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월차 낼 수도 없고..." 워킹맘 울리는 녹색어머니회 교통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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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월차 낼 수도 없고..." 워킹맘 울리는 녹색어머니회 교통 봉사
  • 취재기자 조윤화
  • 승인 2018.03.2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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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강제 차출에 알바생 대신 보내기도..."학부모 부담 덜어달라" 청와대 국민청원도 / 조윤화 기자
비 오는 날 학부모가 우비를 입은 채 교통안전 봉사를 하는 모습(사진: 서울 경찰 페이스북 캡처).

초등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 사이에서 녹색어머니회 교통안전 봉사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는 봉사 당번이 돌아올 때마다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고용해 대신 보내기도 한다. 

녹색어머니회는 초등학교 등하굣길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차량을 통제함으로써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는 민간 봉사단체다. 학부모들의 자발적 지원으로 봉사단원을 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에게 연중 3, 4차례 정도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타율 봉사' 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많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8세 미만 자녀를 둔 가구 중 맞벌이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48.5%에 달하는 현실에서 맞벌이 부모의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직장인 이모(37) 씨는 녹색어머니회 당번을 일주일 앞둔 시점부터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이 씨는 “매번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월차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며 “워킹맘이다 보니 애들 학교일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번에는 회사에서 급한 프로젝트 미팅이 있어서 도저히 못 나갈 것 같아 녹색 어머니회 대표에게 사정을 알렸더니 이 동네에는 워킹맘이 많아서 대타 뛰어줄 사람이 없다”며 “어떻게든 다른 대타를 알아서 구해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특히 초등학교 자녀가 둘 이상일 경우 녹색어머니 교통 봉사 배정일이 더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학부모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직장인 네티즌 A 씨는 “올해 쌍둥이 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며 “두 딸 모두 같은 반에 배정됐는데 두 명 분의 봉사 활동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담은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에는 “내 딸아이 학교는 자녀 한 명 당 연 2회라 초등학생이 3남매라면 6일 선다”, “저도 쌍둥이 맘인데 자녀 한 명당 연이틀이라 나는 4회 나간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녹색어머니회 외에도 어머니 폴리스, 어머니 도서위원 등 취지는 좋지만 학부모들에게 사실상 강제적(?) 참여를 요구하는 활동이 늘어나면서 민원도 속출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 판에는 “초등학교 어머니 동원 금지”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동원을 금지하고 그동안 학부모를 동원했던 일을 전문가를 고용해 인력을 대체해 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해당 청원은 각종 육아 커뮤니티에 참여를 독려하는 글들이 퍼지면서 현재 1만 4000여 명이 참여했다.

네티즌 B 씨는 자신이 활동하는 육아 커뮤니티에 해당 청원 홈페이지 링크를 첨부하며 “봉사는 말 그대로 봉사지, 그 속에 강제가 들어가면 봉사가 아니라 노동 착취”라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녹색어머니 교통봉사가 학부모를 노동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맞벌이뿐 만이 아닌 둘째가 어리거나 세 자녀를 가진 분들은 봉사에 참여하기 어렵다”며 “아이를 둘러업고 봉사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분노했다. 이어 “학교는 학부모의 봉사를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언제까지고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해당 청원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네티즌 B 씨가 언급한 대로 녹색어머니회는 그 역사가 오래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1969년 ‘자모교통지도반’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오다 1971년 '녹색어머니회'로 명칭을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학교 2학년생인 윤모(21) 씨는 “녹색어머니회가 아직 이어져 오고 있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윤 씨는 “초등학교 시절 제 어머니도 녹색어머니회 지도를 했다”며 “그때 어머니는 교통지도뿐 만 아니라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진 매주 급식 봉사를 했고, 심지어 더운 여름엔 학교 화단에 잡초를 뽑는 일까지 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윤 씨는 ”맞벌이 부부도 증가하고 있는데 학교가 육아 부담을 덜어주긴커녕 방관하고 있다”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시대가 어느 때인데 녹색부모회가 아니라 녹색어머니회냐”며 명칭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일부 학교에서는 녹색어머니회라는 명칭 대신 교통안전 지킴이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더구나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초미세먼지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30~40분가량 야외에서 교통지도를 해야 하는 녹색어머니 자원봉사는 학부모들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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