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들은 사료가 아닌 주변 군부대에서 가져온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등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해 한 눈에 보기에도 병들어 보인 상태였다고 케어 관계자가 밝혔다. 또한 채혈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상주하는 수의사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케어 관계자가 덧붙였다.

▲ 한국동물혈액은행의 내부모습(사진: 케어 제공).

이런 상황이 10년이 넘도록 방치된 이유로는 관련법의 부재에 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동물 혈액 판매 산업에 관한 규정이 아예 없다. 네이버 블로그 ‘강아지와 자유인의 행복공간’에 따르면, 2012년 국회에서 반려동물 수혈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 혈액 판매는 인허가 업종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 블로그는 이렇게 비윤리적으로 개를 사육하는 데 따른 법적 책임을 묻기에도 동물보호법 조항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 2항 2호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학대 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어 관계자는 이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공혈견이라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되기 때문에 애완견에 대한 수혈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이 조항은 원래 곰쓸개 채취를 염두에 두고 만든 조항이기 때문에 이를 공혈견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 중이라고 말했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각 주마다 법률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동물혈액을 판매하는 기업은 없다. 대신 개의 수혈용 혈액 확보를 위해 유기견 중 구조된 대형견들을 1년에서 2년 정도 돌보면서 공혈하다가 입양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케어는 우리나라의 비윤리적인 공혈견 사육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어 관계자는 이를 위해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을 제시했다. 케어 관계자는 첫 번째로 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유기견 중 대형견들을 입양 전까지 공혈견으로 활용하는 방식과, 두 번째로 애견인들의 인식 개선을 통해 개 헌혈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방법은 개들이 자발적으로 헌혈할 수 없으므로 애견인들이 자신의 개를 헌혈에 동참시키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케어 관계자는 덧붙였다. 케어 관계자는 “법률의 정비도 중요하지만, 애견인들이 자신들의 개들처럼 적극적으로 헌혈에 나서준다면 공혈견의 집단사육은 자연스럽게 사라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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