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자동차 도로의 무법자, '하이빔 드라이버'
상태바
밤길 자동차 도로의 무법자, '하이빔 드라이버'
  • 취재기자 김가희
  • 승인 2015.06.15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향등 함부로 켜고 질주, 마주오는 차량 사고위험 빠뜨려...단속 속수무책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대학생 김모(26,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얼마 전 본의 아니게 차사고를 낼 뻔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밤길을 달리고 있었던 김 씨는 조심스럽게 좌회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코너를 꺾자마자 상향등을 켠 채 달려오는 차량 때문에 멈칫하고 말았다. 강렬한 불빛을 그대로 마주한 김 씨는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차가 큰 경적 소리를 내며 멈춰 섰고, 그의 차는 하마터면 추돌사고를 낼 뻔했다. 마주 오던 차는 가까스로 김 씨 차를 지나쳐 갔지만, 김 씨는 한동안 차를 세워놓고 식은땀을 닦아내야 했다. 김 씨는 짧은 운전 기간 가운데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자기만 편하자고 (상향등을 켠 채) 달려오는 차가 마치 도로 위의 무법자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운전에 능숙한 임모(28, 부산시 수영구) 씨에게도 상향등을 켜고 질주하는 차들은 주의대상이다. 그중에서도 보란 듯이 상향등을 켜고 뒤따라 오는 차들이 임 씨의 골칫덩어리다. 뒤따라오는 차가 상향등을 켜면 그 불빛이 백미러와 사이드미러에 닿아 주위를 파악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 화냈던 임 씨도 이제는 애써 무시하고 추월해 지나간다.

상향등(일명 쌍라이트)은 어두운 밤길을 주행할 때 앞을 보다 환하게 비춰주는 차량등이다. 전조등은 하향작동과 상향작동을 하는데 보통의 하향등(low beam) 가시거리가 40m인 것에 반해 상향등(high beam) 가시거리는 100m에 이르러 하향등과 비교하면 훨씬 밝은 편이다. 그 때문에 상향등은 주로 어두운 고속도로나 인적이 드문 시골 길을 달릴 때 유용하게 쓰인다. 문제는 몇몇 운전자들이 도심 속에서 상향등을 무분별하게 사용해 다른 운전자들의 시야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상향등으로 인한 위험성은 한적한 골목길에서 더 커진다. 직장인 오모(26, 부산시 동래구) 씨는 여느 때처럼 가로등이 적은 골목길로 운전해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반대편 차가 상향등을 켠 채 다가왔고 순간적으로 불빛이 오 씨의 시야를 흐려놓았다. 오 씨가 눈이 부신 상태로 브레이크를 잡고 보니 전봇대가 바로 눈앞에 닿아 있었다. 맞은 편 차는 유유히 사라진 뒤였고, 오 씨는 그 자리에서 불만을 삼켜야 했다. 오 씨는 “예의상 상향등 사용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며 “골목길이 어두운 것은 이해하지만, 상대 운전자를 생각한다면 지나가는 동안만이라도 불빛을 낮춰줬으면 한다”고 덧붙혔다.

▲ 왼쪽 사진은 하향등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상향등이 켜진 모습이다. 차량의 전조등을 상향 작동하게 되면 광선이 전방만 비춰 맞은 편 운전자 눈의 피로가 훨씬 심해진다(사진: 취재기자 김가희).

자동차 관리법의 ‘전조등 관련 법규’에 의하면, 일반적인 차량 주행빔(상향등)의 밝기는 1만 2000cd에서 11만 2500cd로 규정돼 있다. 3,000cd 이상 4만 5,000cd 이하인 변환빔(하향등)의 밝기 제한과 비교해봤을 때 엄청 밝은 것이다.

강렬한 빛을 맞닥뜨린 운전자들은 눈에 피로를 받게 되고 일시적으로 눈앞에서 모든 사물이 사라지는 ‘증발 현상’을 겪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잘못된 차량 불빛 사용으로 인한 사고 위험에 운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도심 속에서 증발 현상을 겪게 되면 차량 외 교통시설이나 보행자까지 위협이 가해질 수 있어 2차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상향등이 보복운전의 일환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26일 방영된 KBS 1TV <시사기획 창 - 공포의 도로폭력>에 의하면, 보복운전은 상대방에게 생긴 불만을 되갚아 주겠다는 심리에서 시작되는데, 이들 중에는 상대편 운전자의 상향등 사용으로 감정이 격해졌다는 이유도 더러 있었다. 반대로 보복해주기 위해 상향등을 지속적으로 켜고 쫓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 때문에 크고 작은 사고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부산의 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근무하는 김모 씨에 의하면, 보복운전으로 차가 망가져 오는 손님도 종종 있다. 대부분 상향등 사용처럼 사소한 것이 발단이 돼 사고가 났다는 것이 김 씨의 이야기다. 김 씨는 “같은 운전자의 입장에서 상향등이 얼마나 눈이 부신지 알기 때문에 서로가 조금씩 양보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도 상향등 문제에서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경우, 반대편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는 상향등 사용과 관련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독특한 처벌을 가하고 있다. 2014년 8월 7일 ‘나우뉴스’ 기사에 따르면, 상향등을 켠 채 운전한 사람들은 한동안 상향등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벌을 받아야 한다. 야간운전 중 사고의 큰 원인 중 하나가 반대차선 차량의 상향등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시범적으로 이 같은 처벌을 실시했고, 실제로 일반 도로에서 상향등을 켜고 운전하는 사례가 줄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상향등 사용에 대한 명백한 규제가 없는 실정이다. 부산경찰청 교통사고반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이모 경장은 상향등 사용의 경우 단속이나 처벌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경장은 “신고나 민원이 들어온다면 모를까 불특정 다수의 차량을 일일이 단속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상향등이 찰나의 빛을 내는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어 사고 원인으로도 입증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덧붙혔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상향등 사용 제재와 관련된 구체적인 법령은 없다. 도로교통공단의 한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일반 도로에서 상향등 사용은 제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운전자 스스로가 상향등 사용에 주의를 기하여 배려하는 교통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현재로써는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