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한국어, 한국인은 외국어 배우려는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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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한국어, 한국인은 외국어 배우려는데, "글쎄?"
  • 취재기자 한승완
  • 승인 2014.03.20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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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교환 모임' 전국서 성행.. 목적 엇갈려 설립취지 변질

매주 월요일 오후, 부산 서면 카페 거리의 한 카페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언어와 문화를 교류하는 ‘언어 교환 모임'이 열린다. 이 모임은 남녀노소 자격 제한이 없고, 1개 국어 구사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2008년 SNS를 통해서 몇몇 대학생들이 시작한 이 언어교환 모임은 어느 새 전국적으로 퍼졌고 부산에서도 몇몇 한국 대학생들이 외국인과 교류할 목적으로 부산 모임을 시작했다. 부산 모임의 경우, 최근 2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서 참가자 수가 급증했고, 평균 100명 정도가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다.

▲ 언어교환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한승완).

그러나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영어만 사용하려는 한국인이 대부분이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온 외국인들은 한국어 배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어 다양한 외국어를 공유한다는 모임 설립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 현재 이 모임 운영 책임자 김모 씨는 참가자가 늘어났지만, 대부분 한국 학생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했다. 실제 참가한 한국인과 외국인 비율은 8 대 2로 한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외국인과 같은 테이블에 앉기 위한 한국 사람들 끼리의 자리 경쟁도 치열했다. 

부경대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받고 있는 스페인 국적의 헤세 씨는 “한글로 말하고 싶어 왔는데, 한국인들은 영어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 테이블에선 영어가 사용되고 있었고,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은 한국인의 관심 밖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모임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자리를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므로 강제로 자리를 배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을 피하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부산의 모 대학 외국인 교수 칼 씨는 “학교에서만 영어를 가르치지, 여기까지 학생을 가르치러 온 게 아니다”며 영어를 매우러 오는 한국 학생들의 참여 목적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언어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인 10명 중 8명이 취업 준비를 앞둔 대학생이었고, 이들은 취업 시 영어 면접에 대비하기 위해 참여하고 있었다. 매주 언어교환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박모 씨는 “커피 한 잔 가격으로 두 시간 동안 외국인과 대화하는 게 매달 20만 원 주고 영어 회화 학원 다니는 것보다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한 영어 회화 학원에서는 매주 월요일 저녁 수업은 단체로 언어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수업을 대체하고 있었다.

언어교환 프로그램의 자원봉사자인 최모 씨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의 수요도 있는데 한국 학생들은 영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점점 외국인들의 수가 줄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핀란드에서 온 민야 씨는 “K-pop을 좋아해 한국에 왔고, 한국어를 배울 곳을 찾아 이곳에 왔으나 영어만 하다 간다”고 말했다.

이런 외국인들의 불만이 증가하자, 운영자 김 씨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모임을 원했지만, 영어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며 “지정 테이블을 만들거나 한국어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계속해서 언어교환 모임을 이어나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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