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에 모두 평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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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에 모두 평안하십니까?
  • 박시현 시빅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3.08.12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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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더위 사가라.” 정월 대보름, 사람들은 더위를 남에게 판다.

내가 더위를 팔지 않아 이렇게 나 혼자 더위를 타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 7, 8월의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요즘 많은 이들이 “덥다, 덥다”를 입에 달고 산다.

며칠 전 남부 지방 울산의 어느 동네는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으며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요즘의 더위에 대해 연일 언론은 열대야보다 더한 '초열대야'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거론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역이, 특히 남부 지방의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건 여름 더위를 몰고 오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예년보다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고기압이 한반도 동서로 넓게 자리 잡은 채 머물면서 한중일 모두에게 살인적인 더위를 몰고 온 것이다.

특히 남부지방은 마른장마로 인해 다른 지방보다 햇볕 받는 시간이 길어 지면의 열이 쌓이면서 올여름 더위가 더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에서 사용하던 초열대야 현상이란 말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쓰이는 것을 보면, 올 여름 고온이 범상치 않은 더위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초열대야 현상은 일본에서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일 때 사용하던 용어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최저기온이 30도를 넘은 기록이 없었지만, 올 들어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같은 기상 신조어의 등장 등으로 유래 없는 더위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던 그 옛날에는 한 여름 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말복인 오늘 선조들의 삼복 더위를 이겨내는 지혜 중에는 원기를 회복하는 먹거리인 개장국이나 삼계탕을 먹는 일이 있다. 또한 산란기를 앞둔 민어로 끓인 매운탕은 미식가의 입맛을 돋워 주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 임금이 벼슬아치들에게 빙표를 주어 석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가게 하였다고 한다. 눈에 띄는 것은 석빙고의 얼음을 벼슬아치뿐 아니라 활인서의 병자나 의금부 감옥의 죄수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 사상가인 정약용이 쓴 ‘소서팔사(消署八事)’라는 시에서는 ‘8가지의 피서법’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솔밭에서 활을 쏘거나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타는 것, 넓은 정각에서 투호를 하는 것들이 들어 있다. 또한, 대자리를 깔고 바둑을 두거나, 연못에 핀 연꽃을 유유자적하게 구경하는 것도 피서법이라고 적혀 있다. 게다가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고, 비오는 날에는 한시를 지으며, 달밤에는 탁족(濯足)을 하는 것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일상과 사뭇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가만히 열거된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사소한 일상의 여유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부채는 눈에 보이는 사람의 땀을 식히지만, 매미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식힌다는 생활 속의 여유가 배어 있다.

한 여름 삼복더위에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과연 나는 마음을 식힐 수 있는 도구인가를 생각해 보자. 작가 겸 교수인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 ‘여름 징역살이’ 편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무더위에 사소한 일로 내 가족에게, 가까운 지인에게, 바로 내 옆 사람에게 정이 담긴 말 한 마디를 건네기보다는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퉁명스럽게 말을 건네지 않았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삼복더위에 보양식보다, 8가지의 피서법보다 더 필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배려(配慮)의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다. 진심어린 배려는 신영복 선생의 글처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단지 37도 열 덩어리의 존재가 아니라 내가 부채가 되어 눈에 보이는 상대의 땀을 식히고, 내가 매미소리가 되어 상대의 마음을 식히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 때 남에게 판 더위를 다시 내가 사는 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다운 피서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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