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에게 중국어 가르쳐 주는 카페 여대생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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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들에게 중국어 가르쳐 주는 카페 여대생 CEO
  • 취재기자 정은주
  • 승인 2014.07.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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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중국서 생활.. 원어민 능가하는 중국어로 손님 끌어

후텁지근한 오후 어느 카페 한 쪽 구석에서 낯설은 중국어가 들린다. 카페에서 왠 중국어가? 혹시 이곳이 중국 유학생들의 단골 카페인가? 이런 의문의 해답은 이 카페 주인에게 있었다. 이곳은 경성대 중문과 3학년 학생인 오진경(22) 씨가 직접 운영하는 일반 카페다. 중국어에 유창한 젊은 카페 CEO 오 씨가 중국어에 흥미를 갖는 카페 손님들에게 무료로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손님 수강생들의 중국어 발음은 비록 서툴러도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3년째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또래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중문과 학생이라고 모두 중국어 강사가 될 정도의 중국어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토박이 부산 아가씨지만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다. 그녀는 초, 중학교를 중국에서 졸업했고, 중2 때 이미 외국인용 중국어능력시험인 HSK 최고등급(당시는 11급, 현재는 6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 오진경 씨(사진 제공: 오진경)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되던 2004년 사업차 나선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 낯선 땅 중국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중국어라곤 단 한 마디로 못하던 그녀는 중국 상해 밑에 있는 절강성 닝보 시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이 학교는 기숙학교라 학생들은 집에 한 달에 1회 4일 동안만 갔다 올 수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낯선 중국 땅, 낯선 학교 기숙사에 혼자 보내져, 처음 한 달 동안은 학교 끝나고 매일 밤 기숙사에서 우는 게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국 초등학교의 한국 유학생인 진경 씨는 학교 친구들과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언어 장애인처럼 손짓과 표정으로 중국 친구들에게 필요한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잘 될 리 없었다. 이를 가엾이 여긴 담임선생님이 반장에게 진경 씨 ‘전담 친구’ 역할을 맡기면서, 그녀는 반장과 함께 다니며 하나 둘 친구를 사귀게 됐고, 순탄치 않았던 학교 생활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다.

중국 유학생활 1년쯤 지날 무렵, 아기가 말을 배우듯 그녀의 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그녀의 입도 열리기 시작했다.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그녀는 일상적인 중국어 생활회화에 불편이 없게 됐고 국제반에 편성됐다. 국제반에는 여러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있었지만, 한국인은 소수였다. 전교생 3000여 명 중 약 20명만이 한국 학생이었다. 그녀는 “소수였지만 한국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돼 당시에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중학생이 돼서 한국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향수병과 우울증을 피할 수 없었다. 중학교에서도 여전히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진경 씨는 가족들을 한 달에 한 번밖에 볼 수 없었으며, 그마저도 부모들은 직장일이 바빠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다. 한국 친구들끼리 한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다, 한국 가족 생각에 친구 한 명이 울기 시작하자, 다 같이 대성통곡한 일도 있었다. 그만큼 어린 소녀들에게 타국 생활은 외롭고 한국 생활을 그립게 했다. 그렇게 중국 학교생활은 힘들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진경 씨는 “초등학교 때처럼 옆에서 챙겨주는 담임선생님이 중학교에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끼리 똘똘 뭉쳐 외로움을 달래고 향수병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2009년, 아버지는 중국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 귀환을 결정했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산 한 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했다. 진경 씨는 한국 고등학교의 교복이 너무 정겨웠다. 한국 고등학생들이 치를 떠는 야간자율학습도 좋게만 느껴졌다. 한국 친구들과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반 아이들이 진경 씨의 친구였다. 그녀는 “한국의 모든 것이 너무 그리웠던 터라 모든 게 좋았고 마냥 신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 현실이 그녀에게 닥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 시험에서 그녀는 전교 468명 중 464등을 차지했다. 한글 맞춤법보다 중국어 문법에 더 익숙한 그녀에게 이런 성적은 당연한 결과였다. 진경 씨는 “엄마가 한 번도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이 없었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엄마의 쿨한 성격 덕에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그녀도 이미 공부를 못한다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전형적인 한국 고등학생이 돼 있었다. 그녀는 중국의 학교생활도 이겨낸 경험을 떠올리고는 오기가 생겨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녀는 독했다. 그녀는 고3 첫 모의고사에서 전교 26등의 성적을 이뤄냈다. 그녀는 “그때의 성취감과 뿌듯함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진경 씨 친구들은 종종 그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쳐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때마다 한 마디씩 중국어를 일러주는 과정에서 그녀는 중국어 교육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 그녀는 중국어를 까먹을 것 같은 노파심에 중국어 학원을 다니려고 중국어 학원을 기웃했지만 강사들이 자신보다 중국어를 더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 진경 씨는 중국어 교육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잘 할 수 있는 미래의 직업임을 직감했다.

2012년, 그녀는 대학 입시에서 당연히 중문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경성대 중문과 학생이 된 그녀는 아르바이트로 중국어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 중국어 과외를 시작할 때 나이가 어려 거절당하기도 했고, 학생들도 많이 모이지 않아 수입도 적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과외 학생이 한두 명씩 늘어 어느덧 중국어 유명 강사 반열에 올랐고 수입도 늘게 됐다. 그녀는 중국 생활을 이겨낸 저력 때문인지 생활력이 강했다. 그녀는 “학교 공부보다 일을 더 좋아한 것 같다. 중국어 강사일 말고도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주로 중국어 강사를 해서 번 돈 중 생활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금에 부었다. 그리고 1년 만에 1000만 원을 모아 부모님께 적금 통장을 드렸다. 그녀는 “그때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다”며 “돈 버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더 많이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2012년 입학 당시부터 그녀는 중국어 과외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카페 일을 배우는 것도 중국어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재밌고 즐거웠다. 그녀에게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카페 경영과 중국어 교육을 접목하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카페 안에 스터디 룸을 마련하고 무료로 중국어 스터디 반을 모집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사장에게 제시했다. 사장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페이스북에 중국어 스터디 모집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부산의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들한테도 많은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그녀는 매 학기 방학마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중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학 동안 무료로 스터디를 받으신 분들 중 몇 명이 저에게 정식 과외를 요청하게 됐다. 카페 무료 중국어 스터디는 일종의 정식 중국어 과외 홍보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오진경 씨가 경영하는 카페 내부 모습(사진 제공: 오진경)

마침 카페 사장이 그녀가 모은 돈이 꽤 있다는 점을 알았고 그녀의 중국어 스터디가 카페 홍보에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녀에게 카페 동업을 제의했다. 이렇게 그녀는 스무 두 살 어린 나이에 카페 CEO 겸 중국어 강사가 됐다. 그녀는 “카페 동업자가 되니, 중국어 가르치는 일도 즐겁지만, 카페에서 가게 문을 열고, 커피를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번 방학 동안 무료 중국어 스터디를 배우고 있는 대학생 김수빈(22) 씨는 “매주 중국어 스터디 시간이 기다려진다. 선생님은 선생님만의 개성이 있고 우리가 궁금해 하거나 헷갈려 하는 부분을 잘 파악해서 집어준다”며 “편하고 즐겁게 외국어를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진경 씨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녀는 ‘중국어 배우는 카페’를 더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녀는 자금을 모아 1층에는 카페 겸 바, 2층에는 레스토랑으로 꾸미고 중국어도 더 열심히 가르칠 생각을 갖고 있다. 진경 씨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또래에 비해 성숙해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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