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방의학의 위기와 ‘육불치(六不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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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방의학의 위기와 ‘육불치(六不治)’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8.12.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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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얼마 전 서울대 의과대 예방의학과 박병주 교수와 만찬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박 교수는 1973년 서울의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 예과와 본과를 마친 뒤 평생 외길로 예방의학에 전념해온 사람이다. 한국 의약품안전관리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대한예방의학 학회장을 맡고 있다.

만찬 석상의 화두가 제주도의 영리병원 설립 문제 등 최근의 한국 의료계 현실에 이르자 박교수가 한탄을 했다. 요즘 예방의학과 지망자가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예과를 마친 의대생들이 대부분 성형외과나 안과, 피부과 등 이른바 ‘인기과’에 몰리며 예방의학을 전공하도록 권유받으면 손사래부터 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예방의학 캐리큘럼도 줄어 전국 40여 개 의과대학 중 예방의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대학은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방의학이 이처럼 홀대받는 이유는 뻔하다. 돈이 안된다는 것이다. 예방의학을 전공한 의사는 주로 학계나 보건복지부 등 관계(官界), 또는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 진출한다. 환자를 직접 치료한 뒤 수가를 받는 일반 의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어떻게 보면 간접적, 보조적 의료진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방의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도록 보건사회의 안전성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은 예방의학 의사들의 주된 임무다.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대책과 처방을 신속하게 마련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 중 하나다. 만일 한 나라에 예방의학이 부실하다면 나날이 변이를 거듭하는 전염병이 새로운 형태로 창궐할 때 국가적 재앙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구미 선진 외국에서 예방의학 의사들을 질병으로부터 사회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전선의 가드로 존중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성형외과는 없어도 예방의학과가 없는 의과대학은 없다고 한다.

예방의학의 중요성은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기원전 5세기경 춘추전국시대 명의 편작(扁鵲)이 일찌감치 설파한 바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당시 위(魏)나라 문왕(文王)이 편작의 명성을 듣고 그를 불러 물었다.

“듣자하니 귀공의 형제 세 사람이 모두 의사라고 하는데, 셋 중 누가 가장 의술이 높은가?” 이에 편작은 “큰 형님이 가장 높은 의술을 가졌습니다. 큰 형님은 병세가 발작하기도 전에 그 원인을 제거해 병을 낫게 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병을 미리 치료하여 화근을 막았는지 느끼지도 못합니다. 오직 저희 집안 사람들만 큰 형님의 의술을 알고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문왕이 “그럼 작은 형은 어떤가?”라고 되묻자 편작은 “작은 형님은 발작 초기에 치료를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의 의술을 그저 작은 병을 치료할 정도라고 느낍니다. 이 때문에 작은 형님의 명성은 저희 고향 마을 주변에 소문나 있을 뿐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그는 “반면에 저 편작은 병세가 아주 위중해진 다음에야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합니다. 환자에게 침을 놓고 피를 뽑아내며 피부에 약을 바르고 큰 수술을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고 나서 환자를 낫게 합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저의 의술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고 명성이 전국에 자자하지만 실은 큰 형님의 큰 의술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이에 문왕은 “잘 알겠다”면서 “그것이 바로 의술의 도리이로다”라며 편작의 겸양지덕을 칭찬했다고 한다. 여기서 편작이 상찬한 그의 백형(伯兄)의 의술이 요즘으로 치면 예방의학일 것이다. 병세의 원인을 미리 제거해나가는 진정한 의도(醫道)를 말한다. 이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의학계에서는 대의(大醫), 중의(中醫), 소의(小醫)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대의’는 물론 예방의학이고, ‘소의’는 수술 등으로 환자를 직접 치료해 질병을 낫게하는 대증요법을 말할 것이다. ‘중의’는 초기 진단으로 병세의 확산을 막는 방사선 의학 정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 교수가 한탄한 예방의학의 위기는 생명 구원의 사명감보다 물질 만능주의에 물든 한국 의료계의 현주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의약분업이라든지, 의료보험 수가, 특진 문제, 또 최근의 영리병원 설립 문제 등 의료 관련 사회적 이슈에서 의협 등 의사들의 이익단체는 환자의 권익보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왔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들의 밥그릇을 더 크게 확보하려는 주판알 계산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다.

편작이 신이 내린 명의라는 이름을 날리던 BC 5세기경 그리스에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한 명의 히포크라테스가 활동했다. 비슷한 시기에 지구의 양쪽 편에서 인류 최고의 명의가 탄생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의 해를 주는 어떠한 것도 멀리 하겠다”고 말했다. 또 “청렴과 숭고함으로 나의 인생을 살 것이며 나의 의술을 펼칠 것이다”라고 했다. 바로 요즘의 의사들도 의사 자격증을 얻는 순간 반드시 외우고 읊어야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일부다. 이런 선서를 한 뒤에도 환자의 이익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며 청렴과 숭고함보다 부패하고 저속한 삶의 태도를 가진 의사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편작은 자신의 의술로도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 여섯 가지 있다고 했다. 이른바 ‘육불치(六不治)’다. 그 중 하나가 돈과 재물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몸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다. 중도 제머리는 못 깎는다지만 물질만능 육불치 중병에 걸린 한국 의료계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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