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지금 선생님 뵈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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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지금 선생님 뵈러 갑니다!"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4.05.1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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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달력은 다섯 번째 장을 장식하고 있다.

새로운 학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인연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불가에서는 ()’이라는 시간을 세는 단어가 있다. 이는 개자성겁(芥子城劫)이란 말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개자는 겨자의 한자어다. 개자성겁의 의미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Km인 철로 만든 정육면체 모양의 성에 겨자씨를 가득 넣고, 그 안에서 겨자씨를 백 년에 단 한 알 씩 꺼낸다고 할 때, 그 많은 겨자씨를 다 꺼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1겁에 해당된다는 것이란다. 고대 인도의 힌두교 계산에 의하면, 1겁이 43억 년 쯤 된다고 하니, 도대체 1겁이란 시간은 인간의 시간관념으로는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겁이란 시간 단위는 불교에서 사람 사이의 소중한 인연을 가리킬 데 자주 사용된다. 같은 나라에 태어날 인연이 되려면 전생에 1000겁 동안의 인연이 있어야 하고, 수없이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나와 같이 하룻길을 동행할 인연은 2000겁 동안의 인연이, 하룻밤 함께 묵을 인연은 3000겁 동안의 인연이, 부부가 될 인연은 8000겁 동안의 인연이, 형제로 만나는 인연은 9000겁 동안의 인연이, 부모 자식 간이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연은 1만 겁 동안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못해 고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다가오는 5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과 제자로 만나는 인연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숭고한 인연이다.

공자는 3000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 가운데 72명이 재능과 덕망을 갖춘 제자였다고 한다. 공자는 능력이나 인격이 제각각인 제자들을 다 어떻게 잘 가르쳤을까? 공자는 제자를 가르칠 때 제자의 능력과 처지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적극적인 제자에게는 신중성을 강조하고, 소극적인 제자에게는 적극성을 독려하는 식으로 교육했다는 것이다. 결국 공자는 그렇게 제자 개개인의 성격과 재능에 맞춰 각각 다른 교육 방법으로 제자들을 교육하여 제자들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게 했다고 한다.

또한 공자는 제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말을 함부로 내뱉은 적이 없다고 한다. 공자와 그 제자 안회와의 일화는 스승 공자의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던 안회는 선천적으로 말 주변이 없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안회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안회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방식으로 그를 가르쳤다고 한다. 안회는 더디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공자의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잘 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소위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눈높이 교육을 한 셈이다.

출신 성분을 뛰어 넘어 극진한 사제의 정을 나눈 인물들도 있다. 조선 당대 최고의 문필가 허균은 그의 스승인 이달이 서얼 출신임에도 스승의 시적 재능을 높이 받들어 스승으로 예를 다하여 섬겼다. 명문가 출신인 허균이 서얼 출신의 스승 이달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편찬한 것은 물론 스승의 전기를 지은 것이 신분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드문 일이었다. 신분 차별 없이 스승을 극진히 모셨던 허균이 없었다면, 사회적 약자인 이달의 훌륭한 작품을 오늘날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과 황상의 관계는 위와 반대의 경우다. 명문가 출신의 다산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시골 향리의 자제 출신인 황상을 제자로 맞는다. 어린 황상은 다산의 화려한 집안 배경에 주눅이 들어 그의 제자로 나아가길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산은 학문에서의 중요함은 신분이 아니고 부지런함이라며 황상을 끌어안았고 다독여 주었다. 출신의 차이를 뛰어넘는 다산의 가르침은 황상을 깨우치게 하였고, 황상은 훗날 다산의 든든한 학문적인 조력자가 되어 다산의 학문적 대업을 완성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지난해 가을 유명을 달리한, 이 시대의 영원한 청년 작가 최인호는 사람을 별에 비유했다. 최인호는 우리 모두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라 했고,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을 신의 섭리라 했다. 신의 섭리에 의해 별들이 만나는 것을 가리켜 최인호는 '인연'이라고 불렀다.

가르치지 못할 사람도 없고, 배우지 못할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노력하면 누구나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고 동시에 훌륭한 제자도 될 수 있다는 공자의 말씀이다. 그런데 선생은 있어도 참스승은 없다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요즘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과거와 같지 않다. 그래도 내겐 평생 잊지 못할 스승 한 분이 계시다. 그 분은 사춘기 여고 2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비교적 늦게 사춘기를 겪었던 나에게 생물 담당 담임 선생님은 끝없는 관심과 사랑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갈 때 쯤, 가세가 기울고 정신적 방황을 겪던 시기가 나에게 있었다. 영혼 없이 가방을 들고 등하교를 반복할 때 쯤, 선생님은 내 꿈을 듣고 용기를 주셨다. 선생님은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고 말 잘한다는 칭찬을 아낌없이 해 주셨다. 선생님의 격려와 성원 덕분에 나는 자존심을 다시 찾고 공부와 마음의 안정을 되잡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선생님은 항상 내 앞길을 응원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방송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제자의 방송 모니터도 자주 해 주셨다. 그때마다 선생님이 항상 잊지 않고 내게 해 주신 말씀은 바로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너를 응원한다였다. 10여 년의 방송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학업의 길로 들어섰을 때에도 선생님은 잊지 않고 나는 너를 믿는다. 너를 응원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난해 스승의 날 즈음에 선생님이 장기간 미국 여행을 떠나계셔서 뵙지 못했다. 다행이 올해는 선생님이 한국에 계시단다. 나는 이렇게 외치면서 연구실 문을 나선다. “선생님, 저 지금 선생님 뵈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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